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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에 바란다⑨] 공공SW 환경개선 시급…밀린 제도개선 숙제부터

권하영 기자

2025년 현재, 디지털산업은 다시 한번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정치·경제·기술 전반에서 혼돈과 격변이 일상화되는 시대,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방향성과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절실하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창간 20주년을 맞아 ‘혼돈의 전환기, 산업정책의 나침반을 묻다’를 주제로 창간 특집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특집에서는 ‘새 정부에 바란다’는 대기획 아래, 통신·방송·반도체·AI·보안·게임·유통 등 산업별 핵심 이슈를 심층 분석하고, 각계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산업계와 정책 간의 건설적인 대화를 이어가고자 한다. 또한 유력 대선주자의 ICT 공약 분석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 아래 산업계가 나아갈 좌표를 함께 고민해 본다.[편집자]

[Ⓒ 챗GPT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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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부터 조기대선 국면에 이르기까지 장기화된 정치적 불확실성은, 국내 산업 곳곳에서 정책 추진 동력을 약화시켜왔다. 특히 제도적 영향력이 높은 공공 시장 중심으로 성장해온 국내 소프트웨어(SW) 생태계는 “더 이상 공공SW 환경 개선 숙제를 미룰 수 없다”며 초조함을 내비치고 있다.

인공지능(AI)와 디지털전환 시대를 맞아 SW 산업은 국가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떠올랐지만, 정작 국내 SW 기업들이 직면한 공공 발주 환경은 여전히 낙후돼 있다. 원격개발, 합리적 대가 체계, 과업 변경 계약 등 기본적 제도들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SW 품질 저하와 인력 유출이라는 이중고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IT서비스산업협회(ITSA)가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이해민 의원실(조국혁신당) 주최로 열린 ‘제2차 SW·AI 혁신 포럼’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국내 공공SW 시장을 둘러싼 핵심 제도개선 과제는 ▲SW 개발 기능점수(FP) 단가 현실화 ▲과업 변경 대가 지급 ▲원격 개발 활성화 등으로 요약된다.

기능점수 단가는 SW 사업 대가 산정의 기준이 되는 지표지만, 현재는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못한 채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공SW 사업자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사업 수행 중 과업이 추가돼도 정당한 추가 예산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 적지 않다. 이는 ‘확정형 계약’ 관행과 책임 회피 문화가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로 업계는 분석한다. 과업이 변경돼도 예산 증액을 요청하기 어려운 현실은 결국 사업자의 손해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SW 업계는 ▲FP 단가를 정기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과업 변경 시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도록 국가계약법과 SW진흥법에 명시적 조항을 신설하며 ▲담당 공무원이 계약 변경을 주저하지 않도록 행정적 책임을 면책하는 규정을 함께 보완하는 등의 제도개선책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추가 과업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려는 부조리한 관행은 현행법상 SW 과업 범위 확대나 내용 변경에 대한 법적 근거가 뚜렷하지 않아 예산 조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에 기인한 것으로, 이 때문에 업계 내에서는 발주기관과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업계 관계자는 “제도적으로 풀지 못하면, 과업 변경이 반복될 때마다 사업자는 비용을 떠안고, 품질 저하 악순환이 지속될 것”이라 호소한다.

이에 대해서는 법률 개정안이 이미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정치적 상황과 입법기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상황이기도 하다. 이해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계약법 일부개정안은 제19조 ‘물가 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조항에 ‘소프트웨어진흥법에 따른 과업 변경’을 계약 금액 조정 사유로 명시적으로 추가하는 것이 핵심이다.

원격지 개발 역시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팬데믹 이후 민간 기업에서는 재택근무와 원격 협업이 일반화됐지만, 공공SW 사업에서는 여전히 대부분 현장 상주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에 거주하는 고급 개발 인력이 지방 이전 공공기관에 파견되기를 꺼리면서, 역량 있는 인재들이 공공 프로젝트를 기피하게 되는 악순환이 결과적으로 SW 품질 저하와 프로젝트 지연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낳는다.

업계는 물리·기술적 보안 기준을 충족한 개발 공간에 대해 정부가 인증을 부여하고, 해당 장소에 한해 원격 개발을 허용하는 방식의 제도 개선을 제안하고 있다. 이미 2020년 SW진흥법 개정을 통해 법적 기반은 마련되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보안이나 의사소통 문제를 이유로 원격 개발이 거의 이뤄지 않고 있다.

공공SW 사업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기업 참여제한’ 규제에 대한 재논의도 피할 수 없다. 정부는 700억원 이상 대형 사업에 대해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규제 완화 기조를 잡았지만, 중소·중견 SW 기업들은 “공공SW 시장이 대기업에 잠식되면 기술력을 축적해온 중소기업이 하도급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정책 일관성 확보와 실행력을 갖춘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플랫폼정부와 AI G3 비전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현장에서는 “플랫폼만 있고 실행은 없었다”는 냉정한 평가가 이어진다. 여야 정치권에서도 초당적 디지털 정책 컨트롤타워와 AI 전환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SW 업계는 “공공SW 문제는 지난 십수 년간 계속 문제제기 됐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며 “새 정부가 들어서는 전환기인 만큼, 지금이라도 골든타임이라는 마음으로 예산과 정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권하영 기자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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