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낸드 플래시 메모리 가격이 좋을 때 SK하이닉스가 D램에 치중하는 이유가 몹시 궁급했던 적이 있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들어서야 낸드플래시 신규 증설 계획을 밝혔지만, 그간 SK하이닉스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D램이었다.
26일 SK하이닉스 출범식에서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 브랜드가 SK그룹 계열사 영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인수합병(M&A)을 고려한 하이닉스(채권단)의 전략적인 판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채권단은 2위 타이틀이 필요했다는 얘기고, SK도 그룹 위상 강화를 위해 세계 2위라는 타이틀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SK가 하이닉스라는 이름을 그대로 남겨둔 이유도 이와 통한다. 물론 38나노 D램 양산체제 구축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자원을 집중했고, 그 때문에 여력도 없었겠지만 어찌됐건 SK하이닉스는 낸드에 대한 투자 결정이 늦어 다운텀에서 적자 규모를 줄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주인이 없었던 SK하이닉스가 내린 최선의 결정, 그리고 그에 따른 운명이었던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1분기에도 2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재 외부 상황으로만 보자면 SK하이닉스는 SK의 복덩어리다. SK는 시기가 좋아 3조원대에 SK하이닉스를 인수했고 이 3조원 가운데 일부는 신주 발행해 1년간 사용할 투자 재원도 마련했다.
마침 엘피다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며 파산보호신청을 했고 오늘 상장이 폐지됐다. 대만 업체들도 감산에 나섰다. 이 덕에 D램 가격은 오름새다. 인텔도 IM플래시의 지분 일부를 마이크론에 매각키로 했다. 인텔의 지분 매각은 낸드 사업을 일부 축소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마이크론이 인텔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운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적은 적자지만 SK하이닉스의 기업 가치가 올라가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데 있다.
SK텔레콤과의 시너지를 더한다면 SK하이닉스는 여태까지 없었던 새로운 사업 구조를 통해 비상할 수 있다. 최 회장이 말한 대로 SK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은 전 세계 스마트폰 제조업체들과 거래 관계를 맺고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LG전자 옵티머스에는 일본제 혹은 미국제 대신 SK하이닉스의 모바일D램과 낸드플래시가 전면적으로 탑재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이 중계를 해주면 그간 공급 계약에만 치우쳤던 사업 구조가 설계 담당자들과 직접 대면하고, 특화된 모바일 메모리 제품을 설계·공급할 수 있는 구조로 변할 수도 있다. 고객 니즈를 섭렵하고 이를 구현하는 과정이 반복되다보면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현재 다운텀이 지나가고 SK하이닉스가 흑자 전환에 성공한다면 자금조달도 보다 수월해질 수 있다. 이 때 적기 투자를 진행하고 착실하게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나간다면 돌아오는 다운텀에선 삼성전자 마냥 흑자를 내는 것이 가능하다. 진정 SK하이닉스는 SK로 굴러온 복덩어리가 맞다.
SK하이닉스는 모바일D램과 모바일에 특화된 낸드플래시(eMMC 등), CIS와 같은 ‘모바일 솔루션’ 중심으로 사업포트폴리오를 재편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약 40%에 달하는 모바일 솔루션 비중을 2016년에는 70%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모바일에 특화된 다양한 솔루션을 내놓는 ‘쾌속정’ 경영을 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선행되어야 하는 과제는 1위 업체와 동등한 수준의 미세공정전환 속도를 갖추는 것이다. 엘피다 파산보호신청 이후 권오철 사장은 (애플 등) 고객사로부터 주문량이 늘어난 건 사실이라고 말했는데 당장 이 수요에 대응하기는 쉽지가 않다.
경쟁사는 36나노 모바일D램을 공급하고 있는데 원가가 40%나 높은 44나노 모바일D램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엘피다 효과를 실적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낸드플래시 얘기를 했지만 적자를 내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난해 38나노 D램 수율 잡기에 애를 먹었고, 지연됐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38나노 모바일D램이 언제쯤 정상 양산 궤도에 오르는 지를 확인한다면 흑자 전환 시점도 점쳐볼 수 있을 것이다. 물량 경쟁이 안되더라도 테크 수준을 맞추면 2위 업체라도 충분한 이익을 낼 수 있다.
일부 언론매체는 SK하이닉스가 다시금 벌어진 미세공정 격차를 줄이기 위해 20나노급을 재빨리 양산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는데, 38나노를 마무리하고 29나노를 준비해야할 인력들이 38나노 수율 잡기에 묶였던 상황(38나노에서 발생했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29나노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었기에 이 보도대로 추진되려면 엄청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