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2기가비트(Gb) D램의 9월 하순 고정거래가격을 8월 하순 대비 8.86% 오른 1.72달러로 고시했다.
D램 가격은 앞서 2개월 가량 보합세를 유지했었다. 그러나 세계 D램 생산의 10% 이상을 담당해온 SK하이닉스 중국 우시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급등세를 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즉각적인 복구 작업을 실시해 가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화재 이전과 같은 정상 가동 수준이 되려면 올 연말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내년 초까진 D램 공급 부족, 가격 상승은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시장의 반응은 재미있다.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지난 달 4일 화재 후 이틀간 떨어졌다가 “공급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 호재가 있다”는 분석에 고공행진 중이다.
4일 종가 기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3만2450원으로 화재 발생 당일인 9월 4일 종가 대비 13.2%나 올랐다. 공장에 불이 났는데 회사 가치가 오르는 건 D램 공급 업체가 몇 개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산을 못해서 생기는 손해보다 가격이 오름으로써 발생하는 이익이 더 높은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마이크론의 주가는 그야말로 치솟고 있다. 4일(현지시각) 마이크론의 종가는 18.47달러였다. SK하이닉스의 공장 화재 이전인 9월 3일(14.01달러) 종가 대비 무려 31%나 올랐다. 마이크론이 인수한 일본 D램 업체 엘피다는 기술력이 떨어져 파산한 업체다. 파산 업체를 인수한 마이크론은, 이번 공장 화재로 자금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지난해 마이크론의 엘피다 인수 소식이 전해졌을 때 업계 전문가들은 “마이크론이 도박을 감행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반도체 시황은 좋지 않았고, 마이크론은 수 분기 연속 순손실을 기록하고 있었다. 경쟁 업체 하나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런데, 도시바의 감산으로 낸드플래시 가격이 오르자 마이크론은 8분기 만에 순이익을 냈다(2013년 3~5월). 이번 화재 덕(?)에 마이크론은 D램 사업에서 많은 이익을 낼 것이다.
마이크론이 자금력을 쌓는 게 우리나라 메모리 산업에 호재는 아닐 것이다. 마이크론에 천운이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술력 떨어지는 회사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많은 이익을 내는 건 공평치 못하다.
D램 가격 상승은 세트 업체에도 큰 부담이다. 가뜩이나 물건도 안팔리는데 부품 가격이 이렇게 오르면 성장은 정체될 수 밖에 없다. 망해 떨어져나가는 업체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전체 시장 파이는 줄어들 것이다.
전동수 삼성전자 사장이 “SK하이닉스 화재는 장기적으로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됐다”라고 말한 이유가 이런 데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