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민감국가 쇼크] ③ "對美 협력 한 두 개 아닌데"…韓 산업 '초비상' 목전

배태용 기자

삼성전자의 텍사스 테일러시 부지 전경 [ⓒ삼성전자]

[디지털데일리 배태용 기자] 미국이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하면서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과 미국은 다양한 산업군에서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던 만큼, 민감 국가 지정 시 상당한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돼서다.

17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올해 1월부터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지정했고, 오늘 4월 15일부터 공식적으로 발효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한국이 민감국가로 지정된 정확한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중국과의 반도체 공급망 문제, 국가 안보 관련 사안, 기술 유출 우려 등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명확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한국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며,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미국과 긴밀한 협력을 지속해 왔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러시아와 같은 '민감 국가'로 지정됐다는 점에서 업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재혁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가운데, 미국과 협업은 필수적인 상황이나 다름이 없는데, 민감국가로 지정되면 핵심 기술 교류가 어려워질 수 있다"라며 "한국 기업들이 미국과 협력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행정 절차와 제약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 등 국가 핵심 산업 분야에서 인허가 절차가 까다로워지면 연구 및 기술 협력이 지연될 수 있다"며 "이는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민감 국가 지정이 적용되면 한국 기업과 연구기관들은 미국과의 협력 과정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게 돼서다. 미국 에너지부가 2019년 발표한 민감 국가 관련 자료에 따르면, 민감국가로 지정된 국가를 방문하거나 해당 국가의 외국인과 상호작용하는 미국 연방 소속 모든 직원은 정보방첩국의 감시를 받게 된다. 이에 따라 미국 연구기관 및 기업들은 한국 연구자들과의 접촉에 더욱 신중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한국 연구자들은 미국 연구기관을 방문할 때 기존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내 연구기관을 방문하는 한국 연구자는 최소 45일 전까지 방문 목적, 연구 내용, 신원 정보 등을 미국 당국에 제출해야 하며,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때에 따라 출입이 제한되거나, 협력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민감국가 지정은 한국의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 등 핵심 산업의 기술 교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국 기업들이 미국과 함께 진행 중인 투자 프로젝트 자체는 이미 계획된 것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변화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나, 향후 새로운 협력이나 기존 프로젝트의 확장 과정에서 제약이 발생할 가능성은 크다.

특히 기술 이전, 공동 연구, 신기술 개발 등에서 문제가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 정부가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한 만큼, 미국 기업과의 협력 과정에서 보안 심사가 강화되거나 사전 승인 절차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아이폰16 프로.

반도체 부문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구축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며, SK하이닉스 역시 미국 내 투자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퀄컴과 협력, 고성능 반도체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향후 미국과의 반도체 공동 연구개발(R&D) 프로젝트가 보안 심사 강화로 인해 승인 지연 또는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 IT 기업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에 한국산 OLED 패널을 사용하고 있으며,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애플뿐만 아니라 미국 내 여러 IT 기업에 프리미엄 디스플레이 패널을 공급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제조 기술이 첨단 기술로 분류될 경우, 미국 연구기관 및 기업과의 기술 공유 및 협력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배터리 산업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활동이 활발하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는 미국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운영하거나 신설하고 있으며, 테슬라·포드·GM 등과 협력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 공정과 관련한 기술 협력, 차세대 배터리 개발 관련 정보 교류가 보안 심사 대상이 될 경우, 기업 간 협력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겠지만, 향후 미국 정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것을 이유로 연구·기술 협력에 추가적인 보안 심사를 요구하거나, 협력 가능 분야를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민감국가 지정이 한국 기업들의 대미 기술 협력과 연구 교류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 지정된 배경을 명확히 하고, 이를 해제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반도체전문연구원은 "반도체 공급망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협력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데, 이번 민감국가 지정으로 불가능해지거나 어려워지는 잠재적인 위협이 존재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조치로, 기존의 협력 관계를 고려할 때 조속한 해제가 필요하다"라며 "정부 차원에서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불필요한 오해를 해소하고, 산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태용 기자
tybae@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