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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韓 이스포츠가 ‘모래 바람’을 대하는 자세

문대찬 기자
지난 7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e스포츠 월드컵. 사진은 LoL 종목에서 우승한 T1. [ⓒEWC]
지난 7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e스포츠 월드컵. 사진은 LoL 종목에서 우승한 T1. [ⓒEWC]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올 한 해 글로벌 이스포츠 업계를 관통한 중요한 사건이라고 하면, 지난 여름 개최된 ‘이스포츠 월드컵(이하 EWC)’을 꼽을 수 있다.

EWC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부어 7월부터 두 달간 수도 리야드에서 개최한 대회다. 총상금만 6000만달러(한화 약 840억원)에 달한다.

이스포츠 글로벌 패권을 놓고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경쟁하던 상황에서, 이번 대회는 사우디가 주도권을 쥐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된다.

사우디는 내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함께 이스포츠 올림픽도 개최할 예정이다. EWC는 매년, 이스포츠 올림픽은 2년 단위로 정례화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바라보는 국내 이스포츠 업계의 심정은 복잡하다. 한국은 이스포츠를 태동시킨 종주국으로 통하지만, 국제 무대에서 혁신을 주도하거나 목소리를 내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이스포츠 표준’을 선점하려는 시도에서도 중국에 밀려 후발 주자로 전락한 상황이다.

2025 EWC에 정식 종목으로 선정된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 [ⓒ스마일게이트]
2025 EWC에 정식 종목으로 선정된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 [ⓒ스마일게이트]

사우디의 공격적인 행보에 대응하기 위해 남은 선택지는 명확하다. 게임단과 게임사는 EWC와 이스포츠 올림픽 같은 글로벌 메가 스포츠 이벤트에 적극 참여해 실리를 추구하고, 정부는 이러한 대회를 한국에서 유치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실제 올해 EWC에 참가한 국내 게임단은 상금 등 여러 실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올해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 결승전을 개최한 영국은 이에 힘입어 약 1200만파운드(한화 약 221억원)에 달하는 경제 효과를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

마케팅과 브랜드 노출 등 추상적인 가치를 포함하면 실제 효과는 이보다 10배 이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동발 모래바람은 맞서야 할 위협이 아니라 활용해야 할 기회임이 한층 선명해진 대목이다.

이미 몇몇 게임단은 내년 EWC 참가를 진지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일게이트는 최근 자사 대표 게임 ‘크로스파이어’를 EWC 정식 종목으로 등재시키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민하게 대응하는 게임단과 게임사는 앞으로 더 큰 수혜를 누릴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이스포츠협회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졌다. 지금까지는 이스포츠 생태계 구축과 저변 확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중동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국내 게임단 및 게임사와의 연결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한국 이스포츠의 입지는 아직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종주국으로서 축적한 운영 노하우와 인프라, 그리고 ‘페이커’ 이상혁 같은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은 한국의 경쟁력을 상징하는 요소다. 이러한 강점은 EWC와 같은 대회 유치와 글로벌 협력에서 중요한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한국 이스포츠 고유의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 인재 양성과 게임 산업 지원책 등을 재점검하며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다소 침체됐던 이스포츠 업계에 불어온 중동발 모래바람은 단순한 변수 이상이다. 한국 이스포츠가 새로운 흐름에 발맞춰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더욱 강화해나가길 기대해본다.

문대찬 기자
freez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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