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장애인 인구… 접근성 강화, 게임업계 미래 과제로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고령화로 인한 장애인 인구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면서, 장애인 접근성 연구에 대한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그간 색약 모드 지원 등 기초적인 수준에만 머물렀던 국내 게임업계 장애인 접근성 인식에도 조금씩 변화 조짐이 관측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여기에는 문화생활인 게임을 즐길 권리도 포함된다.
그러나 낮은 접근성으로 인해 상당수 장애인은 게임을 오롯이 즐기지 못하는 형편이다. 지난해 정부 발표에 따르면 국내 비장애인들의 41%(평일), 32%(주말)는 여가 활동으로 게임·인터넷 검색을 즐긴다. 반면 장애인들은 각각 18%, 15%에 그쳤다.
최근 콘진원이 발표한 ‘시각장애인 게임 접근성 연구’에 의하면 시각장애인이 게임에 불편을 느끼는 요소를 점수화(100점 만점)한 결과, 게임 플레이(49.8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게임 시작 단계(29.3점)와 인게임 아이템 결제(20.8점)가 뒤를 이었다.
이들은 음성출력 기능 등을 포함한 인게임 자체 접근성(69.7점) 개선이 시급하다고 응답했다. 별도 보조 기기·프로그램 지원(19.8점)을 요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정부 지원 정책에 대해서도 ‘개발시 접근성 의무화 정책’과 ‘접근성 기술개발지원’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하는 등, 인게임 접근성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콘진원 측은 “시각장애인들은 스토리 파악이나 인게임 진행 등에 있어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구매 의욕 등 게임에 큰 흥미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로딩 피드백, 길 찾기, 타이머 피드백 등 인게임 기능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색약 모드 등 기초적인 접근성 기능만 제공하거나 그마저도 관련 게임 가짓수가 부족한 국내와 달리, 서구권에선 과거부터 장애인 게임 접근성 연구를 활발히 진행해 왔다.
미국 게임사 일렉트로닉아츠(EA)는 장애인 접근성을 높이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 특허로 출원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 콘텐츠 밝기, 대비 및 색맹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오픈소스 코드를 공유해 개발자들이 게임에 사용하거나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콘솔 플랫폼 엑스박스는 접근성 가이드 페이즈를 운영하면서, 보조기기에 해당하는 전용 컨트롤러도 개발해 배포 중이다. 너티독은 자사 게임 내 시각 접근성 프리셋을 제공하고, 텍스트 음성 변환과 자동 목표 및 이동 기능 등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장애인 게임 접근성 강화에 집중하기도 한다. 미국은 2010년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법’(CVAA)를 제정해 온라인 동영상 콘텐츠 제공 서비스 사업자의 접근성 의무를 강화했다. 영국은 2004년 마련된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꾸준히 개정하면서 기술적으로 도입이 가능한 접근성 기술 표준 체계를 구축, 개발사를 독려하고 있다.
최근엔 국내에서도 몇몇 대형 게임사 중심으로 장애인 접근성 연구가 본격화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지난해 3월부터 국내 게임사 최초로 장애인 게임 보조기기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서울시 및 경기도 거주 지체‧뇌병변 장애인 35명을 대상으로 1대1 공학전문가 면담, 사용성 평가, 사용자 대상 훈련 등을 거쳐 총 180대의 맞춤형 게임 보조기기를 지원했다.
이들은 올해도 동일한 사업을 전개, 장애인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 지난 5일 지원 희망자 모집에 나섰으며, 오는 6월 중 최종 지원자 30여명을 선정할 예정이다.
엔씨소프트(엔씨)는 지난해 게임 접근성 옵션 개발 가이드를 마련, 총 9가지 접근성 옵션을 출시 게임에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출시된 ‘퍼즈업: 아미토이’와 ‘쓰론앤리버티’에는 색감 모드와 섬광 효과 감소 등의 접근성 옵션이 적용됐다.
최근엔 자사 장애인 의사소통 앱 AAC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했다.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에 알맞은 목소리를 표현력 있는 음성 합성 기술을 통해 제공한다.
스마일게이트는 지난해 출범한 D&I실을 중심으로 접근성 연구를 시작했다. 청각장애와 시각장애, 색각이상, 운동장애를 게임의 4가지 장벽으로 분류하고, 관련 연구를 지속 중이다.
D&I실은 현재 장애 당사자 대상 접근성 테스터를 채용해 개발 피드백을 축적하고 있다. 장애인 게임 접근성 인사이트 향상 도구를 개발하는 미국 에이블게이머즈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노하우도 쌓고 있다. 자체 게임 접근성 가이드북 및 체크리스트도 준비 중이다.
다만 정부 차원의 연구나 제도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콘진원 조사에서 장애인 응답자 대부분이 게임의 긍정 효과로 ‘전반적 삶의 질 향상(69.1%)’과 ‘심리적 건강 증진(68.3%)’을 느꼈다고 응답한 만큼, 개발사와 연계한 연구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장애인 접근성 강화가 향후 게임업계의 필수 과제가 될 수 있다는 전문가 시각도 있다. 고령화로 인해 장애인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장애인 접근성 문제가 곧 게임사 미래 생존과도 직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원 대상에서 나아가, 잠재적 고객으로 봐야 한단 목소리다.
실제,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은 전체 인구 대비 5.1%(264만2000여명)다. 2011년(38%)에 비해 크게 늘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등록장애인 2명 중 1명은 노인이다. 65세 이상 장애인 비중은 꾸준히 높아져 2010년 37.1%에서 지난해 53.9%로 상승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 이용자 분포가 해를 거듭할수록 확대되고 있다. 여성에 이어 중년까지 폭 넓게 게임을 즐기고 있다”면서 “신규 이용자 유입이 감소하는 추세에서 장애인 접근성 강화는 고령이 된 기존 고객을 지키고, 또 확대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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