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 ERP 전환

[IT클로즈업] 제4인뱅 포기한 더존비즈온, 제주은행서 ‘ERP 뱅킹’ 전략 첫 발

이안나 기자

더존을지타워 [ⓒ 더존비즈온]
더존을지타워 [ⓒ 더존비즈온]

[디지털데일리 이안나기자] 제4인터넷전문은행 도전을 철회한 더존비즈온이 지방은행 제주은행과 손잡고 ‘전사적자원관리(ERP) 뱅킹’이라는 새로운 금융 모델을 시험한다. 인터넷전문은행설립으로 비용 부담과 인허가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는, 기존 ERP 플랫폼과 보유 데이터를 활용해 금융사와 협업을 강화하는 현실적 전략을 택한 셈이다.

더존비즈온은 18일 제주은행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신주 566만여주를 570억원에 인수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제4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신청을 철회한 지 한 달만이다. 이로써 더존비즈온은 제주은행 지분 14.99%를 보유한 2대 주주가 됐다. 현재 제주은행 최대 주주는 신한금융지주다.

양사 이번 협력 핵심은 ‘ERP 뱅킹’이다. ERP 내 금융 기능을 임베디드 형태로 통합해 기업 고객이 기존 ERP 화면에서 대출·이체·보험·신용평가 등 금융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이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금융사는 기업 동의를 거쳐 실시간 자금 흐름과 거래 정보를 바탕으로 맞춤형 금융상품을 제안할 수 있고, 고객사 입장에선 비대면 채널을 통해 빠르게 기업금융 거래가 가능해진다.

더존비즈온은 이번 협력을 통해 핀테크 계열사 테크핀레이팅스(더존비즈온·신한은행·서울보증보험 합작법인) AI 기업신용평가 모델 서비스 등을 제주은행과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더존비즈온가 제주은행이 이번 협업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더존비즈온은 본업인 ERP·그룹웨어·세무회계 시스템에 금융 기능을 통합해 기업 운영 모든 문제를 단일 솔루션 내에서 해결하는 ‘ERP 플랫폼 고도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ERP 생태계 내 록인(lock-in) 효과를 강화하고, 금융 데이터 연계로 새로운 수익 모델을 확보하려는 방안이다.

제주은행은 자금공급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소상공인이 주요 타깃이다. 더존 ERP 데이터 기반으로 정교한 신용평가 체계를 구축해, 도내 기업 금융 접근성을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SOHO(소상공인) 특화은행’으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이다. 실제 제주은행은 이번 결정을 단순 투자유치가 아닌 ‘기존 비즈니스 전략을 완전히 탈바꿈하는 차원’으로 보고 있다.

제주은행 본점 전경 [ⓒ 신한금융지주]
제주은행 본점 전경 [ⓒ 신한금융지주]

양사 전략은 다르지만 ‘디지털뱅킹’이라는 공통 목표 아래 협력 기반을 다진 셈이다. 다만 플랫폼 공동 개발 또는 금융상품 공동 기획 등 세부 역할 구분은 아직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더존비즈온 측은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신청은 철회했지만, 기존에 준비해온 다양한 금융 모델은 이번 협력을 통해 플랫폼 안에서 구현될 수 있을 것”이라며 “ERP 고객들이 겪는 금융 문제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플랫폼 진화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협력은 사업 구조상 몇 가지 제약을 안고 있다. 더존비즈온이 확보한 제주은행 지분은 법적 최대 한도인 14.99%로, 추가 지분 확보는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전략적 파트너로 참여하더라도 사업의 주도권을 실질적으로 갖긴 어려워 보인다. 제주은행이 신한금융지주 계열사라는 점에서도 더존비즈온의 적극적인 경영 참여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또한 금융서비스 확장을 위한 핵심 사업 중 하나인 ‘본인신용정보관리업(마이데이터)’ 라이선스 확보 여부도 미확보 상태다. 더존비즈온은 지난달 진행한 정기주총에서 해당 사업을 정관에 추가하고, 금융 당국에 마이데이터 예비인가를 신청했다. 단 아직까진 해당 사업 인가가 나진 않았다.

ERP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는 기술적으로 높은 활용 가능성을 갖는다. 다만 금융 서비스에 이를 접목하는 과정엔 제도적·기술적 장벽도 존재한다. 금융사는 리스크 관리 및 규제 대응을 위한 기준이 엄격한 만큼, 외부 플랫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자동화된 신용평가 모델이 실현되기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더존비즈온은 현재 제주은행과 협업에 집중하고 있으며, 다른 금융사로 확대 계획은 아직까지 없는 상태는 없다는 입장이다. 양사는 핵심 인력으로 전담조직을 구성해 내년 초 상품·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한다. 실질적인 금융상품과 서비스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지에 따라 양사 협업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이안나 기자
anna@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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