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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에 바란다①] 또 통신비 절감?…'AI 네트워크' 구축 위한 정책 설계돼야

강소현 기자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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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현재, 디지털산업은 다시 한번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정치·경제·기술 전반에서 혼돈과 격변이 일상화되는 시대,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방향성과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절실하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창간 20주년을 맞아 ‘혼돈의 전환기, 산업정책의 나침반을 묻다’를 주제로 창간 특집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특집에서는 ‘새 정부에 바란다’는 대기획 아래, 통신·방송·반도체·AI·보안·게임·유통 등 산업별 핵심 이슈를 심층 분석하고, 각계 전문가 20인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산업계와 정책 간의 건설적인 대화를 이어가고자 한다. 또한 유력 대선주자의 ICT 공약 분석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 아래 산업계가 나아갈 좌표를 함께 고민해 본다.[편집자]

[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챗GPT로 촉발된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 속 ‘AI 네트워크’ 구현을 위한 정부 차원의 선제적 지원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규제로 일관하다간 AI 성장을 뒷받침할 핵심 인프라에 해당하는 네트워크의 경쟁력은 뒤쳐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간 우리 정부가 통신산업 성장 모멘텀 발굴에 부진했다는 평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새 정부의 과제는 무엇일까. 통신업계 관계자를 포함한 전문가 8명에 물었다.

◆ 통신비 인하에만 방점 둔 정책…“韓 네트워크 경쟁력, 오히려 후퇴”

업계는 지금까지의 통신정책이 가계통신비 인하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고 말한다. 당장 윤석열 정부의 통신정책을 살펴보면 전환지원금 제도를 도입했으며, 5세대이동통신(5G)보다 비싼 LTE 요금제 개편이 이뤄졌다. 또, 알뜰폰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으며 신규사업자(제4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도 나섰다. 모두 가계통신비 부담 경감에 목적을 둔 정책들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국민 통신비 절감이라는 명분으로 사업자와 협의 없이 통신사의 목을 비틀었다”라며 “저가요금제가 출시됐지만 여전히 모바일 개통의 경우 고가요금제으로 개통하고, 전환지원금의 경우 불법보조금이 파다한 상황에서 단말기 할부금 부담을 낮춰졌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통신3사가 반납한) 28기가헤르츠(㎓) 주파수를 해결하기 위해 제4이통 사업자 선정이라는 무리수를 뒀다”라며 “알뜰폰 정책 목표는 또 무엇이냐. 다양한 소비자 선택권, 저렴한 통신요금 등을 목표로 15% 점유율이면 성공적이지 않냐”고 반문했다.

더욱이, 이러한 정책들은 네트워크 경쟁력을 약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별 정보통신기술(ICT) 경쟁력 지표인 ‘네트워크 준비 지수(NRI·Network Readiness Index)’에서 우리나라는 5위를 기록했지만, 디지털 전환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과 정책적 역량을 의미하는 거버넌스는 22위에 머물렀다.

NRI에서 비슷한 순위를 기록한 국가들과 비교해도, 거버넌스 순위는 매우 낮았다. 1위를 기록한 미국의 경우 거버넌스에서 9위를 기록했으며, 2위~4위를 차지한 다른 국가들(싱가포르·핀란드·스웨덴)도 모두 10위 내에 안착했다.

◆ 주요 과제로 ‘AI 네트워크 구축’ 언급돼…“AI·네트워크 진화 주기 맞물리는 중요한 시기”

통신업계 전문가·관계자의 의견을 취합하면, 새 정부의 주요 과제로는 ‘AI 네트워크 구축’이 공통적으로 꼽힌다. 네트워크가 AI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한 가운데 정부가 AI 기반 네트워크 혁신을 위한 미래지향적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동구 연세대 교수(ORIA 집행위원장)는 “이전의 통신세대가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안전하게’ 연결한다는 목표 아래 장비 중심의 인프라 확산에 집중했다면, 오늘날 네트워크는 단순한 연결 인프라를 넘어 AI 시대의 디지털 국가 자산이자 글로벌 디지털 경쟁력의 핵심 축이 됐다”라며 “특히, 10년 주기로 진화하는 통신네트워크는 오늘날 6개월 단위의 진화주기를 가지는 생성형 AI와 융합돼야 하는 큰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다”고 강조했다.

그간 네트워크 혁신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장기 통신정책 방향도 제시된 상황이다. 중장기 주파수 분배 계획인 ‘대한민국 스펙트럼 플랜’과 전파 활용 계획 및 전략을 담은 ‘제4차 전파진흥기본계획’운 지난해 9월과 10월 각각 발표됐다.

이 중 스펙트럼 플랜의 핵심은 ‘주파수 개방’이다. 주파수를 통신3사 뿐 아니라 전 산업분야에 개방한다는 것이 골자다. 기존 공급자(정부) 중심에서 수요자(기업) 중심의 제도로 개선해 미이용중인 주파수의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다만, 이후 추가적인 계획 발표는 없는 상황이다. AI시대 도래와 함께 이동통신이 5G에서 6G로 넘어가면서 통신망의 발전이 지금과 다른 양상이 띌 것으로 이미 예고된 상황이지만, 정부가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정부 차원에서 본인 업무에 대해 책임지는 ’이력제 관리’ 시스템이 선제적으로 구축돼야 할 것”이라며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을 가지고 자신의 업무에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포함한 정부 부처 내) 조성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흔들리는 후방 생태계…동반성장 위한 직접지원·투자촉진 필요

문제는 5G 성숙기 돌입에 따른 이통사의 투자 위축으로 국내 생태계가 이미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장비사는 6G를 앞두고 오픈랜(OpenRAN·개방형무선접속망) 등 차세대 네트워크 기술을 혁신하기 위한 재원 확보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통신장비업계 관계자는 “매년 높은 수익을 기록하고 있는 주요 통신사업자들의 이익이 단순한 기업 내부의 배당이나 유보에 머물지 않고, 사용자 후생 증대 및 건강한 산업 생태계 조성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라며 “통신사업자들의 과감한 신규 투자 없이는 5G를 넘어선 차세대 통신 시대로 나아갈 수 없다”고 호소했다.

더욱이, 초지능 네트워크는 정부가 설정한 12대 전략기술임에도 불구, 대대적인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조치 영향으로 기술 실증을 위한 정부 지원이 줄어든 상황이다. 통상 실증은 비(非)R&D에 해당되지만, 예산 분배에서 간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투자를 받고자 국내 기업의 해외 이탈도 가속화되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새 정부가 민간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네트워크 혁신 기술 개발을 직접 지원하고 이통사의 투자 촉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업계는 말한다.

홍인기 경희대학교 교수는 “5G까진 네트워크의 성능을 올리는 데에만 집중했다면, 6G는 성능보다 AI 기반의 소프트웨어(SW) 네트워크로 진화하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이러한 AI 융합 네트워크는 5G에서 등장하지 못한 혁신들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AI 네트워크 구현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지원체계가 선제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 차원의 오픈랜 시장의 활성화는 중소장비사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계기 역시 마련할 것으로 기대됐다.

오픈랜은 무선접속망(RAN)을 구축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통신장비 간 연결에 필요한 인터페이스(API) 등 소프트웨어 요소를 하나의 통일된 기준으로 규정, 서로 다른 제조사의 장비를 연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현재 기지국은 무선신호처리부(RU·Radio Unit)와 분산장치(DU·Distributed Unit), 중앙장치(CU·entralized Unit) 등 네트워크 장비로 구성되는데, 지금까진 이 장비들이 모두 동일 회사 제품이어야만 상호 신호연결이 가능했다.

이에 통신사는 운영의 용이성을 위해 일반적으로 1~2개사의 통신장비 만을 이용, 특정 통신장비에 종속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즉, 오픈랜의 활성화는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현재의 시장을 재편해, 중소·중견 장비사도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김동구 교수는 “6G 등 미래 통신 기술에 대한 주도권 확보는 국가 경쟁력 확보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표준 상용화를 위한 정책적,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라며 “오픈랜과 같은 개방형 구조 도입을 지원하여 국내 중소기업들이 혁신적인 솔루션을 개발하고 시장에 참여할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생태계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통신산업 바라보는 정부 시각부터 바껴야민관협력 방안 마련 필요

AI 네트워크가 실현되려면 통신사를 둘러싼 규제도 완화돼야 한다고 이야기된다.

지금까지 이동통신사는 주파수라는 공공재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는 이유로 많은 규제를 받아왔다.

막대한 주파수 할당대가를 내고도 할당에 따른 망 구축 의무를 다 해야 했고, 사실상 시장의 경쟁자인 알뜰폰이 저렴한 요금제를 낼 수 있도록 도매대가 인하 압박을 받았다. 시내전화와 공중전화 등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적절한(affordable)' 요금에 정보통신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보편적 역무 제공 의무도 가진다.

특히, 최근 글로벌 시장 동향을 보면 플랫폼 기업도 네트워크와 관련한 책임을 다해야한다는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미국 FCC는 올초 빅테크 기업에도 지급을 강제하는 방향의 보편적 서비스 기금(Universal Service Fund·USF) 개혁에 강력한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이러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현재 통신사가 직면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유무선 통신사업이 시장 포화로 수익성 한계에 직면한 가운데, 트래픽 증가에 따른 망 투자비용은 급증하면서 상대적 부담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더욱이 최근 국내외 통신사는 AI에 대한 투자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AI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면, 통신산업을 규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정책의 접근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언이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최근의 화두는 미래 지향적 산업 체계를 어떻게 구축하냐로, 정부는 기존 관료제적 시각에서 벗어나 시장 활성화를 위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라며 “네트워크만 해도 과거엔 네트워크 포설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지능화를 통한 생산성 증대가 필요하다. 주파수 정책 등 성장에 집중한 전략을 (정부가) 짜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전문가는 “이통사가 투자해야 관련 중소 제조업체들도 산다”라며 “옛날과 달라서 정부가 강압적으로 정책을 가져가기보단, 통신사업자들을 모아 재할당대가나 전파사용료 감면 등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일부 풀어주고 이를 투자로 이어지도록 하는 정책을 구상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업계 일각에선 AI시대 도래에 따른 혁신 네트워크 기술 개발 및 구축을 위한 민관협력 방안 마련도 제안된다. 미국의 인공지능 연구 자원(NAIRR)과 유럽의 6G/AI-Driven 네트워크 전략과 같이 공공 인프라 및 공용 데이터셋을 제공하고, AI랜·오픈랜 장비에 대한 인증체계를 구축하는 등 전주기 생태계 조성을 위한 민관협력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구 교수는 “AI가 네트워크를 스스로 최적화하고, 트래픽과 서비스를 지능적으로 분산 및 관리할 수 있는 초지능 네트워크 기술 확보는 기존 통신 기술 및 서비스 혁신을 촉진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며 “네트워크용 생성형 AI 기술이 필요한 위치에 따라 유연하게 이동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초지능 네트워크 기술은 한국이 AI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핵심 인프라로 철저한 민관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소현 기자
ksh@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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