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민형기자] 인터넷에 게시돼 있는 개인정보를 삭제하는 권리, ‘잊혀질 권리’에 대한 법적 논의가 본격화됐다.
17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제316차 임시국회를 열고 ‘잊혀질 권리’와 관련된 두 법안(정보통신망법, 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해 심의를 시작한다.
‘잊혀질 권리’가 나오게 된 원인은 인터넷서비스의 확대와 발전으로 개인들의 정보가 여기저기 기록되면서 이에 대한 불이익을 받고있는 사용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월 이노근 의원(새누리당 의원)은 이러한 추세에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와 관련 정보통신망법, 저작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잊혀질 권리는 이미 국제적인 이슈다. 실제 지난 2009년 독일에서는 범죄자들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죗값을 치룬 다음에 해당 기록을 인터넷에서 지워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해당 범죄자들은 소송 제기시 “과거에 저질렀던 일에 대한 죗값을 모두 치뤘지만 여전히 우리는 고통받고 있다”고 언론을 통해 호소했다. 이에 독일법원은 범죄자도 개인정보와 잊혀질 권리가 있다고 판단, 해당 요청을 받아들였다.
이 의원의 ‘잊혀질 권리’ 법제화 관련 발의안에는 정보통신망법,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각각 1개 조항이 신설됐으나 내용은 같다.
‘사용자가 공개를 목적으로 인터넷에 게시한 정보(저작물)의 삭제를 서비스제공자에게 요구하면 즉시 이행해야한다(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 제7항, 저작권법 제103조의 4)’
사실 사용자 자신이 직접 올린 게시물은 언제든지 자신이 스스로 삭제할 수 있으나, 다른 사용자에 의해 전파됐을 경우엔 삭제가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가 잊혀질 권리의 법적 논의를 불러온 것.
지난 2월 이노근 의원은 “현행법에 따르면 정보통신망을 통해 전파되는 정보의 삭제요청은 해당 정보가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특정인의 권리를 침해한 경우에 한해 인정함에 따라 개인이 자신과 관련된 내용 또는 과거 자신이 작성한 글 등에 대해서는 삭제요구가 어렵다”고 밝히며 해당 법안을 발의했다.
이번 발의안과 관련 법조계에서는 ‘잊혀질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해야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는 “우리는 이미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는 여러 법제도를 갖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이나 개인정보호보법에 자신의 정보를 통제, 삭제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이 담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와 관련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잊혀질 권리가 무제한의 권리로 행사될 경우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될 수 없다는 점이다.
구 변호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같은 역사책에는 언제, 누가, 어떠한 일을 했는지 상세하게 기록이 돼 있다. 기록하는 일련의 행위가 역사로 남게 되는 것”이라며 “그러나 친일파, 범죄자들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잊혀질 권리를 주장한다면 이러한 역사기록 행위는 전면 막힐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명예훼손과 관련된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는 규정은 국내법상으로 존재하지만 명예훼손과 무관한 게시물은 통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회적 실익을 위한 고발, 친일인명사전 편찬이 보장되는 것이다. 반면 그러나 잊혀질 권리가 법제화 될 경우 이러한 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날 수 있으며 자칫하면 민사소송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잊혀질 권리’가 표현의 자유와 권력 감시 등 인터넷의 순기능을 없애는 수단이 될 수 있는 주장도 나왔다.
김경환 민후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노근 의원 법안의 잊혀질 권리는 일반적인 잊혀질 권리와 다른바, 만일 이 의원의 발의안이 법제화 될 경우 기업, 기관 등에서 오남용될 여지가 있다”며 “법제화를 추진하기 이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외 시민단체 등에서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으나 실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응휘 오픈넷 이사장은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법안으로 국회 통과는 힘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