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기자] 반도체 코리아가 위기다. 미국과 격차는 좁히기 힘들고, 중국의 추격이 매섭다. 일본 수출규제 이슈는 여전하다. 미·중·일 사이에 낀 ‘넛크래커’ 처지다. 국내 업계는 정부 차원의 지원,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가 공생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한국 점유율은 19%다. 전년대비 5% 하락했다. 미국은 소폭 상승, 중국은 유지한 것과 대비된다. 이같은 결과는 기업 매출 대비 정부지원금 비중에서 비롯됐다. 중국 SMIC(6.6%), 화홍(5%), 칭화유니(4%) 등은 상위권에 들었다. 미국 마이크론(3.8%), 퀄컴(3%), 인텔(2.2%) 등도 삼성전자(0.8%)와 SK하이닉스(0.5%)보다 몇 배 더 많은 지원을 받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업에만 투자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세제 혜택, 정책 마련 등 정부의 도움도 있어야 한다”며 “특정 기업만 밀어줄 수는 없지만, 반도체 업체의 가려운 부분은 긁어줄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반도체 부진은 높은 메모리 의존도, 협력사의 부족한 자생력 등도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글로벌 기업을 두고도, 점유율이 20% 내외인 이유는 시스템반도체가 약한 탓이다. 국내 양대 산맥이 메모리 70% 이상을 공급하지만, 메모리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30%에 그친다.
메모리 호황이었던 2017년(22%)과 2018년(24%)에 한국 점유율이 상승했다가, 지난해 하락한 원인이다. 메모리 시장은 업황에 따라 기복이 심하다. 반면 국내 시스템반도체는 글로벌 비중이 3% 미만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국내에서는 위탁생산(파운드리), 반도체 설계(팹리스) 등 시스템반도체 육성을 위한 투자 및 정책 마련 등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다만 일본 수출규제가 겹치면서 시스템반도체 관련 업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고, 제재 품목 등을 다루는 업체를 우선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반도체 업계에서 정부 지원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한 장비업체 대표는 “정부에서 소부장 예산을 배정해 지원한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은 업체는 몇 곳 없는 걸로 안다. 그마저도 금액이 많지 않아 효과를 누리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실제로 금액 지원을 받은 업체는 20개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산업통상자원부 예산(1096억원)을 포함, 2714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2019년(881억원)보다 3배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삼상전자, SK하이닉스,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등은 1000억원 규모 시스템반도체상생펀드를 조성했다. 각각 500억원, 300억원, 200억원 출자했다. 투자 대상은 중소·중견 팹리스 기업들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코리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재 업체 관계자는 “확실히 일본 수출규제 이후 소부장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업체들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지원, 정책 등이 마련된다면 반도체 코리아의 위상을 지켜낼 수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