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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KB국민은행 ‘차세대 IT’사업… 결국 IBM 못넘나 [진단④]

박기록 기자

ⓒKB국민은행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KB국민은행의 차세대시스템 사업인 ‘코어뱅킹 현대화’ 프로젝트가 1년여 동안 진행된 2단계 사업의 부진으로 향후 3단계 일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

국민은행 입장에선, 최종 3단계 사업으로 넘어가기위해선 2단계 사업 성과가 반드시 전제돼야했지만 현재로선 이와관련한 공식적인 추후 일정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7월말로 2단계 사업을 종료했지만 3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최종 '코어뱅킹 현대화' 3단계 사업에 대한 별도의 입찰공고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IT업계 일각에선 “x86기반의 개방형 주전산시스템 환경으로 전환하려했던 국민은행 차세대 프로젝트가 사실상 백지화된 것 아니냐”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은행의 ‘코어뱅킹 현대화’ 2단계 사업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문제점들을 감안했을 때, 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KB금융 및 국민은행 내부에 오랫동안 존재해왔던 ‘IBM 이슈’(?)가 보다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즉, 국민은행은 내부에 ‘IBM 메인프레임’을 지지하는 세력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의 논리가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꼭 바꿀 필요가 있나?"… 여전한 인식의 차이

실제로 KB금융의 한 관계자는 이런 인식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국내 은행권에선 지난 20년 가까이 유닉스(UNIX) 등 오픈환경으로 전환하지않으면 혁신을 거부하는 것처럼 인식됐다. 하지만 현재도 IBM 메인프레임을 사용하는 해외 대형 은행들이 많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의 트랜잭션(거래량)을 고려했을 때, 안정성이 최대 강점인 IBM 메인프레임을 굳이 오픈 혁신이란 트랜드때문에 배제할 이유가 있느냐’는 논리가 여전히 조직 내부에선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같은 ‘IBM 친화적’인 국민은행 내부 인식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x86기반 오픈환경으로 코어뱅킹 업무를 옮기고 주전산시스템을 혁신하려는 사업이 애초부터 구조적으로 힘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더구나 내부 인사가 아니라 과거 허인 행장(2018~2021)시절, 외부 영입된 IT 전문가그룹에 의해 주도된 ‘코어뱅킹 현대화’ 사업은 이미 그 결과가 어느 정도 예견될 수 밖에 없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여기에 국민은행 IT조직 내부의 기류에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IBM 메인프레임 잔류’의 논리가 힘을 얻고 분위기다.

이와관련 KB금융의 한 관계자는 “처음 ‘코어뱅킹현대화’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에는 은행 내부에서 ‘IBM 메인프레임을 다룰 코볼 전문가를 이제 더 이상 구하기 어렵고, 젊은 직원들은 배울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오픈 환경으로 전환을 서둘러야한다’는 목소리가 컷었다”며 “그러나 이후 어느 순간 ‘코볼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으로 기류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한편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IBM의 영향력이 KB금융 및 국민은행내 직원 뿐만 아니라 최고경영진에 이르기까지 막강하게 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와관련 KB금융의 한 관계자는 “최근의 상황을 보면, 전체적으로 IBM의 영향력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KB금융‧국민은행 IT조직내 몇몇 실무자 차원의 반발만으로 3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코어뱅킹현대화’와 같은 핵심 사업이 좌지우지된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초 ‘KB금융 전산 내분사태’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한국IBM 대표의 이메일 사건은 이러한 IBM이 가진 폭넓은 영향력의 실체가 외부에 드러난 충격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당시 셜리 위 추이 한국IBM 대표가 국민은행장에게 ‘IBM 메인프레임을 계속 사용해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고, 이는 이사회를 거쳐 이미 주전산시스템 교체를 결정했던 KB금융지주까지 들쑤시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것이 KB금융 내분 사태로 번지자 금융감독 당국이 개입했고, 당시 징계를 받은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모두 옷을 벗어야 했다. 이후 시스템 교체 논의는 중단됐지만 정작 당사자인 IBM은 이 사태의 영향을 받지않고 한국의 대표 은행을 레퍼런스로 굳건하게 지켜오고 있다.

이밖에 IBM 입장에서보더라도 국민은행은 도저히 타사에 뺏길 수 없는 상징성이 높은 레퍼런스다.

이 점때문에 어느때 보다 국민은행에 대한 치열한 수성 전략이 가동되고 있을 것이란 추론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IBM은 지난 2022년 5월, 인공지능(AI) 추론 전용 가속 칩 ‘텔럼(Telum)’과 양자 내성 암호 시스템을 탑재한 메인프레임 신제품인 ‘IBM z16’을 공개한 바 있다.

IBM이 2022년에 발표한 메인프레임 신기종 z16 ⓒIBM

IBM측은 z16 기종이 금융 거래와 같은 미션 크리티컬 워크로드의 실시간 거래를 대규모로 분석할 수 있도록 설계됐고, 강력한 보안 기술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일각에선 출시 당시부터, 추후 ‘메인프레임 z16’이 적용될 대표적인 레퍼런스로서 국내에선 국민은행이 거론된 바 있는데, 이는 최근의 상황 전개와 더불어 많은 억측을 낳게한다.

이와관련 금융IT업계의 한 관계자는 "IBM은 z16 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돼왔던 것들을 모두 극복했다 강조하고 있다"면서 "아마도 KB금융에게도 충분히 그 점을 인식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록 기자
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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