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IRA용 전구체 생산, 韓 핵심되나…'CNGR 한국법인' 피노 영향력 확대 [소부장박대리]

고성현 기자
LG화학 연구원이 양극재 샘플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기사 내용과는 무관 [ⓒLG화학]
LG화학 연구원이 양극재 샘플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기사 내용과는 무관 [ⓒLG화학]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중국 배터리 소재 기업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RA), 트럼프 리스크 회피를 위해 한국에 생산기지를 짓는 전략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전구체 1위 기업인 CNGR이 인수한 피노(옛 스카이문스테크놀로지)가 국내 양극제 업체와의 협력 관계를 넓히며 눈에 띄는 투자 행보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전구체 기업인 CNGR은 작년 6월 국내 기업인 스카이문스테크놀로지를 인수하고 사명을 피노로 변경, 국내 전구체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특히 포스코퓨처엠과 합작한 씨앤피신소재테크놀로지(이하 씨앤피신소재)를 통한 확장 전략을 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구체는 배터리 전압·에너지밀도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만들기 위한 중간재다. CNGR은 삼원계 양극재 원료인 니켈·코발트·망간 구성 제품과 인산·철 중심의 리튬인산철(LFP)용 전구체를 모두 생산하고 있다. 주요 고객사는 중국 양극재 및 국내 주요 양극재 4사(포스코퓨처엠·엘앤에프·LG화학·에코프로비엠)다.

당초 중국 전구체 기업들은 미국 IRA 내 FEOC 지정 요건을 회피하기 위해 국내 양극재 업체들과 손잡고 합작을 진행하는 등 우회로 마련에 주력해왔다. 미국 현지 진출을 통한 FEOC 해소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체결국이면서 대형 배터리 고객사까지 보유한 한국을 우회 생산기지로 활용하겠다는 의도였다.

실제로 글로벌 코발트 1위 생산업체인 화유코발트가 LG화학과 합작한 'LG-HY BCM'을 구미에 설립해 작년부터 가동에 돌입했고, 새만금에서도 전구체 합작투자를 발표하며 협력 비중을 높였다. 아울러 화유코발트는 포스코퓨처엠과도 전구체, 니켈 공장을 합작해 포항에 짓기로 했다.

또다른 전구체 기업인 거린메이(GEM) 역시 SK온, 에코프로와 손잡고 새만금에 전구체 생산을 위한 투자 발표를 내놓으며 국내 진출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관련 투자 동력이 크게 약화된 모양새다. 지속적인 전기차 캐즘 여파로 국내 기업의 투자 재원 수준이 떨어진 데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라 추가적인 제재 가능성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화유코발트는 포스코퓨처엠과의 포항 니켈·전구체 공장 투자를 백지화했고, LG화학과의 신규 새만금 투자 역시 예정된 계획을 벗어나 연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GEM과 SK온, 에코프로 간 새만금 투자에 대한 소식도 거의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포스코퓨처엠 양극재 공장 [ⓒ포스코퓨처엠]
포스코퓨처엠 양극재 공장 [ⓒ포스코퓨처엠]

반면 CNGR은 양사와 달리 국내 투자에 대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CNGR은 작년 인수한 피노를 통해 신에너지 부문 중심 사업 개편을 서두르고, 작년 말 엘앤에프와 공급 계약 4건을 체결하도록 하고 있다.

CNGR, 포스코퓨처엠이 합작한 전구체 법인 '씨앤피신소재'의 지분 관계가 변하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당초 이들 법인은 CNGR이 80%, 포스코퓨처엠이 20%를 확보하는 안으로 합작을 추진해왔다. 그러던 중 CNGR의 한국 법인 격이 된 피노가 이 합작법인의 지분 29%를 인수하며 영향력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장기적으로는 피노의 씨앤피신소재 지분이 더욱 높아져 관련 사업 운영을 전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피노가 지분 추가 인수를 통해 합작법인 지분 절반을 확보하고, 포스코퓨처엠 외 외판 공급을 추진해 국내 전구체 공급망의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서다.

아직 구체적인 수치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씨앤피신소재가 확보할 연산 11만톤 중 5만톤을 포스코퓨처엠, 6만톤을 타 양극재 업체로의 외판을 추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변수는 남아 있다. 포스코퓨처엠이 씨앤피신소재 지분율 20% 취득을 1년 연기하며 투자 확대 계획의 불확실성이 생겨서다. 같은 중국계 기업인 화유코발트와 GEM의 투자가 정체되거나 철회된 만큼, 관련 논의가 지연될 경우 CNGR의 피노를 통한 진출 전략도 무산될 여지가 남아 있다는 평가다.

씨앤피신소재의 지분 취득과 투자 연기에 대해서는 조만간 결정이 날 것이라는 소식도 나온다. 국내 배터리 양극재 업계가 당장 중국 업체 의존도를 지우기 어려운 만큼, 협력 관계를 확대하는 방향이 유지될 것이라는 의미다. 특히 CNGR이 전구체 원료인 니켈 등을 인도네시아 등 FEOC 이외 국가로 넓히고 있어, 상호 간 이익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 배터리 소재 업계 관계자는 "국내 양극재 업체가 다방면으로 전구체 국산화를 위한 절차를 밟아 나서고 있지만, 광권을 확보한 중국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국내 업체 간 합작으로 전구체 국산화를 추진하는 방향과 FEOC 리스크를 낮춘 중국 기업과의 협력이 병행되는 '투 트랙' 전략이 보다 심도 있게 추진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고성현 기자
narets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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