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BOE, 디스플레이 반도체 사업 공식화…떨고 있는 대만
* 8월 25일 발행된 <인사이트세미콘> 오프라인 매거진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인 BOE가 디스플레이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공식 발표하자 관련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지금까지 BOE는 디스플레이 구동 드라이버IC, 터치칩 등 대부분의 디스플레이 관련 반도체를 수입에 의존해오고 있었다. 이번 발표로 당장 예상할 수 있는 건 관련 분야의 M&A다. 국내 업체들도 물망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쟁 구도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중국에 드라이버IC와 같은 디스플레이용 반도체를 수출하는 대만 업체들은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글 한주엽 기자 powerusr@insightsemicon.com
BOE는 최근 국가IC산업투자기금 등과 함께 투자 합작사를 설립키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BOE 15억위안(한화 약 2700억원), 국가IC산업투자기금 유한공사 15억위안, 베이징 국제 역장(亦庄) 신흥산업 투자 10억위안, 베이징 익진기점(益辰奇点) 투자 회사가 1650만위안을 투입해 총 40억1650만위안(한화 약 75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한다. 4개 회사는 이렇게 모은 자금 가운데 1000만위안을 자본금으로 활용해 관리 회사를 설립키로 했다. BOE 측은 “신규 설립 회사는 디스플레이 반도체 산업 분야 및 관련 영역에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 경제매체인 21세기비즈니스헤럴드(21世纪经济报道)는 현지 반도체 자문기관 분석가인 꾸원쥔(顾文军)의 말을 인용해 “BOE는 투자회사를 설립한 후 인수합병(M&A)의 방식을 통해 디스플레이 패널용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BOE는 베이징, 허페이, 충칭에 8.5세대 LCD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며 푸저우에도 같은 세대의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또 허페이에 10.5세대 LCD 생산라인도 건립하겠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BOE가 반도체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분명하다. 디스플레이에 탑재되는 터치칩과 지문인식, 디스플레이구동드라이버IC(DDIC) 등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반도체 역량을 확보할 경우 회사의 전반적인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BOE는 예상했다. 삼성과 LG의 경우 DDIC를 관계 계열사에서 생산하는 수직계열화를 이루고 있는데, BOE는 이 같은 모델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전략이다. 이런 움직임은 BOE가 올해 초 반도체 사업부를 신설했을 때부터 감지됐었다.
제품 생산은 파워칩의 중국 공장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D램 생산을 포기하고 파운드리 업체로 전향한 대만 파워칩은 최근 중국 허페이시에 300mm 반도체 웨이퍼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이 공장의 생산 용량은 웨이퍼 투입 기준 월 4만장, 투자금액은 135억위안(약 2조5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중국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초기 투자액은 모두 허페이시가 댄다. 허페이에는 BOE의 8세대 공장인 B5가 가동 중이다. BOE의 10.5세대 공장도 허페이시에 들어선다. 파워칩은 중국 허페이에 세워지는 신규 반도체 공장에서 150나노, 110나노, 90나노, 55나노 공정을 운용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파워칩의 공장에선 BOE 공급용 DDIC 등이 주로 생산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M&A로 시장 진출
투자 합작사를 설립한 만큼 반도체 시장을 향한 BOE의 초기 행보는 M&A에 맞춰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국내에도 DDIC와 터치칩을 만드는 반도체 업체가 있다. 이들도 M&A 물망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미 중국 업체들은 피델릭스, 제주반도체와 같은 국내 팹리스 업체를 인수한 바 있다. 한국의 대표 디스플레이 반도체 팹리스 업체들로는 아나패스, 실리콘웍스, 티엘아이 등이 있다. 실리콘웍스는 LG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돼 LG디스플레이로 관련 제품을 공급 중이다. 티엘아이 역시 LG디스플레이가 주요 고객사다. 아나패스는 삼성디스플레와 삼성전자로 디스플레이 반도체를 공급한다. 매그나칩반도체와 동부하이텍도 DDIC 등 디스플레이용 반도체를 양산하는 한국 업체들이다.
BOE가 디스플레이 반도체 시장에 진출할 경우 당장 큰 타격을 받을 곳은 대만 업체들이다. BOE는 노바텍, 하이맥스, 레이디움에서 대부분의 DDIC를 수입해서 쓴다. BOE 뿐 아니라 CSOT, CEC-판다도 대만 DDIC의 의존도가 높다. 노바텍은 중국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에 DDIC를 공급하면서 최근 삼성전자를 위협할 정도로 덩치를 키운 바 있다. BOE가 디스플레이용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면 중국 정부의 지도 아래 현지 패널 업체들이 구매 물량을 밀어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럴 경우 노바텍의 점유율은 급격하게 떨어질 수도 있다. 왕둥성 BOE 회장이 공식 석상에서 “우리끼리(중국 업체간) 도우면서 자급률을 높이자”는 발언을 자주 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얘기다. 이럴 경우 장기적으로는 DDIC 업계가 한국 혹은 중국계로 양분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중국 정부는 반도체 수입을 줄이기 위해 국산화를 통한 자급률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중국 내 디스플레이 생산량이 한국을 위협할 정도로 커진 상황이기 때문에 디스플레이 관련 반도체는 상대적으로 고객사 확보 및 국산화가 쉽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주엽 기자>powerusr@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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