권칠승 의원 "리걸테크 논쟁 끝내자"...꿈쩍 안한 변협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해묵은 리걸테크 논쟁, 이제는 결론을 내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리걸테크 진흥을 위한 입법공청회' 인삿말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로톡과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 갈등으로 상징되는 IT 업계와 변협의 첨예한 대립 가운데 국내 리걸테크 산업이 더이상 도태가 아닌 세계적 변화의 방향성을 이끄는 형태로 제도화되길 바란다는 취지였다.
'끝장토론'을 바란 듯한 이 인사말처럼 이날 공청회에는 법학전문대학, 법무부, 법제처,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 리걸테크 관련 행정, 입법, 기업 관계자들을 비롯해 리걸테크 진흥에 보수적인 변협 임원까지 참여하는 이례적인 형태로, 각 이해관계자들의 주요 공감대와 우려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출신으로 제22대 국회에서 AI 기본법을 대표발의한 바 있는 권 의원은 지난 7월18일 '리걸테크 산업진흥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안(이하 리걸테크 진흥법)' 제정안을 추가로 발의하며 국내 AI 산업 진흥을 적극 지지하는 입법 행보를 보이고 있다.
법률과 인공지능의 결합을 뜻하는 리걸테크 산업은 국내외에서 수년 전부터 주목받은 대표적 AI 융합산업이다. 골자는 AI가 법률 비전문가들의 법률 접근성과 관련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법조인들도 잡무를 줄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반면 법조계의 변협 중심 회의론자들은 리걸테크 AI가 기존 변호사, 판사 등 법조인들의 영역과 고유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보편적인 서비스 개발 및 비즈니스에 반대하는 입장을 장기간 고수해 왔다.
이 가운데 권 의원이 발의한 이번 법은 리걸테크의 법적 범주를 확고히 하고 진흥을 중심으로 두되, 다양한 이해관계를 균형 있게 충족하겠단 접근법을 담았다. 이날 발제를 담당한 정신동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법안 분석에 따르면 이를 확인 가능한 주요 항목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리걸테크의 법적 정의와 서비스 범주를 명문화한 제2조(정의)다. 특히 리걸테크 서비스의 분류로 ▲변호사 매칭 플랫폼 ▲대형언어모델 기반의 자동화된 법률 자문 ▲사건에 대한 결과 예측 서비스 ▲법률문서 서식 자동 작성 ▲법령 판례 제공, 분쟁 해소를 위한 서비스 ▲각종 논문, 보고서, 기사 등 법률자료 제공 등으로 명확화했다. 제3조에서는 국가가 리걸테크 발굴 및 진흥과 더불어 이해관계자 간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상생안을 마련할 의무를 규정했다. 이들은 리걸테크 산업이 법의 테두리와 정부의 통제 아래 운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적 지위 규정이다.
제10조와 제13조, 제15조 등은 리걸테크 서비스 사업자들의 운신 가능 범위를 규정했다. 특히 이날 주요 토론 대상이 된 제10조는 기본적으로 폭넓은 리걸테크 서비스 개발을 인정하지만 ▲자동화된 법률 자문 ▲구체적 사건에 대해 법률을 적용한 결과의 예측 서비스는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명시했다. AI가 법률을 자문하고 소송 결과를 예측하는 건 기존 변호사와 판사의 영역을 침범하고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듯 제13조는 자동화된 법률 자문, 소송 결과 예측 서비스는 문제 발생 시 기업체의 손해배상 여력이 충분치 않을 것을 고려해 피해배상 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또한 제15조는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대상 리걸테크 서비스의 경우 위와 같은 서비스를 무상으로만 제공하게끔 한다. 이 역시 기존 법조인들의 주요 노동 영역을 리걸테크 기업이 영리화함으로써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하는 접근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도 법률 소비자 보호를 위해 일반인 대상 리걸테크 서비스는 구체적인 법률적 조언을 할 경우 반드시 전문 법률가의 조력을 받아야 함을 명확히 고지하도록 했다. 일반인들이 리걸테크 서비스만 믿고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택을 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함이다.
정 교수는 본 법안에 대한 여러 긍정적 견해를 내놨다. 타 산업과 달리 법률시장은 IT 기술 발전에도 그동안 대대적 혁신이 부족했던 점을 꼬집으며 "변화에 익숙하지 못한 법률 종사자들이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리걸테크 진흥이 '소액다수' 형태 집단적 분쟁 해결에도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는 1~2만원 수준의 소액 분쟁에도 자신의 권리의식이 강화된 소비자들이 다양한 분쟁 사항을 제기 중인데, 공정위가 매년 억대의 돈을 투자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민간 위탁 형태가 리걸테크 기술 도입을 통해 보다 쉽게 혁신과 상생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본 견해다.
본 법안을 두고 토론자들은 다양한 공감과 우려를 보였다. 실제 소송을 담당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자문위원인 김신유 부장판사는 리걸테크가 저연차 판사들의 영역이었던 하급심 판례 분석과 취합, 추론 업무를 충분히 보조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반면 AI가 판사들의 성향을 폭넓게 분석함으로써 소송 결과 예측까지 내놓을 수 있는 '프로파일링' 가능성에는 우려를 나타냈다. AI의 예측 판단과 실제 판단이 다를 경우 오히려 판사의 선택을 불신하는 문제가 생겨 사법 독립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다.
하루 80만명이 이용하는 국가법령정보센터를 운영하는 법제처 이영진 법령데이터 혁신팀장도 최종 법안이 이해관계자들의 여러 의견이 잘 수렴된 결과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우려점으로는 리걸테크의 법정 정의와 서비스 영역에 대한 정의를 일률된 형태로 두기보단, 유연성이 발휘 가능한 대통령령 등 하위 법령으로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향후 다양한 리걸테크 서비스가 확산하는 과정에서 서비스 개발에 다소 경직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리걸테크 피해보상보험 계약 의무화는 먼저 민간이 관련 상품을 만들어야 이용할 수 있는 만큼 단순 의무화 및 위반 시 처벌 또한 사업자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측 이해관계자인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사무총장, 김여섭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리걸테크산업협의회 변호사는 보다 기업 친화적인 정책 방향을 주문했다.
이 사무총장은 "벤처는 세상에 없는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다보니 기존 제도와 충돌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지난해 글로벌 시장 리걸테크 투자액이 10조원이 넘는 등 빠른 성장세가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이해 간극 해소가 늦어지며 리걸테크 산업이 거의 아사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과연 정보통신 기술의 혁명적 물결과 해외 기업의 진입을 막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이젠 접힌 날개를 펼 수 있도록 격려해달라"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글로벌 리걸테크 산업의 빠른 발전은 소비자 선택이 없었으면 절대 없었을 일"이라며 "경제적 측면을 차치해도 리걸테크는 소비자들의 자신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서도 선택한다고 본다. 이 시점에서 단순히 AI 환각 현상에 대한 우려 등만 키운다면 오히려 이런 기본권 확보 측면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허가제' 형태는 다종 사업자의 시장 진입 저해 가능성, 공정경쟁 저해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인가제나 신고제 형태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변협 측은 강경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패널로 참석한 정재기 변협 부협회장은 "이 자리에 리걸테크와 AI 법률안에 담긴 위험성과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왔다"며 "변협의 목소리가 시대에 역행한다고 하지만 리걸테크 산업에 대한 위험성 고지가 이뤄지지 않으면 전 국민이 피해를 입게될 것"이라며 시종 방어적 태도로 입장 발표를 이어갔다.
그는 "법조인이 되려면 수많은 법령에 기반한 교육, 양성, 시험 과정들을 거치며 현재는 1995년 대비 3배 규모인 매년 1700명 정도의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다. 이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하는데 리걸테크나 AI란 이름으로 변호사의 업무를 대체하려는 주장과 논의는 이들을 제외하고 기업을 통해 법에 쉽게 접근하자는 취지로 읽힌다"고 말했다.
또한 "변협은 과학이나 기술을 거부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리걸테크는 법조문 작성, 판례 검색 등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된 것처럼 충분히 수용 가능한 것이며, 법률 문서를 자동으로 작성하고 형량을 예측하는 등의 서비스는 법 지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어 "1960년대에 AI가 있었다면 유신헌법은 올바르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요즘은 장애인이나 소수자 권리를 보장하는 판례도 확대 중인데 AI가 기존에 학습된 사건을 바탕으로 움직인다면 소수자 보호를 위한 판결을 내릴지도 의문"이라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권 의원은 이날 마지막 패널 발표까지 경청한 뒤, 메모한 질문을 던지거나 지적에 답변하며 다소 경직됐던 토론을 주도했다. 특히 정 부협회장에 대해선 "변협이 그동안 토론회 등 초청을 계속 거부하다 나와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달라"면서도 "최근 의협과 병원협회가 의견이 달라 문제가 되듯, 법조계도 개별 변호사, 로펌, 협회의 의견이 다 같을 수 없을 것이기에 공통된 의견을 수렴해 전해주는 역할을 변협이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한 이날 공청회는 대통령 비서실장, 국가정보원장 등을 역임한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실이 공동주최했다. 박 의원은 "김대중 정부에서 정보화 고속도로를 깔아 오늘날 대한민국이 건설됐듯 법조인들도 과학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권 의원의 리걸테크 진흥 법안을 적극 지지하며 앞으로도 공동발의를 포함, 법사위 통과도 책임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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