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요즘 현대자동차 그룹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정몽구 회장이 최근 경영회의에서 자동차 생산설비 100% 국산화를 위해 구체적인 움직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전장 부품, 그러니까 자동차에 쓰이는 전자장치와 관련 부품을 자체 수급하기 위해 지난 4월 ‘현대오트론’을 설립하고 그룹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조급함은 금물이다. 자동차용 반도체는 단순히 연구 인력을 늘리고 대기업 차원에서 투자한다고 해도 단기간에 성과물을 얻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3년 정부는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사업’을 추진하면서 자동차용 반도체를 함께 선정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 내 부품회사인 현대모비스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정부도 50억원의 자금을 지원했으나 이렇다 할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자동차 기술 유출과 투자 위험 문제 등에서 접점을 찾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8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서야 현대자동차 그룹과 삼성전자는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겠다며 시장 조사와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찍 시작할 기회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셈이다.
자동차용 반도체는 사람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당시 현대자동차 그룹과 삼성전자가 프로젝트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술 개발에 대한 어려움과 양사의 정보 노출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겠지만 제품을 상용화해도 이를 적용시키기가 어렵다는 점이 더 컸다.
이미 검증되어 있고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자동차용 반도체를 두고 자체 개발한 칩을 사용했을 때 발생할 문제를 과연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실제로 BMW, GM, 포드, 도요타, 폭스바겐 등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도 자체적으로 자동차용 반도체를 개발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이 시장에서는 프리스케일, 인피니언, 르네사스 등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조급함보다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최근 국산 자동차용 반도체가 개발됐다고는 하지만 안전이나 엔진, 안전, 몸체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인포테인먼트나 운전자를 보조하기 위한 장치들이 대부분이다. 업계에서는 지금부터 제대로 시작한다고 해도 엔진과 안전에 적용되는 자동차용 반도체를 개발하려면 최소 20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개발이 전부가 아니다. 자동차용 반도체는 군사용이나 우주항공에 쓰일 정도로 높은 신뢰성을 요구한다. 시장에서 이를 받아들이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산업이든 마찬가지지만 초보자가 만든 물건은 검증이 필수다.
어차피 거래가 일어나고 시장에서의 반응이 나왔을 때 국산 자동차용 반도체에 대한 평가가 나올 것이다. 그러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 다행이 우리나라는 걸출한 자동차·전자 회사가 있다. 밑거름은 충분하니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