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법률리그 62] 중대재해처벌법 첫 무죄 사례의 시사점
[법무법인 민후 원준성 대표변호사]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2024. 12. 19.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산업재해치사)의 점에 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2024. 12. 19. 선고 2023고단510 사건).
앞서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의 무죄 선고 사례가 있었으나(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 2024. 10. 16. 선고 2023고단226 판결), 해당 사례는 경과규정에 따라 해당 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유예 대상이라는 취지였던바, 이번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의 무죄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 공소사실에 관한 실질적 내용을 포함하는 사실상 첫 무죄 사례로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 사실관계의 요지
이 사건 사고는 자동차 부품인 각종 씰(자동차 엔진이나 모터의 회전축 단부에서의 기름 누출을 방지하기 위한 '◎' 모양의 링 형태의 부품)의 제작 업무인 '베어링 씰 제작 업무'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입니다.
근로자 B가 베어링 압축성형기를 이용하여 베어링씰의 성형 작업(열과 압력으로 고무 링이 녹으면서 금속 링에 입혀지도록 하는 작업)을 하였고, 피해자는 베어링 씰의 사상 작업(금속 바깥으로 튀어나온 고무를 잘라내는 등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근로자 B는 금형 홈에 금속 링 및 고무 링을 맨손으로 안착시키지 않고 플라스틱 소재의 수공구로 금속 링 및 고무 링을 두드려 안착시켰는데, 근로자B가 그 수공구를 압축성형기 내부 슬라이드 판 위에 둔 채로 압축성형기를 작동시켜 압력을 받은 수공구가 튀어 나가게 되었고, 피해자가 그 튀어나온 수공구에 왼쪽 이마를 맞아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입니다.
● 중대재해처벌법 쟁점에 관한 법원의 판단
이 사건 공소사실은 경영책임자 C 등에 대하여, ① 경영책임자로서 안전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총괄·관리하는 전담 조직을 두지 아니하고, ②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여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하지 아니 하고, ③ 2명 이상의 안전관리자를 두어야 함에도 안전관리자를 1명만 배치하는 등 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위반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그로 인하여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공소사실에 대하여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① 전담조직을 두었는지에 대하여는 경영책임자 C 등이 그 의무를 이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으나, ② 안전관리자 배치의무는 이행했다고 보았습니다. ③ 한편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는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할 의무의 위반도 없다고 보았는데, 이에 관하여는 경영책임자 C 등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제공하는 위험성평가 프로그램 KRAS 시스템을 사용하여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가 이루어졌고, 그중 '성형' 작업과 관련하여 위험성이 '매우 낮음' 또는 '낮음'으로 평가되었으며, 또한 평가 항목으로 작업자의 신체 진입시 협착 위험, 손목부위 통증 위험, 미끄러짐 사고, 미스트 흡입 위험 등이 나열되어 있을 뿐 금형에 수공구 등 물체가 끼어 들어가 튕겨 나올 위험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하여, 『이 사건 수공구의 사용 사실을 알았다고 보기도 어렵고 이 사건 사고가 예견하기 어려웠다고 보는 이상, 피고인 C으로서는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여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하고 이를 이행하여 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한편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전담조직을 두지 않아 그 의무 위반을 인정한 부분에 대하여도, 수공구가 압축성형기에 끼어들어가 튕겨 나와 사람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주된 근거로 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총괄‧관리하는 전담조직을 두지 아니한 것과 이 사건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여, 결국 경영책임자 C 등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 이 판결의 시사점
이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경영책임자의 책임범위를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중대재해처벌법령에 따른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범위를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에 따라 구체화하여 판단하였다는 점입니다.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구체화 필요성은 입법 당시부터 논의된 쟁점입니다(1). 그것이 추상적이면 추상적일수록 경영책임자의 의무가 무제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확인한 것과 같이 이 판결은 경영책임자 C 등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제3호에 따른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여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제공하는 위험성평가 프로그램을 통해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가 이루어졌고, 그 평가 대상에 수공구가 끼어들어가 튕겨 나오는 위험에 대한 평가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으며, 또한 그러한 경우까지 예견하기는 어려웠다는 점을 근거로, 이 부분 의무를 이행했다고 보았습니다.
즉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에 비추어 근로자 B가 압축성형기에 수공구를 방치함으로써 그것이 끼어 들어가 튕겨 나오는 위험까지 대비하여야 할 의무는 중대재해처벌법 상의 안전보건 확보의무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시로 이해됩니다.
둘째, 안전보건 확보의무와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판단하였다는 점입니다. 책임주의 원칙 등을 이유로 결국 반영되지는 않았으나 입법과정에서 인과관계입증요건이 완화되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던 만큼(2) 안전보건 확보의무와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판단한 이 판결은 의미가 큽니다.
특히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인과관계에 대하여는, 이를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보건 조치의무 위반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경우(산업안전보건법위반이 매개된 경우)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 조치의무로 열거된 사항은 이행되었으나 그 사각지대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등의 경우(산업안전보건법위반이 매개되지 아니한 경우)로 나누어,
전자의 경우에는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으로 인하여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보건 조치의무 이행이 불가능하거나 부실하게 이행되어 중대산업재해가 초래되었음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다단계적 인과관계 입증이 필요하다고 보고, 후자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과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직접 검토하여야 하는 것으로 파악되어 왔습니다.(3)
다만 이전까지는 이에 관하여 구체적인 판시를 한 판결은 없었는데, 이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상 형사처벌을 위하여는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제5호에서 규정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과 제2조에서 규정한 중대재해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이 인정되는 경우라도 종사자의 사망이라는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아니하는 때에는 위 규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하여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의 점에 관하여도 안전보건 확보의무와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죄가 성립함을 분명히 설시하였습니다.
나아가 이 판결은 후자의 방식, 즉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과 사망이라는 사고와의 인과관계를 직접적으로 판단하는 방식으로 인과관계를 판단였는데, 이는 근로자 B 등의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조치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앞서 확인한 것과 같이 이 판결은 경영책임자 C 등이 수공구가 금속링 및 고무링을 안착시키기 위해 사용되던 중 그것이 압축성형기에서 튕겨 나와 사람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주된 근거로 하여,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과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생각건대 이는 사업장의 특성에 비추어 예견할 수도 없는 사고에 관하여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을 이유로 경영책임자에게 그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는 취지를 선언한 판시로 이해됩니다.
이처럼 이번 판결은 안전보건 확보의무 및 인과관계의 구체적 내용과 한계를 확인할 수 있는 판결로서 의미가 크다고 보이므로, 경영책임자들로서는 그 내용을 숙지하고 이 판결의 상급심 결과 또한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정현희 연구위원(판사),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재판 실무상 쟁점 현안보고서, 사법정책연구원(2022), 제6면.
<원준성 변호사> 법무법인 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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