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인싸] ‘바이퍼’ 박도현 “올해 무너지기 직전까지 갔다”
[디지털데일리 문대찬 기자] ‘바이퍼’ 박도현은 올해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한화생명e스포츠(이하 한화생명) 유니폼을 다시 입고 한국 무대(LCK)로 복귀했지만 리그 우승도, ‘LoL 월드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진출도 거머쥐지 못했다. 지난 2년간 중국(LPL)에서 뛰면서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기량을 갖춘 원거리 딜러로 성장한 그가 기대했던 결과는 분명 아니었다.
지난 15일 일산 한화생명 캠프원에서 <디지털데일리>와 만난 박도현은 “가장 아쉬운 건 롤드컵 선발전 마지막 경기였다. 그 경기 빼고도 만족스러운 경기는 몇 없었다. 올해 전반이 다 아쉬웠다”고 전했다.
“개인적으로 기대만큼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았다”고 아쉬워한 그는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있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무너지기 직전까지 갔던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한화생명은 지난 서머 시즌 사생활 논란으로 주전 선수 한 명이 중도 이탈하는 불운을 겪었다. 당시 상승세였던 한화생명은 해당 사태 후 2군에서 후보 선수를 올려 시즌을 이어나갔으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박도현은 “분명 타격이 컸던 사건이었다. 그 선수와는 같은 팀을 해 본 게 처음이지만 동고동락하던 사람이 사라지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랬을 것”이라며 당시 사태로 심적인 어려움이 컸다고 인정했다.
다만 박도현은 오랜만에 맞은 긴 휴식기 덕에 마음을 충분히 재정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섰다”며 “앞으로 고쳐나가야 할 점을 알았다. 내년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박도현은 이적 시장이 열린 지난달, 한화생명과 빠르게 재계약 도장을 찍었다. 좋은 기억이 많은 중국 무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을 깬 결정이었다.
박도현은 “이루고 싶은 걸 올해 이루지 못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시 한화생명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또 게임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잘 갖춘 팀이라고 생각해서 재계약을 하기로 결정했다. 마음을 잡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박도현은 ‘한화생명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오기가 반영됐을 것’이라는 일부 팬들의 시각에도 일부 동의했다. 올해로 프로 데뷔 6주년을 맞은 박도현은 유독 한화생명에서 좋은 기억이 없다. LCK 데뷔 첫해(2019)에 롤드컵에 진출하며 주가를 높인 그는, 한화생명 소속으로 뛴 2020년 서머 시즌엔 최하위권을 다투는 성적을 거뒀다. 이후 건너간 중국에선 에드워드게이밍(EDG)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2년 연속 롤드컵에 진출했고, 한 차례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박도현은 “한화생명에서 꼭 보여주고 싶고, 증명해 보이고 싶은 마음 같은 게 있다. LCK 우승을 위해 돌아오긴 했지만 거기 국한되지 않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한화생명에서 커리어가 풀리지 않는다는 얘기에는 개의치 않는다. 내가 잘하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계약을 결정하게 만든 한화생명만의 강점으로 시설과 식사 등 연습 환경을 꼽으면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신다고 생각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중심 선수인 박도현이 팀에 남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화생명의 이적 시장 작업은 술술 풀렸다. 올해 좋은 모습을 보여준 미드라이너 ‘제카’ 김건우가 재계약에 합의했다. 뒤이어 젠지e스포츠(이하 젠지)에서 올해 리그 2회 우승을 합작한 ‘도란’ 최현준, ‘피넛’ 한왕호, ‘딜라이트’ 유환중이 합류했다. 단순 전력만 놓고 보면, 올해 한화생명 로스터보다 한층 더 막강해졌다는 평가다.
박도현은 “내가 재계약에 먼저 합의하면 좋은 선수들이 팀에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면서 “나도 같이 해보고 싶은 선수들이 있었다. 피넛 선수가 제일 궁금했는데, 이번에 같이 하게 돼 좋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팀 색깔이 잘 예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잘할 것 같다”면서 “새로 온 팀원들은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선수들이다. LCK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와도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믿음이 있다. 여러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단짝처럼 움직일 서포터 포지션의 유환중에 대한 당부를 전하기도 했다. 박도현은 “지금까지 많이 호흡을 맞춰보진 않았지만 환중이는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선수”라면서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많이 싸우면서 게임 했으면 좋겠다. 내가 환중이 보다 2살이 많지만 친구처럼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대해줬으면 좋겠다. 나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박도현은 최현준과는 그리핀 이후 4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됐다. 공교롭게도 한화생명에선 룸메이트다. 그는 “현준이가 전화가 와서 내 침대가 무슨 침대인지 물어봐서 같은 방을 쓰게 됐다는 걸 알게 됐다”며 “잠버릇 없이 얌전히 잘 자더라”며 만족하기도 했다.
대회가 기반한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는 내년 대격변을 맞는다. 레드 진영을 중심으로 지형지물이 바뀐다. 바론(내셔남작) 둥지 형태도 3가지다. 10여년간 지속하면서 일종의 공식마저 생긴 이스포츠 생태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선수들은 현재 해당 패치 버전으로 연습 경기를 시작했다. 이에 박도현은 “전체적으로 재미있어질 것 같다”면서도 “적응이 힘들 것 같다. 지형지물이 크게 바뀐 게 변수가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레드 진영이 많이 달라져서 플레이나 픽을 할 때 많이 고민해야 될 것 같다”며 “정글 개입이 많아지기 때문에 초반 인베이드 방어도 레드 진영 중심으로 연구해야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솔로 랭크가 바뀌어야 유저들 사이에서 활발히 정보도 나올 텐데, 지금은 연습 서버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어서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박도현은 특히 오브젝트의 바뀐 비주얼에 적응이 힘들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왜 그렇게 바꿨는지 모르겠다. 바뀐 바론도 너무 징그럽게 생겼다. 팔이 달려 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또 ‘공허 전령’을 ‘사이온’의 궁극기처럼 타고 다닐 수 있게 됐다면서 “활용법을 고민 중인데 적어도 원거리 딜러가 타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전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박도현이 내년 경계하는 팀은 T1이다. 올해 롤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T1은 우승 멤버 전원과 재계약에 성공하며 전력을 유지했다. 그는 “한 팀만 뽑자면 당연히 T1이다. 잘하는 팀이다. 승패를 떠나 재밌는 경기를 하면 많이 얻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박도현의 내년 목표는 우승, 그리고 성장이다. 그는 “내년엔 하루하루 어떤 식으로든 달라지고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며 “올해는 아픈 시즌이었지만 그만큼 많이 배웠다. 나중에 돌아보면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일련의 사건들로 더 단단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잘하겠다. 많이 기대하고 지켜봐 주면 감사하겠다”며 응원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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