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기자]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계가 분주하다. ‘큰 손’ 애플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계약을 따내기 위함이다. 5년 전 승리한 업계 1위 TSMC와 절치부심한 2위 삼성전자의 대결 구도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TSMC는 애플의 아이폰 AP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물밑작업을 펼치고 있다. 2020년을 끝으로 애플과 TSMC의 독점 계약이 끝나는 데 따른 조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퀄컴, 애플 등 미국 반도체 설계(팹리스) 업체들이 공급처 다변화를 원하고 있다”며 “그동안 대만 업체들이 생산과 패키징, 테스트 등 후공정 분야를 전담한 만큼 한국 및 중국 기업에 기회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 TSMC와 삼성전자는 아이폰 AP를 나눠 생산했지만, 지난 2015년을 기점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었다. 승부를 가른 것은 ‘패키징’ 공정이었다. 패키징은 말 그대로 반도체를 포장하는 작업이다. 반도체 칩이 외부와 신호를 주고받도록 길을 만들고, 외부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TSMC는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FO-WLP)’ 기술을 앞세워, 2020년까지 아이폰 AP 독점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FO는 입출력(I/O) 단자 배선을 칩 바깥으로 빼내, I/O를 늘리는 방식이다. WLP는 웨이퍼를 자르지 않고, 범핑과 재배선 공정으로 한 번에 다수의 칩을 패키징하는 기술이다.
둘을 합치면 패키지 인쇄회로기판(PCB)이 필요 없고, 공정 횟수도 단축해 원가절감에 유리하다. 애플이 패키징으로 비용 및 성능 부분에서 개선을 이룬 TSMC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TSMC는 해당 기술에 ‘인포(Integrated FO)-WLP’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고, 개선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후공정에 속하는 패키징보다는 전공정에 관심을 두면서, 관련 기술력이 TSMC에 뒤처지게 됐다. 이후 삼성전기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팬아웃-패널레벨패키지(FO-PLP), 자체적으로 FO-WLP 기술 개발에 돌입했다. PLP는 WLP와 달리 사각형 패널을 활용해 패키징한다. 삼성전기는 FO-PLP 상용화에 성공했고, 지난 2018년 갤럭시워치용 AP에 적용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비전 2030’를 선언, 시스템반도체 강화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서 파운드리가 있었고, 이를 위해 삼성전기의 PLP 사업을 인수했다. 삼성전자가 삼성전기보다 연구개발(R&D) 및 설비투자 여력이 더 있다는 판단에서다. 반도체 사업부와의 연결성도 고려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아이폰 AP 생산 계약을 따내기 위해 패키징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패키징전문업체 네패스와도 협업 중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아이폰 AP 계약은 결국 삼성전자와 TSMC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5년 전 패키징 기술에서 승부가 갈릴 만큼, 삼성전자가 얼마나 TSMC와의 격차를 줄였을지가 관건”이라면서 “여전히 TSMC가 우세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이번 계약을 떠나 미래를 위해 패키징 기술 확보는 중요한 요소”라고 분석했다.
한편 TSMC와 삼성전자는 지난달 나란히 퀄컴의 5세대(5G) 이동통신 모뎀 칩 공급 계약을 따냈다. 두 회사는 극자외선(EUV) 공정을 도입한 유이한 업체들로, 7나노 공정부터는 양강체제다. 향후 퀄컴, 애플 등 대형 고객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