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파면…새로운 역사와 조우하는 대한민국(종합)
[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대통령직을 물러나게 됐다. 이로써 지난해 10월, 광화문 촛불로 시작된 피플 파워는 결국 5개월여만에 극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대한민국 헌정사는 새롭게 쓰여지게 됐고, 과거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역사와 마주하게 됐다. 규정에 따라 앞으로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게된다.
헌법재판소 이정미 재판관이 10일 오전 11시22분께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주문을 내리는 순간 대통령의 지위가 박탈됐으며 자연인 신분으로 바뀌었다. 박 전 대통령은 첫 부녀·여성 대통령 타이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의 불명예 파면을 이끈 것은 최서원(최순실)씨였다. 박 전 대통령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 곁을 지켰던 40년 지기' 로 표현됐던 최씨는 이날 재판중에 대통령 파면 소식을 전해 들어야했다.
각계 반응도 이어졌다. 전세계 주요 외신들도 현직 대통령의 파면 소식을 긴급으로 보도했다. CNN 메인 화면에는 '박 대통령 축출되다. (Park Out)'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상황을 전했다.
국회 측과 재계, 대다수 시민들은 헌재의 탄핵 결정을 존중했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 대리인단측은 파면 선고에 유감을 표했고, 안국역 근처를 중심으로 모여있던 탄핵 반대 시위대는 탄핵 선고 직후 폭력성을 띠면서 격렬하게 경찰과 충돌했다.
◆헌법재판소, 만장일치로 대통령 파면=이날 헌재는 재판관 8인의 만장일치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헌재는 최순실의 국정개입 허용과 권한 남용 및 불법적인 이권추구 등에 대해 중대한 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최서원이 공무상 기밀 문건을 전달받고 관여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안종범을 통해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 설립을 지시했고, 대기업 출연금을 받도록 했다. 486억원을 출연받아 재단법인 미르를, 288억원을 받아 케이스포츠 재단을 설립했으나 대기업은 어떤 권한도 행사할 수 없었다. 양 재단의 운영 등 의사결정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통해 이뤄졌다.
또한, 최씨는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를 설립했고 박 대통령은 안종범을 통해 KT에서 광고 관련 업무를 수행할 인사 2명을 채용하게 했다. 플레이그라운드는 KT 광고 대행사로 선정돼 68억원의 광고사업을 수주했다. 또, 현대와 기아자동차는 플레이그라운드에 9억원에 달하는 광고를 발주했다.
박 전 대통령은 롯데그룹 회장을 독대해 하남시에 체육시설 건립하려고 하니 자금을 지원해 달라 했고, 롯데는 케이스포츠에 70억원을 송금했다. 이에 헌재는 박 대통령이 최서원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고, 공정한 직무 수행이라고 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정미 재판관은 “재단법인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 최서원의 이권개입에 직간접적 도움을 준 박 대통령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율을 침해했다”며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강조했다.
다만, 공무원 임명권 남용과 세계일보에 대한 언론의 자유 침해의 경우 대통령이 관여했다는 근거가 부족하고, 세월호 관련 직무 위반과 관련해서는 판단할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헌재는 대통령 지시로 문화체육관광부 전 국장과 과장이 문책성 인사를 당하고 유진룡 전 장관이 면직된 점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지시로 문체부 1급 공무원의사직서가 제출된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사익추구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인사 조치를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사직서를 제출받은 이유도 분명치 않다고 했다.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를 박 전 대통령이 나서 사장 해임을 주도했다는 것과 관련해서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박 전 대통령이 관저에 머무르고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성실하게 직책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헌재의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이 재판관은 “세월호 침몰사건은 모든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고통을 안겨준 참사라는 점에서 어떠한 말로도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부족할 것”이라며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지만, 성실의 개념은 추상적이기 때문에 추상적 의무 규정을 이유로 탄핵 소추 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CNN 대문에 걸린 ‘PARK OUT’=주요 외신들은 앞다퉈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을 긴급 보도했다. CNN은 홈페이지 전면에 ‘PARK(박근혜 전 대통령) OUT’이라는 제목을 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워싱턴포스트(WP)를 비롯해 AP, AFP, 로이터 등 전세계 주요 통신사와 영국 BBC, 중국CCTV, 일본 NHK 등 해외 방송사들도 긴급 뉴스를 보냈다. 일부 방송사는 동시통역을 통해 생중계로 탄핵선고 장면을 다루기도 했다. 특히, 중국CCTV는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 생방송 회견을 중단하면서까지 이번 소식을 전달했다.
뉴욕타임즈는 한국 첫 여성 대통령이자 냉정시대 군사 독재자인 박정희 대통령 딸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소개했으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진보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했다. 인명피해 없이 민주적 시위로 대통령 파면을 이끈 점 때문이다.
AP통신은 “독재자의 딸이 스캔들 속에 물러나게 됐다”고 언급했으며, 영국 파이낸셜타임즈는 “이번 판결이 한국을 역사적 시점에 놓이게 했고, 뇌물과 정실인사로 오염된 나라의 개혁조짐이 되기를 바란다”고 표현했다.
미국과 일본 정부의 입장도 이어졌다. 마크 토너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계속해서 협력할 것”이라며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생산적 관계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또 “미국은 한국의 동맹국이자 친구, 파트너”라며 “한미동맹은 지역 안정과 안보를 위한 중추를 맡을 것이고, 북한 위협에 대한 방어와 관련해 모든 동맹 관계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 안보 공백 우려를 불식시키는 태도를 취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와 관련해서도 정부교체와 관련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입장을 시사하기도 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한국의 새 정권과도 여러 분야에서 협력하겠다”고 했으나, 위안부 문제가 얽힌 한일협정에 대해서는 “한국정부에도 성실한 이행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촛불의 승리" vs "파면선고 유감" =대다수 시민들과 국회, 재계 등은 헌재의 탄핵 결정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민들은 촛불집회가 일으킨 민주주의 승리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다만, 박근혜 측과 탄핵 반대 시위대는 이번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특히, 헌재 근처에서 진행된 탄핵 반대 시위는 폭력시위로 변질, 2명의 사망자와 8여명의 부상자가 나오는 등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일부 시위대는 죽창을 들고 경찰 버스를 점거하기도 했다.
이날 국회 측 권성동 탄핵소추위원장은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국민주권주의,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치주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재계는 불확실성이 해소된 만큼 경제 살리기에 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논평을 통해 경영계는 헌재 결정을 존중하다고 표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탄핵 여부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대립했던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모든 국민이 헌재의 판단을 겸허히 수용함으로써 성숙한 민주 시민의 면모를 보여주기 바란다”고 제언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결과에 모든 국민이 승복함으로써 정치적 대립과 혼란을 종식하고 한국이 올바른 진로를 개척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 측 대리인인 서석구 변호사는 올바른 재판이 아니라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헌재 소장이 무더기로 증거 신청을 기각했다면서 다른 대리인들과 협의해 판결 승복 여부에 대해 추후 말하겠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파면결정과 관련해서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편, 이날 탄핵심판 관련 불확실성 해소로 인해 코스피는 소폭 상승했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6.29포인트(0.30%) 오른 2097.35에 장을 마쳤다. 코스닥지수도 전날보다 6.13포인트(1.01%) 오른 612.26에 마감했다.
<최민지 기자>cmj@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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