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리걸테크, 대립 말고 상생해야…‘AI’라는 천리마 위에 올라타라”
[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요즘 변협(대한변호사협회)과 리걸테크(법률특화 기술기업)들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 국내 서른 개도 안되는 리걸테크들을 규제하고 징계한다 쳐도 그들이 MS(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오픈AI도 규제할 수 있습니까?”
강민구 법무법인 도울 변호사는 12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개최된 ‘인공지능(AI) 기반 사회현안 해결 세미나’에서 이같은 화두를 던졌다. 강 변호사는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주최한 이 세미나에서 ‘한국 법조 분야 AI 활용’을 주제로 발표했다.
최근 생성형AI 등 기술혁신이 사회 각분야에서 활발하게 수혈되는 가운데, 법률을 다루는 법조분야에서는 이러한 기술 도입과 활용이 더딘 것이 사실이다. 법조분야는 전통적인 산업과 기술 혁신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기 때문이다.
일례로 로앤컴퍼니가 출시한 법률 서비스 플랫폼 ‘로톡’에 대해, 변협은 규제 및 윤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로톡을 이용하는 변호사들을 제재하면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최근에는 리걸테크들이 생성형AI 기반 법률 서비스를 출시하거나 일반인조차 스스로 챗GPT 등을 활용해 법률 자문을 받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이러한 갈등과 우려가 더욱 커지는 추세다.
이에 대해 강 변호사는 “(변협이) 우리나라 기업들을 죽일수록 미국 거대 AI 회사들은 뒤에서 박수를 치게 될 것”이라며 “‘챗GPT 4o’(오픈AI의 최신 생성형AI 서비스)만 해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법률 업무를 잘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선 서로 대립할 게 아니라 상생하고 공존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강 변호사는 “법조분야 생성형AI는 엄청난 효용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며 “판결문을 신속하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인력을 갖춘 대형 법무법인과 그렇지 않은 법무법인간에도 경쟁력이 대등해질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법관들이 수많은 자료를 하나하나 읽고 걸러내는 작업 때문에 일주일에 판결문을 3개 겨우 쓰는 정도인데, AI 시스템으로 바뀌게 되면 재판 지연 이슈도 내년 상반기면 바로 해결될 것”이라 지적했다.
따라서 법원에서도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강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현재 일반인에게 제한적으로만 공개되고 있는 판결문의 공개 범위를 확대하고, 개인정보보호법 등 AI 도입에 장벽이 되는 규제 일부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강 변호사는 “법원에 AI 도입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에서 하루빨리 특례규정이 만들어지거나 특별법을 만들어 한다”며 “판결문에서 익명화를 과도하게 하면 암호문이 되기 때문에, 익명화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미국은 원칙적으로 실명제로 하되 당사자가 원할 경우 비용을 들여 비공개하는 것이 가능하고, 중국은 아예 실시간 공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기존 관행을 깨부수고 AI라는 천리마 위에 올라타야 한다”는 게 강 변호사의 입장이다. 다만 그는 자신의 주장이 AI에 법적 판단 자체를 맡기자는 취지는 아님을 피력했다. 그는 “단지 법관이 판결을 내림에 있어 문서 작성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AI를 판결 근거 작성 도우미 정도로 극히 보조적 수단으로 쓰자는 것”이라며 “판결을 AI에 맡기자는 의견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판결문 공개에 대해 적극 찬성한다”며 “수많은 판결문들이 국민 곁으로 돌아와야 법원 내부에서의 변화는 물론 국민들이 받을 수 있는 법조 서비스의 수준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의견을 보탰다.
이용진 NIA 본부장도 “판결문 데이터를 획기적으로 개방할 필요가 있다”며 “전향적으로 개방해준다면 리걸테크가 발전하고 좋은 서비스가 나오면 법원에서 다시 그걸 활용해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을 전했다. 실제 법원행정처에서도 법무 업무에 AI 기능 도입을 준비 중이라는 전언이다. 그러면서 유사 판례 검색 및 요약이나, 소송 당사자 발언을 텍스트로 정리해주는 기능 등을 예로 들었다.
이 본부장은 “그렇게 만들어진 서비스의 신뢰성 검증을 위한 데이터셋 개발은 필요하며, AI 모델도 LLM(거대언어모델) 기술 발전 추세를 고려해 업무별로 적절한 LLM을 적용할 수 있는 개방형 생태계가 돼야 한다”며 “법률 분야에서 생성형AI를 쓴다면 그 적용 여부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상순 법무법인 유한 변호사는 AI 도입시 국민의 변론권이 침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지해야 한다고 봤다. 김 변호사는 “전자소송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사이트에 준비서면을 업로드하면 이제 왔다갔다 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됐다”며 “이제는 AI로 내용을 자동 요약해서 중복되는 부분은 음영처리해 제공하겠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문제는 그렇게 되면 재판청구권을 가진 국민의 관점에서는 ‘내가 열심히 썼는데, 알고리즘에 의해 안 읽어도 된다고 판단해도 되는 건가?’ 싶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AI 도입을 반대하는 취지는 절대 아니다”라면서 다만 “야구 경기에서 심판이 룰 개정을 논의하겠다고 한다면 그들끼리만 할 게 아니라 투수와 타자 얘기도 들어봐야 하듯이, 법원이 재판 사무 시스템을 개선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너무 법원에만 중점을 두지 말고 실제 그 서비스를 사용하는 변호사나 국민들 의견도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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