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토론회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 어디까지 왔나
* 7월 25일 발행된 <인사이트세미콘> 오프라인 매거진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한국 디스플레이 업계가 ‘양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추월을 따돌리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거대 자국 시장과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최근 수 년간 이른바 ‘묻지마 투자’를 단행하며 생산 용량을 크게 늘려왔다. 업계에선 2017년이면 중국이 한국을 누르고 ‘최대 디스플레이 생산국’으로 올라설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위기로 받아들인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는 대응법을 찾기 위해 골몰하는 모습이다. 7월 8일 오후 전북 무주 덕유산리조트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열린 ‘제10회 디스플레이 국가연구개발사업 총괄워크샵’에선 산‧학‧연‧관 관계자들이 모여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위기, 그 해법은?’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했다. 이 자리에서 중국의 추월은 기정사실로 굳어졌다는 견해에 토론 참석자 대부분은 동의했다. 아울러 추월을 최대한 저지하고 플렉시블, 투명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상용화를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 다음은 토론회 발표 전문
이신두 서울대 전기 정보공학부 교수
제가 좌장을 맡게 됐다. 최근 디스플레이 업계가 굉장히 어렵다. 중국도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빨간색 경고등이 켜졌다고 할 수 있다. 해법을 점검해보자. 먼저 현재 시장 현황과 경쟁 구도, 그리고 전망에 대해 IHS코리아 정윤성 상무가 발표를 진행한다.
정윤성 IHS코리아 상무
작년 9인치 이상 대형 패널 시장에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차지하는 면적 출하량 비중은 47%였다. 2010년에는 이 비중이 50%가 넘었다. 중국 업체들이 한국 점유율을 뺏어갔다. 이익률에도 변화가 있다. 최근 1년간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들의 실적을 보면 중국 업체들의 이익률이 한국 업체들을 추월하고 있다. CSOT의 경우 두 자릿수 이익률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중국은 왜 클 수 밖에 없나? 시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TV 시장은 이미 5년 전 북미 시장 규모를 추월했다. 디스플레이가 탑재되는 모든 제품군의 최대 시장은 바로 중국이다. 세계의 공장이라던 중국은 4~5년 전부터 세계 최대 시장이 됐다. 그 지역 기업들이 클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잘 조성돼 있다.
아직 전 세계 TV 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1,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 현지 업체들이 무서운 속도로 크고 있다. 원가의 경우 이미 한국 업체들의 경쟁력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한다. 중국 현지 TV 업체들은 이제 세계로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주력 시장인 북미나 유럽, 이머징 마켓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국 기업들에겐 위기다. 통팡 글로벌이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다양한 서브 브랜드를 갖고 있는데, 서브 브랜드의 TV 출하량을 모두 합치면 이미 LG전자도 추월한 것으로 파악된다.
2010년과 비교해 BOE의 패널 면적 출하량은 무려 918%나 성장했다. CEC-판다, CSOT는 2010년에는 없던 업체들이다. BOE가 얼마 전에 110인치 8K 제품을 선보였는데, 이제는 생산 능력뿐 아니라 기술적 수준도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어떻게 성장했을까. 패널, 완성품 할 것 없이 정부가 팍팍 밀어주고 있다. BOE는 공장 하나 세울 때 자기 돈 투입하는 비중이 25%밖에 안 된다. 정부 돈 지원받고 은행에서 빌리는 것이 70% 이상을 차지한다. 한국 업체들은 자기돈 가지고 하는데, 중국 업체들은 남의 돈으로 투자를 하기 때문에 ‘묻지마 투자’가 가능한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8세대 이상 패널 생산 용량을 비교해보자. 삼성디스플레이(쑤저우)와 LG디스플레이(광저우)가 중국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긴 한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내년에는 중국 생산량이 한국을 능가할 것으로 우리는 예상한다. 이 시장의 공룡은 바로 중국이 될 것이다. 범용 제품 특히 액정표시장치(LCD)는 중국이 완전하게 우위를 잡을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의 기술 수준이 낮다는 것도 이젠 옛말이다. BOE가 얼마 전 10.5세대 공장에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한국에도 10세대급 라인은 없다. 현재 상황으로 보면 한국 업체들이 투자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BOE는 속된 말로 ‘질렀다’. CSOT는 구리배선과 컬러필터온어레이(COA) 등의 최신 기술을 이미 공정 라인에 도입한 상태다. 기술적 격차 많이 줄어든 상태다. CEC-판다는 샤프 기술을 도입해서 LCD 사업을 시작했는데, 현재 한국 기업들도 어려워하는 옥사이드 박막트랜지스터(TFT) 기판 기술을 적용해서 생산을 할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을 말해주겠다. HKC라는 회사 이름 들어본 적 있나? HKC 저도 몰랐다. 이 회사는 중국에서 완성품 위탁생산이 주요 사업이었는데 모니터만 일년에 1000만개씩 만들어서 파는 회사다. 이 회사도 8.5세대 LCD 생산 라인을 짓겠다고 얼마 전 발표했다. 6월 중순 이미 착공식도 했다. 중국 일각에서도 ‘공급과잉’ 우려가 나오지만 이들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LCD로 끝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OLED 분야로도 이미 발을 담그고 있다. 투자 계획이 20개가 넘는다. 중국 정부는 최근 LCD에 투자한다 하면 승인을 잘 안내준다. 이미 많기 때문이다. 정부로부터 펀딩을 받으려면 신기술로 인식되는 OLED를 들이밀 수 밖에 없다. 생각보다 OLED 분야도 빨리 진행이 이뤄지고 있다. 에버디스플레이라는 회사가 있다. 이미 5인치, HD급 해상도로 OLED를 개발했고, 풀HD도 올해 안에 한다고 한다.
한국 업체들의 최근 투자 동향을 살펴보면 신규 증설은 없고 일부 생산성 향상이나 개조, 기술 전환 등에만 집중하고 있다. 특별한 움직임이 없다. 대만도 당연히 어렵다. 기술적으로 한국이나 일본에 밀리고 생산용량이나 자본에선 중국에 밀린다. 그래서 대만 업체들은 ‘아메바(amoebe, 형태가 일정치 않은 단세포 생물) 전략을 쓴다. 아메바처럼 그때그때 틈새 시장을 찔러 들어오는 것이다. 대만 업체들의 이러한 전략은 한국 업체들에게는 골칫거리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40, 42인치가 주요 제품인데 대만 업체들은 39.5인치(40인치로 표기)를 주력으로 내세워 더 싸게 파는 그런 전략을 수행하고 있다.
중국으로 디스플레이가 넘어가는 것은 막을 방도가 없는 것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투명, 플렉시블 OLED를 확실하게 양산할 수 있을 때까지 시기를 늦추지 않으면, 우리 산업이 정말 위험해질 수 있다.
이신두 서울대 전기 정보공학부 교수
정 상무가 말했다시피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은 정말 위기다. 과거를 떠올려보자. 2002년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은 일본을 추월했다. 이후 13년째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당시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이 어떻게 일본을 넘어섰는 지를 석준형 한양대학교 융합전자공학과 특임교수에게 들어보겠다(석 교수는 삼성전자 LCD총괄 부사장 출신임).
석준형 한양대학교 융합전자공학과 특임교수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은 1995년부터 시작됐다. 투자하고 공장을 짓기 시작한 것이 그때 즈음이다. 20년이 넘었다. 일본은 이미 80년대에 LCD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일본 입장에선 한국이 지금의 중국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얄밉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업적 관점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우리가 뒤쫓는 전략만 고수했다면 일본을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 뒤집기 작전을 시도해 시장을 선도하는 전략을 펼쳤고, 그것이 통했다.
과거 LCD 산업은 1.5년을 주기로 예외 없이 공급과잉과 공급부족을 반복하는 ‘크리스탈 사이클’이 있었다. 경기 변동 예측을 잘 해서 공급과잉 때 “위기다! 큰일이 났다”고 하면 한국 기업들은 투자를 했다. 왜 그랬을까. 공장 짓는 데 1.5년이 걸린다. 거의 예외 없이 1.5년 후면 공급부족이 올 것이라는 일종의 신념 같은 것이 있었다. 자신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요즘 중국이 하는 식으로 일단 ‘질렀다’. 어떻게 보면 간 크게 투자한 것이다. 그런데 매 사이클마다 그것이 맞아 들어갔다. 4세대, 5세대, 6세대, 7세대 모두 통했다. 클라이맥스는 7세대였다. 2002년 대만이 5세대 들어올 때 우리는 7세대로 갔다. 지금 한국이 세계 디스플레이 1위 지위를 갖고 있는 건 이 같은 과감한 투자 전략 때문이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LCD 가격은 무조건 떨어지게 돼 있다. 이에 맞춰 원가를 낮춰야 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판 크기를 늘려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원가를 줄이는 기술력은 한국이 최고였다. 이걸로 일본을 눌렀다. 예를 들어 일본 업체가 TFT 마스크 7개에서 6개로 갈 때 한국은 5개에서 4개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런 것들이 원가를 낮추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공정단순화를 통한 원가절감은 한국이 그 어떤 나라보다도 잘했다. 삼성과 LG과 보이지 않는 경쟁을 펼친 것도 사실은 크게 보면 도움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샤프는 8세대 삼성보다 1년 앞서 했고, 10세대 투자도 했다. 그런데 쫄딱 망해버렸다. 이건 연구대상이다. 투자 잘하고 기술 있다고 무조건 성공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얘기다. 전략적으로 잘 해야 한다. 삼성은 특히 세트(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쪽에서 잘 끌어줬다. 이제는 원가 싸움에선 중국을 이길 수 없게 됐다. 소품종 대량 생산은 누구든 할 수 있다. 한정된 파이 싸움에서 뜯어먹는 경쟁 구도가 돼 버린 것이다.
이신두 서울대 전기 정보공학부 교수
한국디스플레이협회의 최영대 상무가 협회 관점에서 최근의 상황과 한국 업계가 헤쳐나가야할 과제를 말해달라.
최영대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상무
디스플레이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장치 산업이다. 한국과 중국을 비교해보자. 제가 1994년도에 협회 처음 왔을 때에는 산업부에서 자금 지원을 많이 했다. 대기업의 적기 투자와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 정책이 맞물려 성장을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중국 정부도 디스플레이 산업을 키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09년부터 패널 생산라인을 짓는 기업에 자금 지원을 했고, 2010년에는 12차 5개년 발전 계획에 디스플레이가 포함되면서 본격적인 지원이 시작됐다. 지난해에는 ‘2014~2016 신형 디스플레이 발전행동계획’을 발표하고 패널 뿐 아니라 장비, 소재 분야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비 분야에도 지원이 계속됐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농민이 TV를 구입할 때 보조금을 주는 가전하향, 2009년부터 노후 제품을 신제품으로 바꿀 때 돈을 주는 이구환신 정책을 진행하면서 중국은 최대 시장이 됐다.
과거를 뒤돌아보면 국내 패널 대기업이 투자를 안하면 장비 업체들 매출이 50%나 떨어지면서 애로 사항이 많았다. 중국이 투자하면서 장비 업체들에게는 수출 기회 요인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중국이 크고 한국이 작아지면 장비 업계에도 위협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러한 위협 요인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대규모 R&D 과제를 기획할 때 거의 300명 이상씩 모이곤 했다. 대학에서 R&D 많이 도왔는데, 결국 사람이 답이다.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대학은 연구비가 줄면 다른 분야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OLED TV도 초기 시장이 제대로 클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 정책을 펼쳐주면 좋을 것 같다. 중국보다 잘하는 쪽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신두 서울대 전기 정보공학부 교수
한국과 중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와중에 일본도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자며 모이고 있다. 일반 국민 입장에선 디스플레이 산업 잘 나가는데 정부 지원이 더 들어간다라고 한다면 곱지 않게 보는 것도 사실이다. 이젠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가 발표를 해 달라.
윤수영 LG디스플레이 OLED 연구담당 상무
일본과 중국은 기술과 투자 전략이 다른 것 같다. 재팬디스플레이(JDI)도 지금 보면 정부 자금으로 다시 모였고, 샤프는 여전히 어렵다. 일본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라고 본다. 실제 시장을 보면 TV는 이미 커머디티(commodity)화 돼 있는 것 같고 모바일은 높은 기술이 요구된다. 기술 우위가 있는 모바일쪽, 그리고 자동차 디스플레이 시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대면적에선 한국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중국은 내수 시장이 풍부하니 이를 바탕으로 우선 커머디티화된 시장을 키우겠다고 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한국 기업을 따라하고 있다. 대면적 큰 장비를 사다놓고 한국과 일본, 대만 기술자를 뽑아서 시행착오 없이 빠른 속도로 한국을 따라오고 있다. 그 결과로 LCD 분야에선 한국과 중국의 격차가 줄어들었다고 본다. 앞으로는 높은 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한 쪽으로 경쟁이 옮겨갈 것이다. 이에 대해 LG디스플레이도 어떻게 대응할 지를 생각하고 있다.
추혜용 삼성디스플레이 기반기술팀 전무
과거 20년 동안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나? 크리스탈 사이클이 그대로 적용되던 그 때에도 항상 “위기다”라고 말했다. 물론 지금과 그때의 위기는 다르다. 지금은 정말 예측이 안 된다. 과거에는 우리가 따라갔던 대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우리가 선도하고 있다. 지금 위기감의 원천은 우리 앞에 아무도 없다,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 이런 인식에서 나온다고 본다.
삼성디스플레이로 이직한 지 7개월째다(편집자 주. 추 전무는 7개월 전까진 ETRI 차세대디스플레이연구단장을 맡아왔다). 소재 부품 업체들에 “이런 것 한 번 개발해봅시다”라고 하면 굉장히 난색을 표한다. 당장 먹고 살기 바빠 미래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다. 정부가 해 주셔야 될 일들이 바로 그런 역할이 아닐까 조심스레 얘기해본다. LCD, PDP, OLED 모두 시장에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중소 기업들은 미래를 위해 R&D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큰 그림은 대기업이 그리겠지만, 업계가 구체적인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
기술은 결국 사람이 개발한다. 교수님들 가운데 디스플레이만 하셨던 분들은 몇 분 안 된다. 연구비가 없다고 한다. 연구비가 없다면 다른 분야로 곁눈질을 할 수 밖에 없다. 학생들도 연구비가 없다는 얘길 하더라.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인재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정부가) 고민해주시면 좋겠다.
그렇다면, 대기업은 과실만 따먹을 것이냐. 아니다. 우리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 기술을 잘 모아서 상용화 방안을 고민하고 모색하는 것이다. 우리들만의 노력으로는 힘들고 정부 주도 하에 산학연 한 눈높이로, 한 목소리로 같이 달려가야만 지금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원론에 답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신두 서울대 전기 정보공학부 교수
대기업 얘기를 들어봤다. 국내 패널 업체들의 투자 부진, 최근 엔저 상황 등으로 중소 중견 장비 업체들의 애로는 극에 달했다고 생각한다. 후방 장비 산업계의 생각을 AP시스템 정기로 사장님이 가감 없이 말씀해달라.
정기로 AP 시스템 사장
디스플레이 산업이라면 삼성디스플레이나 LG디스플레이처럼 패널 만드는 대기업만 생각하는데, 이들 대기업에 장비와 재료를 대는 후방 산업계도 있다. 우리나라 장비 업계는 지금 굉장히 어렵다. 과거 한국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투자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지금은 ‘투자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디스플레이 장비 산업계는 국내 패널 업체들이 7세대, 8세대 할 때 외산 장비를 하나씩 국산화하면서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대만에 장비를 수출하게 됐던 시기도 바로 이때 부터였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과 대만이 공통적으로 투자가 없다. 지금 그 공백을 중국 시장에 의존하면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국산화라는 명분이 있었고,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간 장비 공급 업체가 상이해 경쟁이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보호막이 없어진 상태다. 다들 중국으로 몰려가서 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중국 패널 업체들은 이런 상황을 잘 이용해서 굉장히 좋은 장비를 과거 한국보다 더 저렴하게 도입하고 있다. 독점 장비가 아니면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판가가 굉장히 떨어진다. 결제 조건도 매우 안 좋다. 전체 장비 가격의 20~30%는 1~3년의 유지보수 기간을 정해놓고 단계적으로 준다. 중국 수주를 많이 하면 매출 수치는 올라가지만 현금 흐름이 악하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장비 기업들에게 수출금융 같은 정부적 지원책이 나온다면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 장비 수준은 굉장히 높아졌다. 최고의 패널 기업이 다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핵심 공정과 함께 주변 장비도 한국 기업이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런 제품을 수출하면 패널 수출하는 것 만큼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장비를 수출할 때 애로사항은 국내 고객사나 정부 기관이나 이런쪽에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업체들은 “정말 그 장비 팔 수 있느냐” 이렇게 물어본다. 해외 장비 업체들은 국경이 없이 물건을 파는데 국내 업체들은 눈치를 봐야 하니까 핸디캡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대기업을 위한 후방산업’이 아니라, 후방산업도 잘 육성하면 패널 만큼 효자 산업이 될 수 있다 이런 생각으로 장비 산업계를 지원해주면 좋겠다.
아시다시피 디스플레이 산업은 반도체 산업의 기술과 경험을 토대로 발전해왔다. 장비도 반도체 장비를 하던 쪽이 디스플레이 쪽으로 발전했다. 중국은 거꾸로 디스플레이가 먼저 성장을 했고, 반도제 쪽으로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하려고 한다. 우리도 디스플레이와 함께 반도체 장비 쪽으로 제품군을 맞춰 나가면 더 큰 기회를 맞을 수 있다. 적극적으로 R&D를 해야 하고 중소기업끼리 인수합병(M&A)도 해서 제품군 늘리고 규모도 키우는 그런 방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한국이 그랬던 것처런 장비를 국산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런 현지화 요구에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대응해서 선진 장비로 시장을 선점해 나가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정부 지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같다. 물론 중소기업의 생존 문제는 정부 지원이 아무리 많아도 기업 스스로가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힘들 것이다. 과거에는 국산화를 위해 쫓아가기 바빴는데, 이제는 우리도 최고 기술이 있기 때문에 기술을 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비 산업도 하나의 중요한 수출 산업으로 육성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인 지원을 해주신다면 훨씬 힘이 될 것 같다.
이신두 서울대 전기 정보공학부 교수
산업이 위기이고, 이것을 혁신 기회로 삼아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자. 이런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디스플레이 산업의 미래 먹거리가 무엇인지 들어보겠다.
한상철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산업융합 PD
디스플레이가 탑재되는 신규 시장은 자동차, 웨어러블 등 다양한 분야가 언급되고 있다. 저는 특히 웨어러블에 주목하고 있다. 확장지능형, 섬유일체형, 신체부착형, 신체이식형 정보표시소자 기술이 발전하면 디스플레이 분야의 신시장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들 분야는 아직 모두 실험실 시제품 수준이다. 삼성전자나 코오롱스포츠. 서울대, 성균관대 등에서 R&D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산업기술평가관리원도 향후 이러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시장이 커질 수 있는 방향을 찾고 있다.
이신두 서울대 전기 정보공학부 교수
그러면 이제는 정책 방향에서 한 번 짚어보자.
이정노 전자부품연구원 디스플레이융합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저는 최근까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서 정부 디스플레이 R&D 과제기획 및 관리 PD직을 맡아왔다. 그간 생각해왔던 정부 지원 R&D 정책 프로세스에 대해 아쉬웠던 점을 얘기해보겠다. 우선 과제 기획에 대한 경직성이다. 일종의 틀이 있다. 과제 기간, 예산 규모, 목표 등은 중간에 변경할 수 없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만들어야 하는데 다수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도 일종의 제약 사항이다.
두 번째는 스피드다. 과제를 기획해서 수행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예산이 많이 필요한 대형 과제는 예산을 확보해야 되기 때문에 시간도 훨씬 많이 들어간다. 엄청난 시간을 들여 과제 기획하고 준비하고 있노라면, 관련된 정보가 경쟁국으로 흘러나간다. 기술 변화가 빠르게 때문에 정부 과제도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 먼저 예산을 확보해놓고 누군가 책임을 지고 배분할 수 있게 한다면 보다 효율적이지 않을까.
다음은 다양성에 관한 문제다. 그간 R&D를 해오면서 선택과 집중을 많이 했다. 추격하는 입장에서 건너뛰는 전략을 펼친 이후 우리가 가장 앞에 서게 됐다. 이후로 생긴 문제는 뭘 해야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소비자 관점에서 어떤 것이 필요한 지 찾아야 했는데, 잘 안됐다. 타 산업분야와 협력할 수 있는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 디스플레이 총괄 워크샵이 올해로 10회째인데 디스플레이 분야 뿐 아니라 의료, 자동차, 건설 분야에 계신 분들도 같이 와서 기술 수준을 보고 함께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으면 좋을 것 같다.
결국 예산이다. 우리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선도하고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한국에서 혁신 기술이라는 꽃이 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R&D 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김용래 소재부품산업정책관(국장)
중국 리스크는 비단 디스플레이 뿐 아니라 자동차, 철강, 화학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 같다. 모두가 위기라고 생각한다. 아까 석 교수님 말씀해주신대로, 2002년 우리가 어떻게 일본을 누르고 세계 1위 디스플레이 생산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나. 정부 지원도 물론 중요했겠지만 결국은 투자다.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나라 1997년, 1998년 어려울 때 4세대 투자 했고, 2009년에도 일본 기업들이 주저주저할 때 우리는 8세대 신규 투자를 했다. 어려울 때 투자해서 이후 성장 기반을 만드는 건 디스플레이 뿐 아니라 반도체, 자동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삼성전자가 평택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투자 발표도 그러한 맥락이다. 선도적 투자를 통해 진입장벽을 세워놓고 수익성 확보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아니겠느냐.
오늘 정윤성 IHS 상무님이 말한 것을 되새겨보면, 지금 우리가 과거의 전략을 그대로 쓰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건 이해하겠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동감한다. 그런데, 중국은 내년 이후로 한국의 디스플레이 생산량을 초과한다. 디스플레이는 장치 산업이다. 장치 산업이 경쟁력을 얻으려면 대규모로 투자를 하고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 중국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우리는 제자리다. 그러면 질 수 밖에 없는거다. 중국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삼성이나 LG가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정부는 다방면으로 노력하겠다. R&D에 대해서는 저희가 차별화할 수 있는 영역, 예컨대 투명 OLED 이런 쪽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고 약속하겠다. 정기로 사장님이 말씀해주셨던 내용들도 공감한다. 소재나 장비가 없다면 디스플레이 산업은 어렵다는 인식 가지고 있다. 특히 중국은 훌륭한 인력 많은데 한국은 많이 모자란다. 올해 새롭게 장비나 소재쪽 인력 양성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다음은 참석자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이다.
Q. 정부쪽에 묻고 싶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정책을 준비하고 있나?
산업통상자원부 김용래 소재부품산업정책관(국장) 향후 2년 정도는 단기적으로 준비를 해야 하는 부분인데, 하반기 OLED 등 일부 디스플레이 패널을 만들 때 필요로 하는 수입 장비에 대해 할당관세를 신규로 적용할 것이다. 앞으로 2년 정도는 단기적으로 준비할 것들이 많다.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말하기는 어렵다.
Q. 장비 업계, 중국 갔다가 내팽개쳐지는 것 아닌가?
정기로 AP 시스템 사장 지금 화두는 중국이다. 국내 시장이 없어지고 있다. 패널 업체들은 ‘어렵다’ 정도지만 우리는 ‘생존의 위기’를 느끼고 있다. 중국에 팔지 않으면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다. 안팔 수 없고, 대응을 안할 수 없다. 우리가 안나가면 일본 업체들이 들어가는데, 그렇게 된다면 아주 설 땅이 없어진다. “기술을 뺏긴다” 이런 우려가 있지만 제가 볼 때 한국과 중국의 장비 기술 수준 차이는 5년 이상이다. 국산화 한다고 하지만 처음에는 껍데기 정도 만들고 로고 붙이는 수준에서 시작할 것 같다. 핵심 장비를 스스로 만들 때 까지 우리는 자체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밖에 없다. 핵심 기술은 한국에서 하고, 나머지는 중국에서 파는 그런 전략을 써야될 것 같다. 생존을 위한 판매라고 해서 기술이 다 넘어가는 건 아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성장할 수 있는 다른 아이템을 찾아서 연구하고 개발하면 된다.
Q. 중국 BOE는 10.5세대 공장을 짓는다고 한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는 비밀무기가 있나?
추혜용 삼성디스플레이 기반기술팀 전무 없다. 중국 BOE가 10.5세대 LCD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는데, 우리가 중국처럼 가격 경쟁력으로 밀고 가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것은 의문이다. 중국에 뒤따라서 10.5세대로 가는 건 조금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적절한 시기에 투자하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다만 현 시점에서 삼성디스플레이는 커브드 TV나 엣지를 기반으로 하는 플렉시블 OLED 기술로 시장을 확대해 나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고 있다.
윤수영 LG디스플레이 OLED 연구담당 상무 LG디스플레이도 지금이 위기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10세대 투자를 못한다기보단 안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과거에는 과감한 선행투자로 시장 파이 키우고 돈을 벌면 또 투자를 했는데 지금은 그 선순환 고리가 깨졌다. 예전과 비교하면 원가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렇다보니 투자에 좀 더 신중해질 수 밖에 없다. LG디스플레이가 최근 OLED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OLED TV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면 새로운 시장을 열어나갈 수 있다.
<한주엽 기자>powerusr@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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