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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탄핵 정국 지속에 휘말린 韓 경제…골든타임 잡아야

고성현 기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유례없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이 찾아오면서 국가 경제가 위기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원/달러 환율이 1480원 부근까지 오르며 원자재 및 수입품 구매 부담이 극도로 치솟았고, 침체된 금융투자시장에 마지막 쐐기를 박고 시장 반등의 여지마저 막아섰다.

기업들은 일제히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비상 계엄으로 촉발된 탄핵 정국 이후 개별 기업과 업계에 미칠 여파가 적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줄줄이 나오고 있어서다.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 등 국가 전략 산업의 '골든타임'이 다가오는 시기에 발생한 만큼 정부 공백의 여파가 짙게 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 주를 이루는 모습이다.

A 기업은 비상 계엄, 탄핵이라는 국정 혼란으로 인해 추진해 온 투자재원 확보 계획을 황급히 마무리했다. 전체적인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단기간 내 반등할 여지마저 사라진 탓에 더 좋은 가치 평가를 받기 어려워서다. 코스닥(KOSDAQ) 상장을 내년 1~2분기 중 추진하려고 했던 B 기업은 연말 금융시장 상황의 둔화, 내년까지 이어질 탄핵 정국 등을 고려해 상장 일정을 한 분기 가량 미뤘다.

또다른 C기업 관계자는 "기업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어느정도 기초체력이 있는 강소·중견 및 대기업들은 당장의 그 여파가 크지는 않다. 고환율에 따른 원자재 수입 정도가 부담으로 작용하는 중"이라면서도 "국가적 신뢰도의 문제도 있겠지만, 탄핵 정국이 지속될수록 그 기업과 시장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가장 떨어지는 게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내년 사업 확장을 위한 외부 자금 조달 방안에 제약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혼란한 정국이 시작되면서 연내 통과될 것으로 기대했던 반도체 지원을 위한 'K-칩스법' 처리도 일제히 멈춰섰다. 반도체 보조금을 직접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반도체특별법과 세액공제를 지원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논의가 멈췄고, 첨단산업 지원에 필요한 첨단전략산업 기금법·전력망 확충 특별법 등 주요 경제 법안마저도 올해 통과가 무산됐다.

특히 반도체특별법이 멈춰서면서 반도체 업계의 분위기는 더욱 내려 앉았다.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국내 시황이 어려운 상황에서, 오랜 기간 염원했던 정부의 직접 지원마저 다시 멈추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반도체 업계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수혜를 누리는 일부 기업 외 범용 제품의 수요가 꺾이며 실적 부진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K-칩스법의 통과는 국내 반도체 산업의 반등을 이끄는 법이 아니라, 주요국과 비슷한 수준을 맞추는 등 출발점을 서게하는 법안이다. 그마저도 또다시 좌절된 것"이라며 "법안 통과 이후에도 업계의 현황과 맞지 않는 쟁점을 논의해야해 시간이 걸린다. 탄핵 정국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시기는 늦춰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장 큰 위기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내년 본격 출범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 중심 산업 공급망을 꾸린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와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방법론에서 유인책 대신 관세 등 강경책을 펼치는 점이 크게 다르다. 내년 초 출범 이후 각국의 무역에 대한 관세와 협력 등이 논의돼야 하는 시점인 만큼, 정부 최고 권력의 이탈은 국내 산업의 협상력 약화와 고립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 영향권 아래에 놓인 대표적인 산업은 반도체와 배터리다. 국내 반도체, 배터리 기업이 대규모 미국 투자를 꾸준히 집행해 온 탓에,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특히 배터리의 경우 이미 주 정부 등과 보조금·인센티브 협상을 마무리한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외에도 양극재, 전해액, 분리막 등 주요 소재 기업들이 공장 건설을 검토해온 바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미비해지면 이들의 안정적인 미국 진출은 커녕 글로벌 경쟁에서도 뒤처질 위험이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은 다음달 20일로 이제 한달조차 남지 않았지만 국내 정치는 혼란이 수습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가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면서 탄핵 정국을 안정화시키지 못했고,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라는 사상 초유의 비상사태를 불러왔다.

이제는 국내 경제를 진정으로 생각할 때다. 다음 대권을 노리겠다는 야욕에 가득 찬 정국에 휘말려 주저하고 있을 시간조차도 없다. 대통령이 없다고 해서 나라가 오작동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 국가적 리스크를 빠르게 해소하고 안정화할 대책을 빠르게 마련하는 것이다. 비상 계엄의 값은 이미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기업, 그 구성원인 국민이 치르고 있다.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정국 안정화를 위한 책임, 소명을 다해야 할 때다.

고성현 기자
narets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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