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민후 김경환 변호사] 자고 나면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업환경 때문에, 기업에 몸담고 있는 직원들의 이동도 가장 활발한 곳이 바로 ICT 영역이다.
아버지 세대에 존재했던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이미 깨진지 오래이고, 직장을 옮기는 것(전직, 轉職)이 비난받던 시대에서 오히려 능력을 인정받는 과정으로 이해되는 오늘날, 전직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적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우리 헌법은 직업의 자유(제15조)를 보장하고 있고, 직업의 자유는 전직의 자유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헌법에 따르면 직장인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지금의 직장을 버리고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것이 보장된다.
그러나 직장인 대부분의 의식 속에는, 전직을 하면 이전 직장으로부터 소송을 당하거나 형사고소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 상식으로 정착하고 있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헌법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인가?
기본적으로 직장인에게 전직의 자유는 인정된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전직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 경제적 약자인 근로자의 생계 자체가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더 큰 이익이 침해되는 경우에는 전직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 때문에 직장인의 경쟁회사로의 전직으로 인해 울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를 먼저 찾고, 그 사람은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지를 검토하면, 어떤 때 전직이 허용되고, 어떤 때 전직이 허용되지 않는지를 결정할 수 있다.
직장생활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에게 일을 해 주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회사로부터 각종 업무 또는 노하우를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직은 새로운 회사로의 이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전직으로 인해 그 사람이 담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새로운 회사로 이동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전직으로 인해 이전 회사가 공들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특히 전직으로 인해 회사의 중요 업무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 기술 등을 경쟁회사에게 빼앗기는 결과가 된다면, 이전 회사는 전직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전직금지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직금지는 ‘영업비밀보호법’에 규정돼 있고, 그에 관한 판례도 많이 축적돼 있다. 영업비밀보호법 및 축적된 판례에 따르면, 이전 회사의 전직금지청구는 명시적인 약정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약정이 없더라도 신의칙 등에 의해도 가능하다.
근로자와 이전 회사 사이에 ‘전직금지약정’이 체결돼 있다면, 일단 이러한 전직금지약정은 기본적으로 유효하다고 보므로, 이전 회사는 근로자에 대한 전직금지청구 소송을 법원에 제기할 수 있다. 법원이 전직금지청구를 인용해 주면, 전직하고자 하는 사람은 즉시 전직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
다만 몇 가지 경우는 이러한 전직금지약정이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무효가 될 수 있고, 이러한 경우에는 법원이 이전 회사의 전직금지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일부 제한해 인용해 준다.
첫째, 이전 회사에게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 없는 경우에는 전직금지약정은 무효가 된다. 여기서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라 함은 이전 회사의 ‘영업비밀’을 포함하지만, 영업비밀이 아니라도 이전 회사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 또는 정보로서 근로자와 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약정한 것이거나 고객관계나 영업상의 신용의 유지도 이에 해당한다(대법원 2010.3.11. 선고 2009다82244 판결).
즉 설령 일부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입수하는데 그다지 많은 비용과 노력을 요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될 수 있는 내용은, 전직금지약정에 의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에 해당하지 않는다.
둘째, 전직금지기간이 적정기간을 지나쳐 지나치게 긴 경우에 적정기간을 초과한 기간은 무효가 된다. 판례에 따르면, 통상 업무이탈시 또는 퇴직시로부터 1년에서 3년 사이에서 적정한 전직금지기간을 인정하는데, 기술의 발전속도가 빠르거나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이전 회사에 근무한 경우에는 단기간에 한해 유효성을 인정해 주고, 이전 회사에서의 직급이 올라갈수록 장기간에 대해 유효성을 인정해 주고 있다.
셋째, 전직금지약정을 체결하고도 종업원에게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해 주지 않는 경우, 보상 자체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보상으로 인해 전직금지약정이 무효가 될 여지가 커질 수 있다. 이 때 보상은 반드시 금전적 보상에 한정하지 않는다. 참고로 우리나라와 달리 일부 입법례는 근로자에 대한 보상이 없으면 전직금지약정 자체를 무효로 보기도 한다.
넷째, 종업원의 직무가 하위직이나 단순노무직인 경우, 근로자가 부득이하게 또는 타의에 의해 해고된 경우, 전직이 금지된 업무영역이 동종업종·경쟁업종이 아니거나 이전 회사의 업무와 관련이 없는 경우 등은 전직금지약정 전체가 무효가 될 여지가 크다.
한편 근로자와 이전 회사 사이에 ‘전직금지약정’이 체결돼 있지 않는 경우에도, 이전 회사는 근로자에 대해 전직금지청구 소송을 법원에 제기할 수 있다. 다만 전직금지약정이 체결된 경우보다는 다소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예컨대 전직금지약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직금지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근로자가 옮긴 회사에서 영업비밀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고서는 이전 회사의 영업비밀을 보호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이어야 하므로, 이전 회사의 ‘영업비밀’의 존재와 전직하고자 하는 사람의 그 ‘영업비밀’의 취급이 입증돼야 비로소 전직금지청구가 인용된다.
이전 회사가 법원에 전직금지청구를 반드시 근로자가 퇴직한 이후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이전 회사는 근로자가 퇴직하기 이전이라도 법원에 ‘전직금지청구’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직금지청구는 본안소송으로도 가능하지만 비교적 단기간에 결론이 나는 가처분의 형태로 많이 제기된다.
이전 회사는 근로자에 대한 전직금지청구와 동시에 영업비밀침해금지청구를 할 수 있다. 영업비밀침해금지청구를 하게 되면 법원은 그 기간을 설정해 주는데, 실무적으로 영업비밀의 침해금지기간을 초과하는 전직금지기간은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직금지약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경쟁업체로의 전직을 시도하다가 낭패를 본 근로자들, 근로자의 전직금지약정의 존재에 대해는 따지지 않고 무리하게 스카웃 시도를 하다가 곤란에 빠진 기업들, 전직금지약정을 체결하지 않았다고 경쟁업체로의 전직을 시도하는 근로자에 대해 법률적 제재를 가하지 못해 기술유출에 대해 손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 가는 만큼, 핵심기술 유출과 인력 스카웃에 대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제대로 된 계약서 1장이 1,000억 손실도 막을 수 있다. 치열한 경쟁 구조에서는 사전 예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중요 기술이나 핵심 인력 수호를 위한 법률적 대비를 미리 미리 해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