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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발자국] 닌텐도·소니·MS…가정용 게임기, 원조는?

백승은

그동안 다양한 전자제품이 우리 곁에서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을 반복했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던 기기가 어느 순간 사라지거나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부활하기도 했습니다. <디지털데일리>는 그 이유를 격주 금요일마다 전달하려고 합니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백승은 기자] 세대불문, 남녀노소 모두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매개를 찾자면 ‘게임’일 것입니다. 요즘은 PC나 스마트폰, 태블릿에 다양한 게임을 다운로드 하고 어디서든 플레이하곤 하죠. 20세기에는 게임을 하는 모습이 사뭇 달랐습니다. ‘조이스틱’ 등으로 대표되는 게임기를 가정에서 즐기곤 했는데요.

가정용 게임기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처음 등장했습니다. 세계 최초 가정용 게임기라고 하면 아타리를 생각하기 쉬운데요. 이보다 먼저 나온 제품이 있었습니다. 1972년 발명가 랄프 베어에 의해 고안된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입니다.

마그나복스 오디세이는 탁구 게임이었습니다. 화면에 작은 흰색 블록과 몇 개의 세로 선으로만 탁구의 형식을 구현했는데요. 버튼이나 조이스틱 대신 다이얼을 돌려 가며 조작하는 패들 컨트롤러를 갖췄죠.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판매량은 그럭저럭입니다. 1975년까지 3년 동안 35만대가 판매됐습니다.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이후 아타리가 휴대용 게임기를 내놨습니다. 아타리는 마그나복스 오디세이가 만들어진 해인 1972년 아케이드 게임 ‘퐁(Pong)’으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요. 아타리의 창립자 놀란 부쉬넬이 마그나복스 오디세이 속 탁구 게임을 보고 퐁을 고안했죠. 이듬해에는 TV에 연결할 수 있는 ‘가정용 게임기 퐁’을 출시해 각광을 받았습니다.

탄력을 받은 아타리는 1977년 ‘아타리 2600’을 내놓습니다. 이 제품은 기존 ‘아타리 비디오컴퓨터시스템(VCS)’로 불리다 제품명을 변경했죠. PC에 사용되는 롬(ROM) 카트리지 방식이 적용됐는데요. 아타리 2600은 출시 첫 해에 25만대가, 1년 뒤에는 한 해 동안 55만대가 팔렸습니다. 1984년까지 총 3000만대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마그나복스 오디세이에 비하면 놀라운 성적이죠.

그렇지만 아타리 2600은 아타리의 몰락을 가져온 제품이기도 합니다. VCS는 게임기 안에 게임이 내장된 형태가 아니라 외부에서 게임 팩을 구매해 넣어 게임을 즐기는 형식이죠. 아타리가 질 낮은 게임을 대량으로 개발해 비싼 가격으로 판매하기 시작하자 1980년대를 기점으로 고객들이 대거 이탈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른바 ‘아타리 쇼크’라고 불리는 현상입니다.

아타리 쇼크가 지나간 뒤 1983년, 닌텐도가 ‘패밀리 컴퓨터’를 들고 등장합니다. 아타리 2600을 벤치마킹한 제품이지만 게임 성능을 보다 강화했죠. 패밀리 컴퓨터는 아직까지 잘 알려진 ‘슈퍼마리오’를 비롯해 액션이나 슈팅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췄죠.

1990년 닌텐도는 패밀리 컴퓨터의 후속 제품인 ‘슈퍼 패미컴’을 선보이며 시장 강자를 유지합니다.

그렇지만 90년대에는 또 다시 닌텐도의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하는데요. 1994년 첫 선을 보인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그 주인공이죠. 32비트 3차원(3D)를 처리하는 플레이스테이션은 총 4개의 시리즈로 출시됐고,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가정용 게임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엑스박스'로 플레이스테이션의 아성에 도전 중입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온라인 게임이 성행하면서 게임기도 하락세입니다. 그렇지만 슬퍼하기는 이릅니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들은 증강현실(AR)이나 가상현실(VR)을 지원해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기기를 고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차원에서 게임을 즐기던 시대에서 시작해, 이제는 플레이어가 게임 속으로 들어가게 된 셈이죠.

백승은
bse1123@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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