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당시부터 껄끄러웠던 한국IBM과 한국HP의 최고 사양 유닉스 서버 논쟁에 고객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특히 대형 유닉스 서버 도입이 잦은 금융권 고객들은 양사의 이 같은 논쟁에 제품 도입을 유보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객들을 헷갈리게 하는 주범(?)은 바로 IBM에서 출시된 유닉스 서버 ‘파워 780’과 ‘795’ 제품입니다.
이 두 제품의 포지셔닝(Positioning)을 두고 한국HP와 한국IBM에서 서로 상이한 주장을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지요.
앞서 한국HP와 한국IBM 양사는 올해 들어 성능과 아키텍처가 대폭 향상된 유닉스 서버 신제품들을 대거 출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서버 업체들은 제품의 확장성과 안정성, 보안 성능에 따라 로엔드(low-end)와 미드레인지(mid-range), 하이엔드(high-end)로 제품을 구분하고 있고, 여태까지는 대부분의 제품들이 경쟁사 제품과 매핑되며 비교적 뚜렷한 경쟁 구도를 보여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출시된 제품들에선 각 사에서 주장되는 경쟁 제품이 다르다는 것이 문젭니다. 관련 내용은 이전 블로그 내용을 참조하시면 될 듯 합니다.
한국IBM은 ‘파워780’이라는 유닉스 서버 제품을 HP의 최상위급 유닉스 서버 ‘슈퍼돔2’에 대적할 하이엔드급 제품으로 포지셔닝하고 있고, ‘파워795’의 경우 메인프레임급의 데이터센터용 제품으로 ‘슈퍼돔2’와는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반면 한국HP에서는 파워780은 이전 모델인 파워 570의 후속 제품으로 이번에 함께 발표된 파워770과 마찬가지로 미드레인지급 제품이라는 주장입니다.
또한 파워795은 이전 모델인 파워595 제품의 후속 제품인 하이엔드급 제품으로 자사의 슈퍼돔2의 경쟁 제품이라는 것이지요.
한국HP의 주장
한국HP 측에 따르면, 한국IBM은 단순히 64코어까지 확장이 가능하다고 해서 하이엔드급 유닉스 서버로 포지셔닝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하이엔드급 유닉스 서버의 구분 기준은 단순히 코어수가 아니라 아키텍처로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한국HP에서는 파워780이 미드레인지급 제품인 파워770과 동일한 구조로 단지 클록스피드만 높아졌으며 확장성이나 전체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밴드위스 등은 하이엔드급 서버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주장입니다.
특히 토털 I/O 밴드위스의 경우 파워795에 비해선 1/3 수준이며, 시스템 구조 측면에서 하이엔드와는 차이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즉, HP 슈퍼돔2의 경우 확장을 위해 3중화된 내부 백플레인을 통해 셀보드 간 연결을 하는 반면, 파워780은 외장 케이블을 통해 노드 간 연결을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구성에 따라 이중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파워795는 내부 미드플레인을 통한 프로세서 북 간 연결)
대용량 하이엔드 서버는 성능 및 코어수 뿐만 아니라, 많은 업무를 운영하는 서버로써 장애시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각 벤더에서 제공하는 최고의 안정성과 확장성을 가진 최상급 서버로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HP에서는 위의 표와 같이 파워780이 미드레인지 서버로 분류돼 있는 '아이디어 인터내셔널'이라는 제3 기관의 비교 자료를 제시하면서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위의 표 참고>
또한 한국IBM이 IBM 본사와는 다르게 제품 정책을 갖고 가는 것은 고객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관련 표 참고>
아래 표와 같이 본사 웹페이지에는 파워795가 일반 유닉스 서버 제품군과 함께 표기돼 있는 반면, 한국IBM의 웹페이지에는 아예 파워795에 대한 정보가 빠져 있습니다.
반면 한국IBM의 고객 배포용 소개 자료에서 파워795는 HPC(고성능컴퓨팅) 시스템으로 구분돼 있는데, 최근 파워795는 SAP 스탠다드 애플리케이션 벤치마크 인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한국HP 관계자는 “이처럼 상용 애플리케이션에서 운영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을 보면, IBM에서는 파워795를 HPC가 아닌 범용 유닉스 서버로 운영하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만약 고객이 64코어 이상의 확장성을 요구하게 될 경우는 파워780은 하이엔드급 서버로의 기능을 못하게 되는 셈입니다. 파워780가 하이엔드급으로 자리매김한다면 하이엔드 유닉스 서버에서만 보여줄 수 있었던 요소들이 하향 평준화되는 뉘앙스를 고객사들에게 줄 수 있고, 이는 유닉스 고유의 안정성을 해치는 저해요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고객들은 하이엔드급으로 알고 샀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구입한 반면 확장이 불가능하고 운용 노하우나 서비스 가용성 등에서는 하이엔드급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이는 전체 유닉스 서버 시장에 왜곡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저희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런 점입니다.”
한국IBM의 주장
이러한 한국HP의 주장(본사와 제품 포지셔닝이 다른 이유)에 대해 한국IBM 측은 “각 나라별로 비즈니스 환경이 다르고, 고객 사이즈가 다르기 때문에 제품 포지셔닝은 국가마다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한국IBM 관계자는 “파워795는 256코어까지 확장이 가능한 데이터센터급 서버로 단순한 대형 유닉스 서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미지역에서는 파워795 제품을 하이엔드급 유닉스 서버로 포지셔닝 했을지라도, 국내에서는 이를 메인프레임에 버금가는 초대형 서버로 포지셔닝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하이엔드 유닉스 서버는 명백히 파워780라는 것입니다.
한국 웹페이지에 파워795를 별도로 표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고객에게 혼란을 줄 수 있을 수도 있을뿐더러, 이 제품을 국내에서 쓸 수 있는 고객이 많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파워795 제품의 경우, 규모가 매우 큰 고객들의 IT인프라 상황을 처음부터 분석해서 제안하고 있는 만큼, 고객에 맞게 선별적으로만 판매하겠다는 얘기입니다.
심지어 중국의 경우에는 현재까지 파워795 제품을 발표도 하지 않은 만큼, 각 나라 환경에 따라 제품의 구분은 달라진다고 합니다.
SAP 벤치마크 관련해서도, 한국IBM 측은 “파워795는 다양한 업무를 돌리고 있는 서버를 마치 하나의 데이터센터처럼 통합하는 것은 물론, 상황에 따라 고성능컴퓨팅(HPC)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기 때문에 여러 각도에서 벤치마크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데이터센터급’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만큼 다양한 플랫폼의 서버 수십대를 한대로 통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하이엔드급 유닉스 서버인 HP 슈퍼돔2와는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현재는 서버 플랫폼별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지 성능만으로 서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사별로 구축돼 있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인력 구성 등에 따라 적절한 인프라스트럭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IBM은 다양한 인프라스트럭처의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각 워크로드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제안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을 뿐입니다.”
고객의 답답함
누구보다 가장 답답한 것은 돈 주고 서버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사일 것입니다.
일단 제품 도입은 해야겠고, 제품 비교를 위해 한국HP와 한국IBM 양 사에 최고 사양의 하이엔드급 유닉스 서버를 제안하라고 했더니, 한국HP에서는 슈퍼돔2를 내놓고 한국IBM에서는 파워780을 제안한다는 것입니다.
한국HP는 파워780이 미드레인지급 제품이니 슈퍼돔2와 비교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며 제안을 거부하고, 한국IBM에서는 파워795가 아닌 파워780이 하이엔드 서버라고 주장을 하는 상황이다 보니, 실제로 어느 쪽의 얘기를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객사가 대다수입니다.
물론 나름의 판단 하에 한쪽 업체의 주장에 마음이 기울 수도 있겠지만, 섣불리 한쪽 업체의 얘기를 듣고 제품을 선택했는데, 막상 다른 고객사들에서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선뜻 결정을 내릴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는 양사의 제품 모두 도입을 하지 않는 방향을 택한다는 설명입니다.
한 금융권 고객은 “실제로 파워780을 슈퍼돔2와 비교하면 파워780의 사양이 떨어지는 반면, 파워795를 슈퍼돔2와 비교할 경우 슈퍼돔2의 사양이 다소 딸리는 것을 느낀다”고 얘기합니다.
그는 “이 때문에 여전히 가타부타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며 “사실 이러한 것을 보면 벤더사 간의 알력다툼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습니다.
“차라리 제3의 국내 공인기관 등에서 어떤 제품이 같은 레벨인지 검증해 줬으면 좋겠어요. 사실 사용자 입장에서 제품을 공정하게 도입하기 위해선 공인된 기관에서 이에 대해 확실하게 증명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양쪽 입장이 정리될 때까지 당분간 도입을 좀 미룰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