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민후 김경환 변호사] 한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이나 영업전략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는 순간, 순식간에 주변에는 경쟁업체나 후발업자가 출현해 잘 나가는 기업을 추격한다. 간혹 선발주자는 후발 경쟁업체의 임직원 스카웃, 영업비밀 취득, 기술이나 제품 분석 등에 의해 자신의 영업비밀을 빼앗기기도 하는데, 이 경우 영업비밀을 수호하기 위해 선발주자가 의존해야 할 법이 바로 ‘영업비밀보호법’이다.
하지만 위 ‘영업비밀보호법’에 의존하려고 해도, 몇 가지(①비공지성 ②비밀관리성 ③경제적 유용성 ④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는 기본적으로 갖추어 놓아야 자신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영업비밀을 지킬 수 있다. 특히 영업비밀 사건에서 실무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고, 영업비밀 인정 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②비밀관리성’이다.
비밀관리성이란 영업비밀에 대해 영업비밀보호법과 판례가 요구하는 정도의 적극적인 비밀관리를 해야 영업비밀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법과 판례는 어느 정도의 영업비밀 관리를 요구하는가?
일단 영업비밀보호법은 ‘비밀관리성’에 대해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될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법원은 위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될 것’에 대해 “정보가 비밀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표시를 하거나 고지를 하고,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대상자나 접근 방법을 제한하거나 그 정보에 접근한 자에게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하는 등 객관적으로 그 정보가 비밀로 유지·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인식 가능한 상태인 것(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8도3435 판결)”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정리하면, ‘비밀관리성’의 요건이 인정돼 영업비밀로 인정받으려면, ①비밀로서의 표시나 고지, ②접근대상자나 접근방법의 제한 또는 ③비밀준수의무의 부과 등이 기본적으로 인정돼야 한다.
먼저, ①비밀로서의 표시나 고지에 관해 살펴보면, 이는 자료에 대외비, 비밀, 외부유출금지 등의 표시를 하는 것과 더 나아가 정기적인 보안교육을 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②접근대상자나 접근방법의 제한이란, 대상자를 제한하는 인적관리조치와 접근방법을 제한하는 물적관리조치를 의미한다. 인적관리조치에는 영업비밀관리대장 작성 및 영업비밀관리책임자 지정이 포함돼야 한다. 물적관리조치는 관리등급설정·방화벽 등의 기술적 조치 또는 CCTV 등의 물리적 조치를 포함한다. 예컨대 문서를 누구나 볼 수 있는 장소에 방치하거나 암호가 걸려 있지 않거나 파일이 공개돼 있어 누구나 열어볼 수 있도록 방치했다면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적·물적관리조치의 내용은 영업비밀관리규정의 형식으로 구체화돼 있으면 바람직하다.
③비밀준수의무의 부과는 입사시 비밀유지서약서를 받는 방법, 취업규칙이나 사규에 비밀누설을 금지하는 규정을 포함시키고 근로자의 동의를 얻는 방법, 퇴직시 비밀유지서약서를 징구하는 방법, 외부용역자에게 비밀유지서약서를 받는 방법, 큰 프로젝트마다 별도로 비밀유지서약서를 받는 방법 등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나 탈세정보, 분식회계 등 불법행위에 대한 비밀정보에 대해 비밀유지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①비밀로서의 표시나 고지, ②접근대상자나 접근방법의 제한, ③비밀준수의무의 부과 등이 어떻게 판단됐는지 실제 사례를 들어서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B 회사가 A의 퇴직 전날에 A로부터 ‘B 회사에서의 업무수행과 관련해 습득한 제반 정보 및 자료에 대한 기밀을 유지하겠다’는 내용의 회사기밀유지각서를 제출받기는 했으나, 정보나 자료가 저장돼 있는 B 회사의 컴퓨터는 비밀번호도 설정돼 있지 않고 별도의 잠금장치도 없어 누구든지 위 컴퓨터를 켜고 자료를 열람하거나 복사할 수 있었고,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 B 회사 내의 다른 컴퓨터를 통해서도 별도의 비밀번호나 아이디를 입력할 필요 없이 누구든지 쉽게 컴퓨터에 접속해 자료를 열람·복사할 수 있었으며, 보관자는 자료를 정기적으로 CD에 백업해 사무실 내 서랍에 보관해 두었는데 서랍을 잠그지 않고 항상 열어두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그 백업CD를 이용할 수 있었다면, B 회사의 자료는 영업비밀에 해당하는가?
위 사안에 대해 대법원은 ③요건이 갖추어지기는 했지만, ②요건에 중대한 흠결이 있다고 보아 영업비밀로 보지 않았다(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8도3436 판결).
C 회사에 입사할 때 ‘업무상 기밀사항 및 기타 중요한 사항은 재직 중은 물론, 퇴사 후에도 누설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영업비밀준수 서약서를 작성한 사실은 있으나, C 회사에서 업무와 관련해 작성한 파일에 관해 보관책임자가 지정돼 있거나 별도의 보안장치 또는 보안관리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았고, 업무파일을 중요도에 따라 분류를 하거나 대외비 또는 기밀자료라는 특별한 표시를 하지도 않았으며, 연구원뿐만 아니라 생산직 사원들도 자유롭게 접근해 파일서버 내에 저장된 정보를 열람·복사할 수 있었고, 방화벽이 설치되지 않아 개개인의 컴퓨터에서도 내부 네트워크망을 통해 접근할 수 있었다면, C 회사의 자료는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하는가?
위 사안에 대해 대법원은 ③ 요건이 갖추어지기는 했지만, ① 및 ② 요건에 흠결이 있다고 보아 영업비밀로 보지 않았다(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8도3435 판결).
D 업체의 경우는 직원들조차 자신이 연구하거나 관리한 것이 아니면 그 내용을 알기 곤란한 상태에 있었고, 공장 내에 별도의 연구소를 설치해 관계자 이외에는 그 곳에 출입할 수 없도록 하는 한편 모든 직원들에게는 비밀을 유지할 의무를 부과하고, 연구소장을 총책임자로 정해 기술정보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등으로 비밀관리를 해 왔다면, D 업체의 자료는 영업비밀에 해당하는가?
위 사안에 대해 대법원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1996. 12. 23. 선고 96다16605 판결).
영업비밀로 보호받기 위한 ‘비밀관리성’의 요건을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잘 갖춘 중소기업도 적지 않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비밀관리성’은 기업의 비용 문제이기에 앞서 CEO의 의지 문제인 측면이 강하다고 본다. 당장 작은 것부터 실천해 가면, 나중에 큰 결실을 얻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