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T1 홈그라운드와 이스포츠 지역 연고제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이(e)스포츠 지역 연고제 도입은 업계의 해묵은 화두다. 산업 규모를 확대하고 더 많은 팬층을 확보하기 위해선 특정 지역을 기반해 성장하는 프로스포츠 모델을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온라인으로 경기가 열리는 이스포츠 특성이나 대중화 정도를 고려하면 시기상조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한 정치권 내 온도차도 극명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9일 열린 T1의 ‘홈그라운드’ 행사는 지역 연고제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홈그라운드는 T1이 라이엇게임즈, KT 롤스터와 협의를 거쳐 기획한 행사다. T1이 고양시 소노 아레나를 임시 홈(Home) 경기장으로 삼고 KT를 어웨이 팀 자격으로 초청해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정규리그 경기를 치렀다.
정규리그 경기인데도 홈그라운드 행사는 결승전 못지않은 뜨거운 관심 속에 마무리됐다. 마련된 7000여개의 좌석은 전부 동이 났고, 현장을 찾은 팬들은 팀이 준비한 선수단 응원가를 목 놓아 부르며 여타 프로스포츠를 방불케 하는 열기를 보여줬다. 카드 섹션과 LED 팔찌, 대형 현수막 등을 이용한 다양한 응원전이 양 팀 간에 펼쳐지며 또 다른 재미도 낳았다.
비록 업계 최초의 시도라 경기를 전후해 잡음도 있었지만, T1 홈그라운드는 업계 새로운 표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팀에 대한 선수, 팬들의 소속감을 고취시켰다는 점에서 지역 연고제의 기대 효과를 엿볼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이스포츠는 선수 이적이 활발해 팀 단위의 팬이 형성되기 어려운 구조다. 대회에서 우승을 하더라도 선수를 잡아둘 돈이 없으면 팬층도 와해되는 형태다. 지역 단위 충성팬층을 형성할 수 있는 지역 연고제 도입이 게임단 수익성 개선을 위한 주요 대안 중 하나로 떠올랐던 이유다.
물론 홈그라운드 행사만 놓고 마냥 장밋빛 전망만 그릴 순 없다. 현재 마련된 이스포츠 상설 경기장 상당수는 수도권에 편중된 데다, 이마저도 대규모 관중석을 보유한 경기장은 몇 되지 않아 지역 연고제를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 구성도 미흡한 상황이다. T1을 포함한 몇몇 인기팀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의 관중 동원력에 대한 의구심이나 우려도 여전하다.
문제는 게임단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스포츠 인기와 산업 규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지만, 게임단 지갑 사정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선수들 몸값은 치솟는 데 반해 게임단 사업 모델은 한계에 다다랐고, 프로스포츠와 달리 든든한 모기업을 기반한 게임단도 극히 일부에 불과해 지속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세계 최고의 인기 게임단으로 통하는 T1마저도 지난 2019년부터 작년까지 매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도전적인 시도나 변화 없이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앞서 현장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이제는 시간이 없다. 뭐라도 해야 한다.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골든타임을 하릴없이 보내고 있다”고 호소한 바 있다. T1 홈그라운드 행사를 통해 홈 경기장에 대한 수요, 지역 연고제 도입을 통한 가능성은 확인했다. 이제는 정치권, 게임사, 그리고 게임단이 머리를 맞대 지역 연고제의 현실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야 할 때다. 지역 연고제가 아니어도 좋다. 뭐라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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