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R&D의 품격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그동안 우리나라는 제조업을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선행국가를 추격하고 가격경쟁력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켰다. 충분히 효과적이었고 원하는 결과를 어느 정도 얻었다. 문제는 앞으로는 이런 방식이 시장에서 먹히기 어렵다는데 있다.
예컨대 액정표시장치(LCD)에서는 초기에 일본 업체가 개발한 것을 뒤따르는 형태가 이뤄졌다. 기술을 배워서 개량시키고 가격은 저렴하면서 화면크기를 넓히는 등의 작업을 거쳤다. 브라운관(CRT)에서 평판패널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며 우리나라는 글로벌 디스플레이 업계 1위로 올라서는 후광을 누렸으나 중국이 대규모로 LCD 산업을 육성하면서 상황이 달라졌고 업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같은 새로운 디스플레이 제품의 연구개발(R&D)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업체별, 기관별 입장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당장의 생존에만 집중해 농익은 R&D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기술을 가져다 사용하고 싶은 의지가 충분하고 R&D 의뢰와 협업을 제안하지만 중소기업이 난색을 표한다는 것.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기술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생존을 답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해당 기술을 특정 대기업에만 제공해야 하는 조건이 따라붙으면 다른 대기업에 판매할 수 없다. 기술을 제공한 대기업이 갑자기 제품을 단종시키거나 다른 기술을 선택하면 곧바로 벼랑끝이라는 불안감이 있다.
R&D를 지원하는 정부도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다. OLED가 차세대 디스플레이라는데 이견이 없지만 LCD와 달리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고 있는데다가 표준도 없고 정확한 기술적 해결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라 무작정 희망을 걸고 R&D 자금을 주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한정된 예산에서 최대의 효과를 누리길 원하고 그래서 업계가 좋은 투자선례를 만들어달라는 얘기를 한다.
각자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다만 서로간의 ‘신뢰’가 있는지는 조금 의문이다. 먹고사는 문제라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공통적으로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부분은 무척 아쉽다. 순진한 발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OLED 원천기술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크로스 라이선스를 통해 판을 키우고 이후에 경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LCD에서는 원천기술을 마련하기 어려웠지만 OLED의 경우 아직까지 기회가 충분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분명한 것은 현재 산업 전체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다. 비단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위기의 순간에서 서로 협력할지, 아니면 분열을 선택할지는 알 수 없다. 이전과 달리 산업이 성숙해지면서 특정 기업 위주로 기술적 난관을 해결하거나 R&D가 주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각자의 이익추구를 바탕으로 필요에 의해서 뭉쳤던 예전과는 다르다.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R&D는 반드시 필요하다. 갈수록 R&D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특정 기업만 이익을 크게 보기는 어려워졌다. 불만만 토로할 것이 아니라 일단 살아남아서 새로운 기회를 엿봐야 한다. 그러려면 품격 있는 R&D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여기에는 그 어떤 이해관계가 끼어들어선 곤란하다. 강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아야 강해질 수 있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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