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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전산망 마비 원인 지목된 네트워크 맹주 '시스코'…하지만 침묵 中

이종현 기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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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행정안전부가 11월17일 행정 전산망 마비와 관련해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의 포트 불량 외에는 다른 원인을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네트워크 장비 기업 시스코 시스템즈(이하 시스코)의 라우터가 문제였다는 것인데,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29일 행정안전부와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복구 설명회를 진행했다. 이재용 국가정보자원관리원장은 “장애 발생 후 우리측과 시스코 국내 기술진이 원인을 확인하지 못해 미국 본사까지 문의했다. ‘단순 접촉 불량’일 수 있다는 의견이 왔으나 구체적인 불량의 발생 원인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정보기술(IT) 업계 일각에서 네트워크관리시스템(NMS) 등 장비에 대한 가시성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갖춰졌음에도 원인 규명이 늦은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돼 왔다. 이와 관련 서보람 행정안전부 디지털정부실장은 “이번 장애는 제조사조차 답변하기 어려운 아주 특수한 장애”였다고 말했다.

실제 행정안전부는 장애 발생 후 시스코 한국 관계자도 함께 문제 원인을 파악했지만 문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해당 장비가 최근에 교체된 장비도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라우터는 2015년11월30일 도입됐다. 내구연한은 9년이다. 내구연한이 초과하더라도 곧바로 폐기하는 것은 아니다. 단계적 점검을 통해 교체가 이뤄지는 만큼, 당초 지적돼 온 장비 노후화로 인한 장애는 아니라는 것이 행정안전부와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11월17일 사고 이후 반복된 장애에 대해서는 각각 다른 원인이 있었다고 전했다. 조달청 나라장터의 경우 특정 해외 IP에서 트래픽이 많이 발생해 서버가 과부하된 케이스다. 공무원 내부회계 시스템은 침입방지시스템(IPS) 문제로 15분 남짓의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서보람 실장은 현재 시스템의 경우 노후화돼 구조적으로 신기술 적용이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예비타당성조사 단계인 차세대 지방행정공통시스템을 추진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행정안전부의 발표 이후 이제 관심은 시스코의 입으로 향한다. 행정안전부가 시스코의 장비 문제라고 명확하게 밝힌 만큼 시스코가 답을 내놓을 차례다. 다만 시스코로서는 행정안전부와 각을 세울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긍정도, 부정도 않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결국 명확한 원인은 규명하지 못한 채 사건이 마무리될 것으로 점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편 중요한 것은 이미 발생했던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추진할 차세대 사업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예비타당성조사 중인 차세대 사업은 약 5846억원 규모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설계 단계부터 공을 들여야 한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오로지 가격으로만 경쟁하게 만드는 조달청 나라장터의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업 제안서에서 특별한 기술을 요구할 경우 일부 기업이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독소 평가 조항이 있다’고 항의한다. 기술이 없더라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무색무취한 사업으로 발주하라는 거다. 문제는 이게 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하향평준화의 반복이다. 챗GPT와 같은 특별한 기술이 있다고 해도 그걸 쓰는 순간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한다. 어처구니 없다”며 “왜 좋은 기술을 가진 기업이, 차포 다 떼고 다른 기업과 경쟁해야 하나. 공공 IT 시스템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비판했다.

모든 사업에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경쟁입찰이 기본이긴 하나 수요기관이 필요할 경우 수의계약으로도 계약이 이뤄진다. 가령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2019년 당시로서는 생소한 클라우드 워크로드 보호 플랫폼(CWPP) 사업을 발주했지만 관련 기술을 갖춘 국내 기업이 없어 외국계 기업인 트렌드마이크로와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2022년부터 안랩, SGA솔루션즈 등이 관련 기술을 갖춰 경쟁 구도가 형성된 상태다.

한 IT 서비스 기업 대표는 “공정경쟁을 위해 독소조항을 넣으면 안 된다는 것이 악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완전히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잘못 없앴다간 ‘짬짜미’ 사업이 나올 수도 있다”면서도 “현 제도 하에서 혁신 기술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의견을 내비쳤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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