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DD 인사이트] ‘아낌없이 주는 나무’ 文정부 핀테크정책...이젠 냉정해져야하는 이유

박기록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
[디지털데일리 박기록 논설실장] 카카오 김범수 의장이 국정감사장에 나와 연신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상생’(相生)의 해법을 거듭 약속한다. 다른 거대 플랫폼 기업들도 좌불안석이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여‧야할 것 없이 중소상공인들의 표를 의식해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을 더욱 거세게 질타한다. ‘대장동’의혹으로 격렬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지만 주목해야할 2021년 국회 국정감사의 또 다른 풍경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선, 끝내 공허함을 지울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카카오가 제시한 ‘상생’ 해법은 그 실효성 여부를 떠나 현실적으로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약속을 안지키면 그만이고, 안지킨다고 하더라도 제재수단은 없다. 그저 공수표가 안되기를 바랄뿐이다.

시대는 이제 이런 빅테크 기업들의 선의보다 근본적인 제도적 장치를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위한 해결책을 마련해야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최근 미국, EU에서도 빅테크 기업들의 약탈적 시장 파괴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반(反)독점 법안 등 규제 논의가 커지고 있는데,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 정책 당국도 이런 흐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어느 순간 통제할 수 없는 시장 위협 요인으로 느껴지는 상황, 이렇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정책적 판단이 잘못됐던 것일까. 그랬다면 어떤 부분에서 오류가 있었을까. 차분하게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핀테크의 역동적인 성장, 그러나 성장의 역설

지난 2017년 5월9일,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한 분야는 누가 뭐래도 ‘핀테크 산업’이다. 혁신적인 결제서비스의 도입 등 핀테크 정책을 기반으로 빅테크 플랫폼 기업은 이후 폭풍 성장을 거듭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표현될 정도로 이전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 핀테크 분야에서 파격적인 규제 완화가 이뤄졌다.

특히 지난 2019년 4월1일 시행에 들어간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이 분수령이다. 그동안 다소 어수선하게 전개돼왔던 핀테크 규제 완화 정책들은 ‘금융혁신지원특별법’를 근거로 1차 정비가 된다. 그리고 이후 샌드박스(Sand Box) 방식의 혁신적인 금융혁신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총 154건의 ‘혁신금융서비스’가 지정됐다. 이는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시행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서비스들이다. 이를 통해 국민 생활의 편익도 크게 증대됐다. 샌드 박스는 기존 규제때문에 시도할 수 없는 혁신서비스를 예외적 또는 한시적으로 허용해줌으로써 혁신과 성장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금융혁신지원특별법’뿐만 아니다. 지정대리인 제도를 비롯해 금융 데이터를 핀테크 기업들이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금융 클라우드의 허용 ▲오픈API 및 오픈뱅킹 확대를 통한 금융 경계의 해제 ▲마이데이터(Mydata)와 금융 빅데이터 개방을 통한 데이터 경제 활성화 등 입체적인 정책적 지원들이 동시에 뒤따랐다.

빅테크가 핀테크와 결합했을때, 그 시너지는 폭발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각종 규제완화가 지금은 의도치 않게 부메랑이 된 형국이다.

특히 샌드박스 방식의 규제완화 정책에도 이제 변화가 필요한지 고민해 볼 시간이다.

샌드 박스처럼 ‘예외’가 많아지면 어느 순간 시장 갈등은 높아질 수 있다. 기존 사업자들의 반발과 정책 당국의 유권해석에 사업의 향배가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의 사례처럼 금융상품 비교 견적을 ‘광고’로 볼 것인가 ‘중개’로 볼 것인가, 정책 당국의 관점에 따라 엄청난 파장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 참여자들이 이제는 보다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가 가능하도록 엄격한 법의 기준에 따라 시장 대응을 하도록 기존 샌드박스 방식의 규제 완화 시스템을 크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정책적 선의는 높게 평가, 그러나 냉정한 시장

문 정부가 핀테크 육성에 적극나섰던 이유는 궁극적으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 이었다. '핀테크 산업의 육성'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 두 마리 토끼를 좇았지만 사실 ‘일자리’에 더 방점이 찍혔다. 그렇다보니 필요 이상의 과도한 규제 완화가 이뤄졌는지 모른다.

정부는 금융산업에서 혁신적인 서비스가 시도되면, 거기에 수많은 새로운 비즈니스가 생겨나고, 또한 스타트업‧벤처 등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출현함으로써 결국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겨날 것으로 기대했다. 규제완화가 결국 여러 단계를 거쳐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빅테크 기업들이 수혜를 입고, 핀테크와 연계된 각종 서비스들을 출시하면서 그들이 과거 재벌의 행태를 닮은 시장 파괴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플랫폼 비즈니스로 기존 산업 생태계의 수직 종속화는 심화됐다.

반면 핀테크 산업이 성장한 만큼 폭발적인 양질의 일자리가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체감적으로 크게 와닿지는 않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결과가 의도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정책 당국을 비난할 수는 없다. 국가 정책은 언제나 공동체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선의(善意)를 가지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지난 몇년간의 핀테크 정책을 보면, 반드시 그 결과까지 항상 선의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경험을 얻게 됐다. 또 자본은 그 정책적 선의를 따지지 않고,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입증했다.

그동안 빅테크 기업에 열광했던 미국, EU 등 주요 선진국들이 이제는 빅테크를 규제하기위한 반독점 법안을 제정하려는 이유다. 5년전과 비교해 핀테크 산업이 크게 성장한 만큼 우리도 이제 그 몸집에 맞게 제도적 장치들을 재정비할 시점이 됐다.

공동체의 이익과 무관하게 누군가의 희생과 피눈물의 댓가로 이뤄지는 혁신, 그것을 더 이상 혁신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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