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에 돈과 인재가 몰린다…금융 혁신, 무한경쟁속으로
* 본 기사는 6월말 디지털데일리가 출간하는 <2019년판 디지털금융 혁신과 도전>에 수록된 내용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편집사정상 책의 내용과 기사가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금융권, 디지털뱅킹 고도화… 디지털·IT 인재육성 총력
IT투자 불균형‧보안위협 상승 등은 새로운 과제로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솔직히 좀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똑똑한 젊은이들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을 들으면서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안들더군요. 아무튼 기대가 큽니다.”
국내 핀테크업계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손꼽히는 L상무는 최근 자신이 겪은 유쾌한 경험담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국내 한 시중 은행이 진행하는 핀테크 스타트업 오디션에 수년째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L상무는 “올해 발표자들의 수준이 예년과 확연하게 차이가 날 정도로 뛰어난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오디션은 영어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의 연령도 20~50대로 다양했다. L상무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수한 핵심 인재들이 정말로 핀테크 분야로 몰려들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L상무가 놀란 것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다름아닌 이 행사를 주관했던 이 은행 담당자들의 시종일관 진지했던 태도다.
“짧지 않은 기간동안 세심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매우 알찼다”며 “성과를 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매우 인상깊었다”고 평가했다. 과거 금융 당국이 정책 화두에 맞춘 캠페인을 만들면 금융권이 억지로 따랐던 ‘관치’의 모습은 더 이상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를 둘 만하다.
이제 ‘핀테크’가 한 때의 유행이 아닌 분명한 ‘실체’로써 평가받고 있다는 방증일까.
비전이 뚜렷하면 투자자들과 인재들이 모이고, 결국은 좋은 성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결국은 시장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있어야만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런면에서 아직도 갈길은 많이 남아 있지만 우리나라 핀테크 산업의 튼튼한 선순환 고리가 비로소 만들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빅테크(Big Tech),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는 현대판 신데렐라 신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기업가치가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이 국내에선 아직 한 곳에 불과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지금까지의 상황일 뿐이다. 앞으로의 전개는 아무도 모른다. 특히 금융 핀테크 분야에서 이러한 유니콘 신화가 창출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정부는 파격적인 규제완화와 핀테크 정책지원에 나서고 있고, 이같은 정책의 일관성은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주고 있다. 금융권도 ‘스케일 업(Scale Up)’ 전략에 따라 검증된 핀테크기업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과감하게 베팅하기 시작했다.
시장의 역동성, 효과 나타나는 핀테크 정책 성과
2019년, 우리 금융산업에서는 최근 몇 년간 볼 수 없었던 변화들이 분출되고 있다. 아직 국민들의 피부에 직접적으로 크게 와닿지는 않은 단계지만 올해 4월1일부터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이 시행에 들어가는 등 다양한 형태의 혁신 금융서비스 모델이 시장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3~4년전, 핀테크 초창기와 비교하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괄목할만한 성장세다.
2017년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진행해 온 핀테크 지원정책은 단순히 금융서비스의 혁신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가진다. 과거 핀테크가 이용자의 금융결제서비스의 불편 해소 정도에서 촉발된 것이었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 이라는 현실적이고 시급한 정책목표까지도 함께 응축돼 있다. 그러만큼 정부가 핀테크 정책에 쏟아붓는 에너지는 금융권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며, 이제 시장을 스스로 움직이게 할 만큼의 추진 동력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할만하다.
금융산업이 다양한 산업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또한 양질의 일자리도 만들어내야한다는 것이 정부가 추구하는 ‘포용적 금융’, ‘생산적 금융’의 정책 철학이다. 때마침 핀테크는 금융권의 디지털전환(Digital Transformation)전략과도 맞물리면서 금융산업 전반에 걸쳐 강력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우리 금융산업은 엄청난 외형 성장에도 불구하고 예대마진 위주의 단순한 수익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했으며 생산적 부가가치 창출에도 실패했다는 게 금융산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다. 금융업이 4차 산업혁명 등 새로운 환경변화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또 다시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고 일자리 창출 등 실물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기존 금융시장 논리에 구속되지 않는 혁신적인 서비스가 나올 수 있도록 금융감독 관련 규정을 유연하게 정립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단순히 핀테크산업을 지원하는데만 그치지 않고 더 크게 금융산업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정부는 무엇보다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을 통한 샌드박스 방식의 금융 혁신서비스에 들어간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회사와 핀테크업체간 1대1 매칭을 통해 금융회사의 핵심업무를 위탁받아 처리하도록 한 ‘지정대리인’제도 ▲전자금융감독규정을 개정해 금융 데이터를 핀테크업체 등이 보다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한 금융 클라우드의 허용 ▲오픈API 및 오픈뱅킹 확대를 통한 금융산업 경계의 확장 ▲마이데이터(MyData) 정책과 ‘금융 빅데이터’ 개방을 통한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의 활성화 ▲핀테크기업 지원을 위힌 테스트베드 확대 ▲신남방 국가를 비롯해 핀테크 기업의 글로벌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금융 당국의 정책협력 등이 실행에 옮겨지고 있다.
특히 정부는 올해 하반기 ‘금융 데이터경제’ 활성화와 관련, 6월말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신용정보법을 개정해 빅데이터 분석・이용 및 데이터 결합의 법적근거 명확화 등 데이터 활용을 저해하는 규제를 대폭 정비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마이데이터 사업자, 비금융정보 전문 개인신용평가회사(CB사), 개인사업자 CB사 등 새로운 데이터산업 플레이어가 육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핀테크 산업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에너지는 ‘금융 데이터’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신용정보법의 정립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지금까지 진행된 정책적 일관성과 향후 정책개선 노력은 지금까지 영국, EU, 미국 등 글로벌 핀테크 주도국들과 비교 뒤쳐졌다고 생각됐던 국내 핀테크 서비스도 이제는 그동안의 답답한 행보를 벗어나 경쾌한 행보를 하게 될 것이란 기대를 준다.
“비금융사의 금융시장 진입”, 2019년 금융산업의 화두
핀테크산업의 확장, 금융 규제의 폭넓은 완화는 곧 전통적인 금융시장 영역의 해체를 의미한다. 해외 송금, P2P대출 뿐만 아니라 사실상의 금융서비스를 수행하는 핀테크 기업들의 금융시장 진입이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9년 금융산업전망보고서’에서 올해는 기존 금융권 내의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핀테크기업 등 비금융회사의 금융시장 진출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특히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의 시행이 이러한 변화의 핵심적인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을 통해 사실상 ‘비금융회사의 금융업 진출’에 대한 법적 기반이 마련됐으며, 무엇보다 기존과 다른 혁신금융서비스가 시장에 제공될 경우, 기존 금융회사들을 혁신으로 이끄는 새로운 촉매제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핀테크 혁신이 금융산업 내부의 변화를 이끌것으로 본 것이다. 이와함께 정부는 소규모 특화 금융회사의 설립 허용, 금융업 인가단위 세분화, 겸영 및 부수업무 확대 등을 통해 경쟁 촉진을 유도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오픈뱅킹 도입이 활발해지는 추세를 반영해 국내에서도 마이데이터 산업을 육성하고 데이터 중심의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폭넓은 금융 규제완화 정책과 금융권의 적극적인 ‘디지털전환’. 핀테크 등 혁신 기업들이 금융시장에 진입할 경우, 보안문제 및 금융사고의 위험성도 동시에 커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과거에도 이런 보안 우려 때문에 혁신적인 금융서비스가 꽃을 피우지못하고 제동이 걸렸던 사례가 적지않았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 금융 당국은 과거보다는 전향적이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보안위협에 대한 지나친 우려는 경계하는 입장이다. 물론 금융보안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지만 그렇다고 지나친 우려로 정책을 지연시키는 것 또한 합리적이지는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핀테크시장에서 많은 유니콘을 배출하고 있는 미국, EU, 중국 등이 금융 혁신과 보안의 적절한 균형을 통해 글로벌 핀테크 시장을 선점하고, 실리를 취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타산지석이다.
금융권, ‘디지털전환’ 혁신 경쟁 가열
2019년, 금융권의 ‘디지털전환’ 노력은 매우 광범위한 분야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존 IT 인프라의 성능을 개선하기위한 혁신은 물론이고 ▲디지털 · IT부문의 조직개편▲핀테크 등 협업 중심의 혁신금융서비스의 창출 ▲인공지능(AI) 및 빅데이터 기반의 업무시스템 고도화 ▲AML(자금세탁방지)등 까다로운 규제 이슈에 대한 IT기반의 대응 ▲글로벌뱅킹서비스의 확대, ▲디지털 전문인력의 육성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게 분포돼있다.
금융회사가 이렇게 복잡하고 많은 이슈를 한꺼번에 관리하는 것은 쉽지않다. 이 때문에 올해는 ‘컨트롤타워’(Control Tower)의 기능이 어느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 나타난 KB, 우리, 신한, 하나, NH, BNK 등 주요 금융그룹의 디지털·IT 부문 조직개편과 주요 임원 인선은 이러한 고민이 그대로 투영돼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금융권의 ‘디지털전환’전략이 너무 경쟁적인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고, 또한 철학없이 지나치게 속도전에 치중하는 모습도 일부에선 엿보인다. 넓게보면, 각자 자신이 가진 강점을 살린 차별화된 모습보다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시류에 지나치게 강박을 보이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너나할 것없이 수백명~수천명에 달하는 디지털·IT 인재 육성을 부르짖고 있지만 정작 그많은 인력이 일선 현장에서까지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또한 금융권의 ‘디지털전환’ 혁신 과정이 아직 시스템에 의한 체계화보다는 CEO의 개인 역량에 좌우되는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과도기라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아직 우리 금융권의 조직문화까지는 바뀌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혁신으로 포장된 디지털뱅킹 투자도 차별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남에게 뒤처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오랜 ‘2등 전략’의 마인드가 내재돼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금융회사의 디지털경쟁력을 결정하는 본질은 결국 레거시시스템, IT인프라의 경쟁력에서 나온다. 디지털 경쟁의 외형에만 치우친 나머지 본질을 등한시하는 흐름은 반드시 경계해야할 리스크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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