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정책

n번방이 촉발한 ‘디지털성범죄물과의 전쟁’··· 순항할 수 있을까

이종현
[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오는 12월 10일부터 포털 기업을 비롯해 대규모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사업자들은 디지털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이 시행된다. 네이버나 카카오를 비롯해 디씨인사이드, 뽐뿌, 오늘의유머 등 국내 대다수 인터넷 커뮤니티가 대상에 포함된다.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상은 매출액 10억원 이상이나 일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의 SNS·커뮤니티·인터넷개인방송·검색포털 등 사업자다. 해당 조건에 부합하는 사업자는 매해 투명성 보고서를 제출하고 디지털성범죄물 유통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16일 기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투명성 보고서를 제출한 사업자는 87개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롯해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블라인드, 루리웹, 디씨인사이드, 뽐뿌, 트위치, 틱톡,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조아라, 문피아, 인벤, 오피지지(OP.GG), 보배드림, 딴지그룹 등의 투명성 보고서가 공개돼 있다.

투명성 보고서는 ▲현황 ▲유통방지를 위한 노력 ▲신고접수 및 처리결과 ▲유통방지에 대한 절차 ▲유통방지 책임자 지정 ▲유통방지 교육 6개 내용을 담고 있다. 각 사업자가 디지털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에 대한 방법론과 결과가 공유된다.
2020년 트위터코리아 투명성 보고서 내용 중 일부
2020년 트위터코리아 투명성 보고서 내용 중 일부

가령 트위터코리아의 경우 작년 12월 10일부터 12월 31일까지, 총 51건의 디지털성범죄물 신고를 받았고 이중 45건을 삭제조치했다. 불법촬영물은 13건, 아동청소년착취물은 32건이다.

현행법에서는 피해자나 방통위,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등이 고시한 기관·단체가 디지털성범죄물을 신고하면 각 사업자가 이에 대한 조치를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오는 12월 10일부터는 자체적인 기술적·관리적 조치 적용이 의무화된다. 기술적 조치란 업로드되는 게시글이 불법촬영물인지 사전 필터링하는 것을 뜻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오는 17일부터 정부가 개발한 소프트웨어(SW) 및 데이터베이스(DB)를 제공된다. 영상물의 특징값(DNA)을 딥러닝 기반으로 추출, DB화함으로써 등록돼 있는 디지털성범죄물의 유통을 차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사업자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개설한 ‘디지털성범죄등 공공 DNA DB 기술지원포털’에서 DB 및 SW를 다운로드받아 적용할 수 있다.

정부서 마련한 기술을 채택하지 않고 자체 필터링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에 성능평가를 받아야 한다. 법 시행 전인 12월 10일까지 성능평가를 완료해야 한다.

김재절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장은 “이번 국가개발 표준기술 및 공공 DNA DB 제공으로 인터넷 사업자들이 12월부터 실시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불법촬영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고시안을 마련하는 등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투명성 보고서를 공개한 87개 사업자
투명성 보고서를 공개한 87개 사업자

한편 해당 법이 매끄럽게 적용될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많다. 실효성과 검열 논란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마련한 디지털성범죄물 DNA DB는 기존 DB에 구축된 자료를 대상으로 대조하는 방식이다. DB에 포함돼 있지 않다면 걸러내지 못하는데, 미신고 불법촬영물이나 최초 유포 등에는 취약하다.

특히 디지털성범죄물 유통의 온상인 딥웹·다크웹은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n번방의 근원지였던 텔레그램은 해당 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엄한 국내 기업만 피해본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필터링 적용시 서비스 품질 저하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게시자가 게시글·영상을 업로드하면 디지털성범죄물 DNA DB와 대조한 뒤 업로드되는데, 이 과정에서 지연이 발생할 경우 전체 서비스의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 국내 주요 사업자 및 대형 커뮤니티 전반에 적용되는 만큼 상당한 트래픽 부하가 예상되는데, ‘백신 예방접종 먹통’과 같은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정보기술(IT)업계 관계자는 “입법 취지는 이해하지만 타깃을 잘못 잡았다고 본다. 불법촬영물의 경우 폐쇄공간에서 공유되는데, 그런 곳은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당장 n번방만 하더라도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퍼졌는데, 텔레그램은 대상에서 빠졌다”고 꼬집었다.

이어서 그는 “정부서 추진하는 것은 기존 시스템에 필터링을 하는 API를 붙이는 형태인데, 이 경우 없던 절차가 생기는 만큼 다소간의 성능 저하는 불가피할 것 같다. 중소 사업자의 서비스 질을 떨어트리지 않는 선에서 작동할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이종현
bell@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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