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지난 20대 국회에 발의된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법안 가운데 규제법안이 73%에 달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18일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대한민국 ICT 규제 대변혁을 위한 토론회’에서 심우민 경인교대 입법학센터장은 20대 국회 ICT 분야 입법활동 연구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 발의된 법안은 총 1044건으로, 19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현 과방위) 대비 34% 증가했다. 하지만 이 기간 법안 가결률은 19%에서 13%로 감소했다. 의원 입법만 놓고 보면 19대 대비 20대 국회에서 37% 늘었지만, 가결률은 18%에서 12%로 줄었다.
20대 국회에 발의된 ICT 관련 법률 815건 중 73%가 규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 그중 92%가 의원 입법이었으며, 각 상임위원장이 발의한 법(5%)까지 더하면 규제법안의 97%가 의원 입법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정작 이들 법안의 69%는 논의조차 없이 폐기된 것으로 조사됐다. 심우민 센터장은 “국회에서 규제 중심 법안 발의가 이뤄지고 있고, 실제 심의는 하지 않는 추세가 확인된다”고 분석했다.
입법 전문성이 떨어지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입법 필요성과 실제 실효성에 대한 분석이 진지하게 이뤄지지 않고, 실증 근거를 도출하는 노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심 센터장은 “지난 19대부터 20대 국회까지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 이슈가 커지면서 관련 법안이 범람했는데, 가짜뉴스가 왜 문제인지 분석한 법률안은 하나도 없었다”면서 “또 N번방 방지법과 같은 꼭 필요한 법률의 경우에도 실제 이 법을 통해 우려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냐고 하면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입법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분석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입법영향평가’를 제도화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 및 결과를 공개해 효과적인 입법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심 센터장은 “국회가 입법과정에서 자체적인 판단 전문성이 부족해 정부와 일부 전문가에 의존하는 현상이 많다”며 “단순히 ‘일하는 국회’를 주장할 게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도승 목포대 법학과 교수는 “의원 입법 총량이 정부 입법에 비해 절대적 비중 차지하고 남용되는 것은 ‘청부입법’ 관행 때문”이라며 “정부가 입법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의원을 통해 편하게 입법하려다 보니, 의견 수렴 등 합리적인 절차를 건너뛰게 돼 시행령에 지나치게 위임한다거나 과잉규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금이라도 관성적으로 특정 상임위를 통한 청부입법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 내부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ICT업계에서도 정부의 ‘일단 하고 보는’ 식의 규제 남발을 우려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용후 피와이에이치 대표는 “한국은 한마디로 ‘김칫국 규제’를 한다”면서 “풀어주면 나쁜 짓할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일단 규제부터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10위권에 한국 기업이 하나도 없는 이유가 왜겠냐”면서 “정부가 기업을 믿고 그냥 놔둬줬으면 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김준모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디지털신산업제도과장은 “일선 공무원이 규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여러 이해관계자의 반대나 책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적극행정 면책제도 같은 것들이 적극 활용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정부가 과거 일방적인 공급자 역할에서 벗어나 민간에 최대한 많은 권한 위임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면서 “특히 과기정통부가 다른 부처보다 선도적으로 역할을 하도록 명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