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뷰] 경성크리처 "강한 신념엔 강한 책임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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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채성오 기자] 지난해 12월 22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는 '1945년 일제강점기 경성(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진행한 생체실험을 통해 크리처(괴물)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731부대가 저지른 만행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만큼, 드라마는 시대적 암울함과 각 인물들의 '선택'에 초점을 맞춘다.
◆경성크리처로 본 일본의 만행
경성크리처의 배경은 일제강점기, 그 중에서도 해방을 맞이하기 직전인 1945년을 간접적으로 조명한다. 해당 시기, 각기 다른 지위와 환경 속에 살았던 인물들은 '옹성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는 당시 시대상과 맞물린다. 일본군은 1941년 12월 하와이 진주만에 위치한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를 기습 공격하며 본격적으로 영토 확장에 나섰는데, 이 과정에서 포로 학대 및 생체실험 등 야만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게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성크리처의 시대적 배경도 이와 유사하다. 특히 실존했던 일본 731부대는 생체실험을 통해 생화학무기를 개발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인 1945년까지 해당 부대가 유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731부대는 '방역급수부(전염병 예방 및 식수 공급을 담당하는 부서)'라는 명칭으로 알려졌지만, 이시이 시로가 부대장으로 취임하면서 전쟁 포로에게 갖은 고문 및 생체실험을 진행·분석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이런 끔찍한 만행은 경성크리처에서 기생충을 넣은 식수를 마시게 해 크리처로 변화시키는 행위와 유사하다. 겉으로는 멀쩡한 병원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하에 감옥과 생체실험 공간을 두며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르는 '옹성병원'의 모습은 1945년까지 방역급수부대로 위장한 채 끔찍한 실험을 자행한 731부대를 묘사하고 있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군은 전쟁 막바지 전력을 최대치로 끌어모으기 위해 애꿎은 우리 국민들을 전쟁 최전선에 세우는가 하면 가혹한 말살 통치를 이어갔는데, 이 때 사회지도층이나 유력 인사들의 '변절'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격동의 시대, '선택'과 '변화'의 갈림길에 서다
경성크리처에서도 주요 등장인물들을 통해 격동의 시대 속 그들의 선택과 변화를 나타낸다.
오로지 돈을 쫓으며 자신의 안위에 몰두했던 장태상은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서서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간다. 장태상은 누구보다 빠른 정보력과 자본력을 지닌 전당포 '금옥당'의 주인이지만, 어느 날 자신을 협박하는 '이시카와(김도현 분) 경무관'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한다.
돈이 인생의 최대 목표였던 장태상은 금옥당을 지키기 위해 '명자(지우 분)'를 찾아나서게 되고 이 과정에서 윤채옥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는데 이 시기가 변화의 시발점이 된다.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이라는 것을 청해보지 않았던 장태상이 자신보다 낮은 수준에 있다고 생각하는 '토두꾼(실종된 사람을 찾는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는 설정은 단편적이었던 인물에 입체적 서사가 입혀지는 순간이다.
여기에 시시각각 윤채옥과 부딪히면서도 호기심과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장태상은 사랑의 감정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배려심까지 배우며 끝내는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하는 인물로 변화해간다. 이를 통해 장태상의 인생관은 '돈→사랑→이타심→조국의 독립'으로 변모하기에 이른다.
이와 반대로 '권준택(위하준 분)'은 '조국 독립'을 외치며 항일 조직 '애국단'을 이끌었던 인물에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동료를 변절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권준택은 돈에 집착하는 장태상을 꾸짖으며 애국단 가입을 권유하는 등 독립운동에 한 발 앞서 있던 인물이지만, 결국 일본군의 고문에 못 이겨 옹성병원 침입 목적과 애국단 명단을 스스로 작성하게 된다.
극 중 권준택의 모습은 일제강점기 당시 모진 고문과 협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며 자신을 합리화하던 이른바 '친일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옹성병원에 침투했을 당시 이미 항거불능의 일본군들을 도륙해 스스로 위치를 노출한 선택과 동료들의 안위보다 폭탄 위치를 더 중요히 여기는 장면에서 권준택이라는 인물이 얼마만큼 이기적인 지 파악할 수 있다.
토두꾼 부녀의 캐릭터 변화도 눈 여겨볼 만하다. 극 중 만주에서 조선으로 건너온 '윤중원(조한철 분)'과 윤채옥은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직접 토두꾼이 된 인물들이다. '최성심(강말금 분)'을 알고 있다는 '사치모토(우지현 분)'를 찾기 위해 조선으로 건너온 토두꾼 부녀가 장태상을 만난 것은 사실 경성 최고의 정보통이라는 소문 때문이었고, 첫 만남 후 별 소득이 없어 보이자 그와의 관계를 이어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장태상과의 거래 이후 옹성병원을 침입하고 조선인 포로들을 구하는 과정에서 토두꾼 부녀는 그를 신뢰하기 시작한다. 이해관계만을 따지던 인물들이 생사의 위기 속에서 동지애를 발휘하고, 나아가 괴물과 마주한 상황에서는 서로의 목숨을 책임지는 조력자로 분한다. 특히 윤채옥은 장태상을 불신하던 인물에서 의지하는 관계성을 보이면서 돌아오지 않은 그를 걱정하고 그리워한다.
이처럼 경성크리처는 시대의 암울한 비극을 각 역동적인 인물의 변화에 맞춰 이야기를 전개했다. 다만, 크리처를 메인으로 내세운 것에 비해 서사에서 크리처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데다 장태상이 윤채옥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개연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은 '옥의 티'로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총 10부작 중 파트1에 7개 에피소드를 배치한 부분도 극의 몰입도를 해치는 이유로 꼽힌다.
일제강점기의 비극에 크리처라는 소재를 더한 경성크리처는 파트2를 통해 이야기의 완결성을 높일 수 있을까. 극 중 등장인물들이 보여준 강한 신념은 어떤 책임으로 다가올까. 모든 이야기의 마무리는 오는 5일 넷플릭스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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