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IT] 레노버 씽크패드 엣지, 씽크패드의 정체성
[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씽크패드 시리즈는 역사가 깊은 제품군이다. 노트북 마니아, 특히 씽크패드를 써 본 기업 사용자라면 씽크패드 시리즈에 가지는 애착 같은 것이 있다. 사실 씽크패드 제품군을 언뜻 보면 애착을 가질 만한 제품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시커먼 색상에 디자이너의 기교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투박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선 이러한 씽크패드 시리즈의 특징은 누군가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장점이 된다. 색상은 시커멓지만 오래 써도 싫증이 나지 않고 투박한 모양새를 가졌지만 그만큼 내구성이 높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IBM의 PC 사업 부문이 레노버에 인수된 지도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처럼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덕에 지금도 IBM 프리미엄을 레노버는 누리고 있다.
씽크패드 엣지는 얄굿은 녀석이다. 씽크패드 시리즈의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레노버의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 정책이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쫀뜩쫀득한 키보드와 이른바 ‘빨콩’이라 불리는 특유의 빨간색 포인팅 디바이스는 엣지 모델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응급복구 등 씽크패드 시리즈에 탑재되던 수많은 노트북 관리 솔루션도 갖췄다.
이전 시리즈와 비교해 달라진 점이라면 디자인, 즉 껍데기다. 메탈 블랙, 글로시 블랙, 글로시 레드 컬러의 상판 색상은 씽크패드 시리즈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엣지 모델은 이러한 색상을 갖췄다. 겉보기엔 씽크패드가 아니지만 키보드 등 소비자들로부터 호평 받는 요소는 그대로 녹여놨다. 몇 가지 모델로 출시되는 씽크패드 엣지는 대략 80만원을 주면 최하위 사양의 모델을 고를 수가 있다. 해외에서 판매되는 씽크패드 엣지의 가격은 거의 넷북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제품, 가격 경쟁력은 꽤나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니까 씽크패드 시리즈 가운데에서도 저가형 모델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씽크패드 엣지다. 사용성을 고려한 포트 배치, 키보드 등 입력장치의 높은 완성도에서 오는 편리함, 다양한 관리 솔루션 등은 지금까지의 씽크패드 시리즈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 어떤 기업용 노트북과 비해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수준이다. 특히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 소규모 기업에게 인기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가격대비 괜찮은 노트북이다. 잘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 제품을 사용하면서 씽크패드라는 브랜드가 프리미엄에서 범용 브랜드로 변할 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생겼다. 씽크패드 브랜드로 아래쪽 시장을 치고 올라오려는 전략은 단기간 성과에는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씽크패드라는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갉아먹을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론 씽크패드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저렴한 씽크패드’가 먹히지 않을테고, 씽크패드를 아는 이라면 실망감을 가지고 HP 프로북 혹은 엘리트북으로 돌아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 그 씽크패드가 아니야라는 평가가 나온다면 레노버 입장에서도 뼈아프다. 차라리 씽크패드가 아닌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사용하는 건 어땠을까.
씽크패드를 잘 아는 나의 경우 ‘엣지’라는 모델명을 붙이고자 했다면 150만원이 넘어가는 고급형 제품을 고려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씽크패드 엣지는 색상을 바꾸고 디자인을 교체했다지만 엣지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더 좋은 소재를 쓰지 않은 탓이다. 차라리 시커멓고 투박한 씽크패드 시리즈가 더 엣지있다. 작은 것이 더 예뻐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X201 같은 모델에 더 좋은 소재와 트렌디한 색상을 적용하고 차라리 그걸 엣지 모델이라고 부르는 게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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