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주 52시간 완화, '마스터 키' 아니다…극약 처방은 이제 그만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지금 주52시간 근무에 대한 예외 조항 논쟁은 선후 관계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에 대한 성취와 보상이 우선시되면 탄력적 근무 운영의 활용도는 자연스럽게 높아지는데, 조직 문화 개선과 정책적 지원 없이 시간 운영만 논하고 있어요. 제도적 허용으로 직원들의 근무 강도를 높이기에는 한국이란 나라가 이제 너무 멀리 왔습니다."
반도체특별법 내 주52시간제 근무 예외 조항을 포함하는 안에 대한 정계의 논쟁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지난 1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조항을 제외한 반도체특별법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서다. 조항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온 국민의힘은 "거대 야당의 폭거"라며 일제히 비난의 메시지를 내놨고, 이 법안을 단독으로 패스트트랙에 지정한 민주당 등에서는 "쟁점이 있는 내용 외에 빠르게 추진하자는 것"이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주52시간 근로제는 근로자가 일주일에 총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도록 규정한 제도다. 기본적으로 주40시간 근무와 12시간의 연장근무가 가능하다. 이 가운데 긴급하게 작업량이 급증하거나 자연재해 등 발생으로 조치가 필요한 경우, 고용노동부 등에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받는 연구개발(R&D) 등은 특별연장근로제도로 추가 근무가 가능하다. 아울러 지난달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반도체 산업의 특별연장근로 인가기간이 최대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됐다.
이 조항이 주요 쟁점이 된 것은 반도체를 개발하는 분야에서의 연속성 때문이다. 인공지능(AI)칩 등 설계, 반도체 공정, 수율 향상을 위한 양산성 향상 등 개발 영역은 그 특성상 교대근무가 어렵다. 담당한 근로자의 분야를 타인이 이어받아 개발하기가 까다롭고, 일부 분야는 프로젝트성으로 단기간에 기술 향상을 이뤄야 하는 등 특수성이 강해서다.
업계 내에서도 관련 제약이 해결돼야만 TSMC, 엔비디아 등 각 분야 선두를 따라잡기 위한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시스템반도체의 설계, 공정 영역에서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만큼, 이를 쫓아가기 위해서는 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같은 정계의 움직임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다수다. 주로 R&D와 엔지니어링, 영업 등 현장 직종의 이들이 주로 그렇다. 주52시간에 대한 근로 제한이 생긴 이유가 해결되지 않은 만큼 부작용이 더욱 크고, 현장 환경을 모르는 사측이나 고위직 중심으로만 나오는 의견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 A씨는 "생산 분야든 설계든 분명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선두 기업을 추격할 여지는 과거 수년 간 있어왔다. 그 추격의 속도가 늦어지게 된 건 근로 시간이 짧아서가 아니라 기술적 기반의 경영적 판단이 이뤄지지 않은 것, 그리고 부족한 R&D 과제와 재원 등 정책적 지원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성장 잠재력이 있어도 수익성은 없었던 기술에 대한 개발이 뒷전으로 밀리고, 오롯이 수익성에만 집중된 사업들만 활발하게 개발된 결과"라며 "SK하이닉스가 1위를 차지한 고대역폭메모리(HBM)만 해도 당시엔 성공에 대한 물음표가 컸던 사업이었다. 수많은 가능성을 잠재한 R&D 성과 중 HBM 정도가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가 빛을 발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52시간제 근무 제외 조항이 적용되더라도 실효성 있게 바뀌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중소·중견의 경우 낮은 자본적 체력으로 보상이 뒤따르기 힘들고, R&D와 기술 기반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지금 근로 강도만 높인다면 개인의 성취욕을 저하시킬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력들이 국내보다 업무 환경이 좋은 해외 기업을 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와 관련 또다른 업계 관계자 B씨는 기자를 향해 "주에 52시간의 근무를 해본 적이 있나. 한 두달만 지나도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B씨는 "국내 인력들 대다수는 자신의 업무적 성취를 위해서는 물론, 특유의 성실함이 있어 자기 업무를 내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있다면 보상이 부족했거나, 업무적인 동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이를 완전히 해결하면서 성장성을 갖추는 건 어렵겠지만, 주52시간 근로 예외 조항이 부작용에 대비해 확실한 실효가 있다고 볼 순 없다"고 덧붙였다.
한 반도체 중소 장비 기업 대표 C씨도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이들에게 부족한 건 소위 '워라밸'이 아니라 성과에 대한 성취감과 합당한 보상이다. 무작정 근무 시간을 늘리라고 하면 퇴사나 이직을 찾는 이들이 늘어날 뿐"이라며 "개발 직종이 많은 타 업체들만 봐도 왜 복지나 근무환경 조성에 더 신경쓰고 있겠나. 이미 국내 근로 환경은 과거의 우리나라나 대만 TSMC처럼 강도를 높인다고 회사에 남아 있어주는 환경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주52시간 근로 예외 조항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근본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동일하게 나온다. 근무 환경의 유연함 역시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현재 시장의 역할을 뒤바꿀 순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반도체 업계 내에서는 이보다 미래를 보는 기술 확보를 위한 R&D의 연속성 보장, 보다 자유로운 창업과 인수·합병(M&A) 등 시장 환경 조성, 법인세 감면 등이 아닌 설비투자에 대한 직접적 보조금 지원 등 해결할 과제가 산적하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이미 국내 반도체 업계는 정책적 지원이라는 측면에서 두어차례의 막대한 실패를 떠안은 적이 있다. 업계에 대한 몰이해와 부족한 지원, 확립되지 못한 생태계 등으로 무너져왔던 팹리스 업계가 대표적이다.
이제는 개별 기업으로도, 국가 정책으로도 헛되게 공진하고만 있을 시간이 없다. 이제야 꽃피는 AI 기반의 인프라 성장은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이 기회를 놓치게 되면 업계 전체의 저성장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주52시간 이상의 근무가 도입되냐, 아니냐가 아니다. 아픈 곳을 확실하게 짚어 치료하는 처방이 필요하다. 정치적 목적과 시선 피하기로 이어왔던 극약 처방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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