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집행위원회가 지난 2일(현지시간) 일부 가스 및 원자력을 ‘택소노미’(Green Taxonomy 녹색분류체게)로 포함시키는 수정안을 유럽 의회에 제출했다.
이와 관련 로이터 등 외신들은 유럽 의회의 과반수 또는 EU 27개국 중 20개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2023년부터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하고 있다.
가스와 원자력이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된다면 가스 플랜트나 원자력 건설에 금융회사 등 민간 기업들은 보다 좋은 조건으로 관련 금융 상품을 만들어 투자할 수 있고, 정부는 세제 지원이 가능하다.
아직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EU의 이런 변화는 원전 수출 지원에 나서고 있는 우리 정부에도 주목할 만한 상황변화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EU가 오는 2050년까지 방사성 핵폐기물 안전한 관리 장소를 마련하라는 단서를 달았다는 점이다.
EU집행위는 '녹색' 인정과 관련하여 ‘신규 원전은 2045년 이전에 건설 허가를 받아야 녹색 투자 라벨을 획득하고, 또 2050년까지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계획과 자금이 있는 국가에 위치해야 한다’고 조건을 명시했다.
즉, 핵폐기물에 대한 보관이나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한다면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된다해도 민간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 원전을 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장치할 수 있는 폐기물 처리 계획이 전제돼야만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가능하다.
이는 한편으론 그동안 원전 개발 중심에서 앞으로는 ‘핵 폐기물’의 안전한 보관과 관리, 시설 확보 문제가 원전 건설 만큼이나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와함께 EU집행위는 가스의 경우, ‘가스 발전소’ 20년동안 kWh당 270g 미만의 이산화탄소(CO2)등가물을 방출하거나 연간 배출량이 kW당 550kg(CO2) 미만인 경우 10년간 ‘녹색’으로 표시될 수 있다고 정했다. 현재 이 기준을 맞추지 못한 가스 발전소는 추후 저탄소 가스로 전환하거나 가동 시간을 줄임으로써 규제를 맞출 수 있다.
‘가스 플랜트’의 경우는 오는 2035년까지 저탄소 가스로 작동하도록 전환해야한다. 이는 당초 EU가 전환 기한으로 설정했던 2026년 보다는 일정이 후퇴된 것이다.
◆뜨거운 감자 ‘원자력’, 여전히 고심많은 EU
2050년까지 EU는 탄소의 순 배출량을 제로(0)로 하기위한 목표를 설정해놓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민간 자금을 끌어와야만 한다.
당초 EU내에서 택소노미 논의를 시작할때만해도 가스와 원자력은 대상에서 제외됐었다. 가스 자체가 화석원료에서 추출하는 것이고 원자력은 인간과 환경에 치명적인 핵폐기물을 배출하기 때문이다.
이에 EU집행위는 이같은 우려를 완화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고 ‘택소노미’ 에 포함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즉, 가스 플랜트와 원전을 짓는데 있어 녹색 라벨을 받을 수 있는 전제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이와관련 앞서 EU는 ‘택소노미’ 에 포함되는 ‘녹색’ 활동으로, ‘친환경 목표 달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을 제1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둘째는 ‘녹색’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 예를 들어 전기나 수소를 저장할 수 있는 시설 투자도 택소노미에 포함될 수 있다.
셋째 조건이 주목된다. 원자력에 대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배출량이 산업 평균 미만이고 오염 자산(오염물 또는 핵 폐기물)을 가두거나 더 친환경적인 '과도기적 활동'을 인정받으면 이 또한 '녹색'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다.
EU는 가스 및 원자력 발전소를 이처럼 ‘과도기적 활동’이 요구되는 분야로 분류했다. 여기서 '과도기적 활동'(transitional activities)이란 '지금은 분명 공해 유발산업이지만 '녹색'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계획과 활동, 시설 투자 행위'로 해석된다. 즉 폐기물에 대한 관리 방안이나 시설을 확보하면 ‘택소노미’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첨예한 국가간 이해관계, 국제 금융투기자본 로비… 잡음많은 ‘EU 택소노미’
당초 EU 택소노미는 지난 2020년에 완결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EU집행위 내부 뿐만 국가들간 극심한 견해차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신흥국 원전 투자로 막대한 금융이익을 챙기려는 투기자본들의 로비도 비판을 받는 부분이다. 환경단체들과 비판론자들은 이번 가스와 원전의 택소노미 포함 결정에 EU가 금융 마피아들에 굴복한 결과라며 맹비난하고 있다.
‘가스’는 우리나라 보다 유럽에서 특히 민감한데 이는 역사적으로도 유럽내 국가들의 석탄과 가스로 얽혀있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과 서방의 반발도 따지고 들어가면 ‘가스 패권’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보니 어쩔 수 없이 EU 택소노미의 기준도 흔들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개연성이 있다.
실제로 당초 2020년 11월, EU집행위는 ‘탄소 배출 포집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가스 플랜트를 택소노미 금융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었다.
그러나 석탄 대신 가스 투자를 늘리고 있는 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들이 크게 반발하자 결국 한 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최종적으로 탄소 배출 제한을 포함한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것을 조건으로, 가스 플랜트도 택소노미에 포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