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5주년/언택트⑮-e비즈] ‘디지털주권 포기인가’ 또 다시 역차별 우려
[디지털데일리 이대호기자]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일상과 연결된 ‘디지털 플랫폼 인프라’가 더더욱 중요해진 요즘이다.
전 지구적으로 사재기 현상이 발생했지만, 한국은 예외였던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전 국민을 연결하고 소통창구가 되는 국내 인터넷 플랫폼의 활성화가 꼽힌다.
포털과 메신저, 온·오프라인을 연결하는 각종 O2O 서비스가 비대면의 일상화를 가능케 했고 디지털 경제를 원활하게 돌리는 주축이 됐다.
그런데 이러한 디지털 플랫폼의 경쟁력을 후퇴시킬 규제입법이 추진돼 논란이다. 정확히 말하면 국내 플랫폼의 경쟁력 후퇴다. 국내외 사업자 간 역차별 우려가 제기된 법안들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인터넷산업 규제법안인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각 일부개정법률안과 시행령이 도마에 올랐다.
이른바 ‘n번방 방지법’과 ‘넷플릭스법’으로 불린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 통과, 민간 데이터센터(IDC)를 국가재난관리시설로 지정하는 내용의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은 중복규제 논란으로 통과가 좌절됐다.
최근 법안 통과를 보면 “지원은 없더라도 최소한 공정 경쟁의 장을 마련해달라”는 업계 외침이 수년째 묵살되는 모양새다. ‘디지털 정보주권’을 포기한 모양새로도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국민들의 기본권 침해까지 거론하고 있다.
◆‘지도 데이터 반출’ 잘 넘겼더니…더 큰 게 돌아왔다
지난 2016년, 지금과 닮은 꼴의 사건이 있었다. 당시 구글이 신청한 정밀지도(1대5000 축적) 데이터 반출을 허가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구글은 정부와 위성사진 블러(흐리게) 처리 등의 타협 없이 국외 반출을 원했고 공간정보 산업계의 반대와 함께 국민적 공분을 샀다. 결국 정부협의체는 지도 반출을 불허했다. 지도 반출 논의 과정에서 구글의 조세회피, 거짓말 논란 등이 함께 불거졌다.
당시 구글의 지도반출 신청으로 현행법의 맹점이 드러났다. 지도 국외 반출 시 데이터 사후관리에 대한 규정이 없었던 까닭이다.
지도 데이터는 온·오프라인의 생태계가 연결되는 O2O 시대의 핵심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선 지도 데이터의 가치를 ‘21세기 석유’에 비교했다. 지도 위에 위치 등 이용자들의 이동·공간 정보가 쌓이고 구글은 이 정보를 광고사업 등에 활용하려는 것이다. 구글이 이용자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든 현행법 적용을 받지 않아 문제가 됐다.
정밀지도 데이터가 국외 반출돼 사업자 간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서비스가 개선된다면 지금보다 더 반출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지만 국내외 기업 간 역차별이 발생한다면 재고해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당시 김인현 공간정보통신 대표는 “공간정보는 국가의 전략자산으로 지도 국외반출은 정보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논란이 된 규제법안을 보면 데이터센터 운영 사업자를 주요 방송통신사업자에 포함시키고 같은 의무를 지우게 하자는 내용이 있다. 필요 시 정부가 데이터센터의 설비 상황이나 설비 관련 장부를 검사할 수 있다. 맘만 먹으면 운영 노하우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국회에서 “규제가 과도하면 국내 이탈현상이 있을 수 있다”, “이미 규제(정통망법 46조 시행령)가 있는데 추가적 조치를 요구하면 중복규제 우려가 있다” 등의 비판이 나왔다. 결국 이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 협단체에선 “개정안의 관리 범위와 기준이 모호한 상황에서 정부의 시행령 안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민간의 IDC와 내부의 데이터까지 국가의 관리하에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의혹, 정부의 IDC 데이터 열람같은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국가가 관리하는 IDC와 클라우드 서비스에 어떤 기업, 어떠한 사용자가 자신의 데이터를 맡길지 우려도 존재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감성 아젠다’에 또 다시 휘둘려
‘게임 셧다운제’는 규제 실효성을 상실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청소년 보호와 수면권 보장을 앞세워 학부모들의 지지를 얻었고 지난 2011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청소년들의 놀 거리가 부족한 사회 구조적 문제는 도외시한 채 ‘게임 때문에 공부를 안 한다’는 사회 통념도 영향을 미쳤다.
애초부터 국내 서버를 둔 PC온라인게임만 자정부터 접속을 차단한다고 청소년 보호가 될지에 대한 이렇다 할 해명도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모바일게임과 콘솔게임이 유통·서비스되는 가운데 온라인게임만 막는다면 국외 게임으로, 또 다른 플랫폼 게임으로 이용자를 이탈시키는 역효과가 날 것이 뻔했다. 쉽게 말해 역차별 규제다. 자정 이후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 자체도 극소수로 파악돼 사업자에게 시스템 구축의 부담만 안겨준, 규제 목적성까지 상실한 정책으로 평가됐다.
당시는 청소년 보호라는 다소 감성적인 아젠다에 우리 사회의 이성적 판단이 잠시 마비된 듯한 시기였다. 그런데 ‘n번방 방지법’ 논란이 뜨거웠고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된 지금, 게임 셧다운제 통과 당시가 정확히 오버랩되는 모양새다.
‘디지털 성착취와 성범죄물 유통을 막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정부와 국회가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역차별 규제를 선택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구체적인 규제 대상, 방식을 시행령으로 제대로 정하지 못한다면 셧다운제와 마찬가지로 ‘안 한 것만 못한’ 대책이 될 것이 분명한 상황이다.
불법촬영물 유통방지를 위한 ‘기술적 관리적 조치를 취하라’는 모호한 법안 내용은 추후 이용자의 사적 검열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부분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법안인데다 이러한 조치도 국내 플랫폼 사업자만 지게 될 우려가 있다.
실제로 텔레그램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 제2,제3의 n번방이 나와도 정부가 딱히 규제할 방도가 없는 상황이다. 이후엔 사회적 분위기에 떠밀려 국내 기업들을 겨냥한 감시와 관리 조치 요구 압박이 더욱 심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업계에선 “해외사업자에 대한 규제 집행력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결국 국내 사업자에게 또 하나의 의무가 추가되는 것 아니냐”, “법 집행이 어려운 플랫폼에 대한 의무 집행 대책이 궁금하다”, “개정안이 인터넷 산업과 이용자인 국민에게 끼치게 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대호 기자>ldhdd@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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