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AI 질문 찔끔, 정쟁은 덕지덕지”...대정부질문 현장 속 ‘병풍’된 AI

오병훈 기자

[디지털데일리 오병훈기자] 미국 정부의 AI 산업 집중 육성책 발표와 중국의 딥시크 파장 등 글로벌 AI 산업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 속, 한국 정치계는 과학·경제·기술 등의 주요 사안에 대해 논의할 시간을 대부분 정쟁에 할애하고 있다. 산업계 핵심으로 꼽히는 AI 현안이 일부 논의 됐으나, 정부의 AI 산업 진흥 의지를 재확인하거나, 앞서 반복된 논쟁을 되풀이하는데 그쳤다.

국회가 정부를 상대로 국정 현안을 묻고 이에 대해 정부가 입장을 밝히는 대정부질문이 전날(14일) 마무리됐다. 대정부질문은 지난 12일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를 시작으로 13일 ‘경제’ 분야, 14일 ‘교육·사회·문화’ 순서로 진행됐다.

첫날은 정쟁과 연관이 깊은 정치·외교·통일·안보 주제가 논의 대상이 됐던 만큼, ‘12·3 내란사태’를 필두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내란혐의 수사 등과 관련된 다양한 쟁점 사안들이 주를 이뤘다. 양당은 각 쟁점 사안을 두고 격한 표현을 사용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경제 분야 질문이 이어져야 할 13일에도 대부분 질문이 정쟁에 집중됐다. 경제분야 질문 순서에는 산업계, 연구계와 직결된 굵직한 질문들이 적재돼 있으나, 심화되고 있는 여야정 갈등에 뒷전으로 밀려난 모습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정쟁성 질의가 쏟아졌다. 야당에서는 대체로 최 대행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고, 이에 대해 여당에서는 야당의 비판에 항의하는 상황이 반복 연출됐다.

대부분 산업계 관련 질의가 뒷전으로 밀려난 상황 속, AI 현안은 고동진 의원(국민의힘)이 이날 첫 대정부질문으로 언급하면서 일부 논의가 전개됐다. 다만, 고 의원 질문도 현재 현황을 되짚고 정부 의지를 확인하는 정도 그쳤다.

고동진 의원(국민의힘)은 최 권한대행과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2 차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를 대상으로 반도체 특별법, 딥시크 파장 등 현안에 대해 물었다.

고 의원은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 ‘주 52시간제 예외적용’ 등에 대한 사항을 안 장관에게 질의하며 “미국이나 일본, 대만 상황을 생각을 해 볼 때, 반도체특별법을 반드시 통과시켜 주 52시간 적용 예외를 위한 융통성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절박하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첨단 산업, 특히 우리나라 경제 핵심인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좀 더 융통성 있는 근로 조건을 만드는 데 있어 국회가 같이 합심해줬으면 한다”고 답했다.

이어 고 의원은 최 대행에게 AI 인프라를 위한 그래픽카드(GPU) 확보 및 AI 인재 육성 지원책 마련을 촉구했다. 최 대행은 “미국도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으로, 한국은 일본과 협력을 통해 활약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며 “연구개발(R&D) 부분은 예산 편성 과정 상 중점 지원 분야이기 때문에 좋은 의견 주면,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도널드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출범 직후 발표한 대규모 사업으로, 오라클· 오픈AI·소프트뱅크 3사가 합작해 ‘스타게이트’란 이름의 AI 기업을 설립할 계획이다. 이곳에 일본 금융 기업 소프트뱅크가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일본과 스킨십을 통한 수혜가 기대된다는 것이 최 대행 분석이다.

교육·사회·문화와 연관된 셋째날에도 사회 분야 답변을 위해 국회에 출석한 김석우 법무부 차관에게 ‘김건희 수사’ ‘명태균 황금폰’ 등 정쟁성 질의가 집중되면서 교육 문화 등 현안에 대한 질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 이날 대정부 질문에 앞서 야당 주도로 ‘마은혁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 촉구안’ 가결이 진행되면서 여당 대부분 의원들이 퇴장하는 상황도 연출됐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야당의 정쟁성 질문이 지속되면서 갈등 분위기가 고조됐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왼쪽)과 백승아 의원이 지난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질문을 주고받고 있다. [ⓒ인터넷의상중계시스템 화면 갈무리]

14일 AI 현안으로는 AI 디지털 교과서(AIDT, 이하 AI 교과서)가 언급됐다. 다만, 지난달 국회 교육위원회 주도로 열린 AI 교과서 청문회에서 나왔던 이야기가 되풀이 되는데 그쳤다. AI 교과서에 대한 학부모 교원과 합의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정부가 도입을 강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백승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AI 교과서 청문회 때와 동일하게 “학교를 AI 교과서 실험의 장으로 만들지 말라”는 질책성 질의를 이어갔다.

이에 대해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학생들이 실험의 대상이 돼야 하는 돼서는 안 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새로운 혁신의 장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학부모들 우려도 잘 듣고 있으며, 실정에 기반해서 현장과 소통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결과적으로 사흘간 대정부 질문 동안 주요 산업 현안은 대부분 배제됐다. 시급한 논의가 필요한 AI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고동진 의원과 백승아 의원 등을 통해 일부 사안이 논의 됐으나, 유의미한 논의 진전은 없었다. 급변하는 AI 시장 속 ‘AI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정부와 여야가 지속적으로 정쟁에 몰두하면서 엇박자를 내는 사이, 한국 AI 산업이 글로벌 시장 내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정쟁 현안 등으로 AI를 비롯한 산업 관련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라며 “딥시크 파장과 관련해서도 이제 막 정책 연구가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라, 자칫 전문성 떨어지는 의견을 전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의원들도) 아직까지 조심하는 눈치”라고 전했다.

오병훈 기자
digimo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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