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클로즈업] 수천억 과징금 피한 올리브영, 무신사·쿠팡도 ‘예의주시’
[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CJ올리브영이 ‘갑질’ 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18억9600만원을 부과받았다. CJ올리브영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분류될 경우 수천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지만, 공정위가 이에 대해선 판단을 보류했다.
여러 형태 화장품 소매유통 채널이 등장하고 온·오프라인 경쟁구도가 강화되는 걸 고려하면, CJ올리브영이 속한 시장을 헬스앤뷰티(H&B) 오프라인 매장보단 확대돼야 한다는 게 공정위 입장이다. 올리브영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하게 됐다.
◆ ‘갑질’한 올리브영, 시장지배적 사업자인진 ‘글쎄’=지난 7일 공정위는 CJ올리브영(이하 올리브영)이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했다면서 과징금 18억96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 고발하기로 했다. 공정위가 판단한 올리브영 갑질 행위는 ▲행사독점 강요 ▲납품과 미환원 ▲정보처리비 부당 수취 3가지다.
구체적으로 올리브영은 독점으로 계약 맺은 EB 외에 단독 납품거래하지 않는 브랜드에게도 자체 행사기간 경쟁사들과 행사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요구했다. 또 행사 명목으로 납품업체 인하된 가격으로 상품을 받고, 행사 종료 후 남은 상품을 정상가로 판매하면서 납품업체에 환원하지 않아 차액 8억원을 부당수취했다.
납품업체 의사 상관없이 자체 전산시스템에 상품판매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정보처리비를 수취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배타적 거래 강요 금지 등 올리브영이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3가지 요인에 대해 각각 과징금을 메겼다.
올리브영 측은 “중소기업 브랜드 중심 K뷰티 유통 플랫폼 육성 과정에서 미처 살피지 못했던 부분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문제가 된 부분은 내부 시스템 개선을 이미 완료했거나 완료할 예정이며, 향후 모든 진행 과정을 협력사들과 투명하게 공유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공정위는 최대 쟁점이었던 올리브영 ‘EB 정책’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배타조건부 거래)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선 “시장지배적 사업자인지 불확실하다” 판단을 유보하고 심의절차 종료를 결정했다.
◆ 공정위 “시장획정 현재 판단 어려워…EB 정책 위법 아니다”=올리브영 EB정책은 납품업체가 경쟁사에 납품하지 않는 대신 광고비를 줄여주는 정책이다. 올리브영과 공정위에 따르면 EB정책으로 계약맺은 브랜드 수는 매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실제 올리브영 전체 매출액에서 EB 비중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올리브영 매장이 2014년 410개에서 2021년 1256개로 늘고, 소비자들 인기가 높은 만큼 많은 중소 브랜드들이 올리브영과 계약을 맺고 싶어한다. EB정책 계약을 맺는 브랜드들이 많아질수록 경쟁사들은 해당 브랜드를 판매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
관련 제보를 받고 조사한 공정위 심사관은 올리브영이 점유율 70% 이상으로 파악되는 H&B 오프라인 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위를 남용했다고 판단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의동 의원(국민의힘)은 올리브영 시장지배적 지위가 인정된다면, 과징금 부과기준율에 따라 최대 6000억원 수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올리브영을 시장지배적사업자인지 불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김문식 공정위 기업거래결합심사국장은 브리핑에서 “적어도 올리브영 시장은 H&B 오프라인 매장보단 확대돼야한다는 결론을 냈다”면서도 “앞으로 경쟁구도가 어떻게 바뀌고, 실제 경쟁사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금 단계에선 확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위원회는 올리브영 EB정책에 대해 위법하다고 결정을 내린 게 아니기 때문에 올리브영이 이 행위를 계속 하더라도 공정위가 중단하도록 할 수는 없다”며 “다만 올리브영이 화장품 유통채널에서 지위가 계속 상승하고 있어, 지속 모니터링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면죄부’ 준 것은 아니지만...업계 우려·기대 공존 이유=공정위는 올리브영 EB정책에 대해 ‘무혐의’가 아닌 ‘심의절차 종료’를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심의절차종료는 사실관계 확인이 곤란하거나 새로운 시장에서 시장상황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 위원회 판단을 유보하는 절차다. 올리브영 EB정책에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올리브영 EB정책에 공정위가 “위법은 아니다”라고 언급한 점에서 업계 간 뷰티 독점 브랜드 유치를 통한 경쟁사 납품 금지 경쟁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뷰티 시장은 온오프라인 경계가 거의 사라진 상황이다. 온라인에선 쿠팡이 뷰티시장에 뛰어들며 지난 11월 한달간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를 진행했다. 컬리 역시 ‘뷰티컬리’를 선보이며 서울 성수동에 소규모 체험 공간을 마련한 바 있다. 오프라인에선 시코르·세포라 등 이전에 없던 뷰티 편집숍들이 생겨났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쿠팡은 올리브영이 납품업체들에 경쟁사 입점을 금지한다며 공정위에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으로 신고하기도 했다. 동시에 LG생활건강은 쿠팡이 온라인에서 독점적 유통업체 지위를 남용해 회사측에 부당하게 판매 가격 인상을 요구했단 입장이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에서 5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는 무신사는 최근 오프라인 진출 속도를 높이고 있다. 무신사는 올리브영 EB정책과 유사한 파트너십 정책을 운영 중이다. 입점 브랜드사 중 무신사와 파트너십을 맺으면 무신사가 광고비 지원 등을 해주며 혜택을 얻을 수 있는 정책이다. 이때 무신사는 협력사들이 경쟁사에 입점할 시 무신사와 논의할 것을 계약 조건에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상 유력 경쟁사들 입점은 금지할 가능성이 높다.
온·오프라인 시장을 같이 보게 된다면 쿠팡은 뷰티 시장에선 후발주자로 불리하지만 생활용품 시장에선 유리하게 된다. 무신사 역시 온라인에선 지배적 사업자로 볼 수 있지만 온·오프라인을 함께 보면 그 영향력 줄어든다. 공정위가 시장획정을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따라 경쟁사들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지고, 기업들 희비도 갈릴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김 국장은 “이 시장 획정은 화장품 소매유통 채널과 관련해서 이런(유보) 판단을 위원회에서 하신 것이지,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고 이해하면 안된다” 말했다.
다만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시장획정을 결정하지 않은 건 굉장히 이례적이다”라면서 “중소제조사들 입장에선 올리브영 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고, 뷰티 시장 후발주자들은 브랜드 유치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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