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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메모리 韓이 꽉 잡았는데"…美 트럼프 관세 부과 '자충수' 가능성도 [소부장반차장]

배태용 기자
GPU 내부 디테일. GPU의 내부를 열어 보면 위아래 각각 4개의 HBM3E가 탑재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이 GPU의 연산 성능을 뒷받침한다. / 사진 = 배태용 기자
GPU 내부 디테일. GPU의 내부를 열어 보면 위아래 각각 4개의 HBM3E가 탑재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이 GPU의 연산 성능을 뒷받침한다. / 사진 = 배태용 기자


[디지털데일리 배태용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를 포함한 외국산 전략 기술 제품에 25% 고율 관세 부과를 검토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반도체 업계에도 긴장감이 돌고 있지만, 정작 시장에서는 '급한 건 한국이 아니다'라는 반응도 나온다.

AI 서버용 메모리 시장을 사실상 한국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관세 카드를 꺼내면 오히려 자국 내 빅테크 기업의 발등에 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를 공식화한 데 이어, 반도체와 통신장비, 배터리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기술 분야 전반으로 관세 확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2일을 '미국 해방의 날로 명명하고, 대부분 국가를 대상으로 한 상호관세 적용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3일 0시1분부터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외국산 자동차 및 핵심 자동차 부품에 대해 25% 관세가 부과를 시작으로 추가 관세 품목이 발표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는 반도체, 특히 메모리 분야가 그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 전반이 트럼프 발 관세 정책에 떨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강한 경쟁력을 지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다만 관세 부과가 곧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글로벌 AI 붐으로 인해 HBM(고대역폭 메모리), DDR5, SSD 등 서버용 메모리 수요는 급증 중으로, 이 시장에서의 주도권은 한국이 쥐고 있다. 높은 수요를 지닌 엔비디아 GPU(그래픽처리장치)에 탑재되는 HBM은 SK하이닉스가 양산을 주도하고 있고,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6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팜비치 카운티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집회에서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이자 전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연합뉴스]
6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팜비치 카운티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집회에서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이자 전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 [ⓒ연합뉴스]

마이크론이 일부 HBM3E를 개발해 공급하고 있지만, 아직은 SK하이닉스에 비해 양산 경험이 부족하고 수율도 검증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며 전체 시장 수요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서버용 DDR5 D램과 고성능 SSD도 마찬가지다. 미국 내 대체재가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한국에 관세를 부과하면 공급 차질보다는 오히려 미국 기업들의 원가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미국 내 주요 AI 기업들은 올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와의 협력을 확대하며 AI 서버 인프라에 약 1000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고, 메타 역시 연내 AI 서버 수만 대를 추가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구글, AWS 등도 AI 데이터센터 증설에 나섰다. 이들 기업이 필요로 하는 핵심 메모리는 한국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구조다. 다시 말해, 미국이 관세를 매기더라도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서두를 이유는 많지 않다.

이런 배경에서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HBM 패키징 공장을 설립 중이다. 당초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을 조건으로 한 투자였지만, 최근 관세 카드가 함께 거론되면서 복잡한 셈법이 작용하고 있다.

만약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거나, 관세 부담이 중첩될 경우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투자 속도를 늦추거나 계획을 재조정할 여지가 생긴다. 업계에선 "관세를 매기고 보조금은 주지 않는다면, 미국 내 생산 인센티브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관세는 보통 해외 공급사를 압박하는 수단이지만, 지금은 AI 시대에 '공급자가 갑'이 된 시장 구조"라며 "특히 메모리는 수요 폭증에 따라 공급이 부족한 상태여서, 미국이 오히려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상황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HBM은 반도체 중에서도 가장 정밀한 공정과 고도화된 패키징 기술이 요구되는 제품으로, 단기간에 미국 내 생산 체계를 구축하기 어려운 만큼 한국 공급선 없이는 AI 전략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 역시 "미국이 반도체를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전략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방식이 고율 관세라면 스스로를 옭아매는 결과가 될 수 있다"라며 "AI 수요를 견인하고 있는 것은 결국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고, 관세 부담은 고스란히 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태용 기자
tyba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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