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와 손잡은 애플...정말 자존심 구겼나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애플이 오픈AI의 손을 잡은 건 자존심의 상처일까, 혹은 다음 수를 노린 큰그림일까?
애플이 최근 공개한 자체 AI 플랫폼 '애플 인텔리전스'에 오픈AI의 'GPT-4o'를 접목한 배경을 두고 세간에서는 다양한 평가가 따랐다. '기존 경쟁자들의 AI와 다를 바 없다', '폐쇄적이었던 애플이 오픈AI와 손잡은 건 자존심을 버린 것'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오픈AI 기술이 탑재된 애플 기기의 보안은 믿을 수 없다"며 "회사 내 애플기기 반입을 금지할 것"이란 강수를 두기도 했다. 애플의 오랜 자랑이었던 보안에 공개적으로 흠집을 낸 것이다.
실제로 애플은 1970년대 1세대 PC 시절부터 오늘날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독자기술 중심의 제품 전략을 취해왔다. 이는 소프트웨어인 운영체제(OS)부터 하드웨어(기기)까지 모두 자체 개발이 가능한 애플 특유의 강점 덕분이었다. 때론 이것이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독점적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그만큼 애플의 제품 퀄리티는 높았고, 뛰어난 보안성을 입증했기에 상쇄되어 온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오픈AI와의 협업으로 애플이 수십년간 고수했던 정체성은 다소 흔들리게 됐다. 더욱이 경쟁사보다 훨씬 늦게 AI 플랫폼을 발표하고도 외부의 힘을 빌린 점은 세간의 물음표를 띄우기에 충분했다.
그럼 과연 애플은 정말 실력이 부족해서 오픈AI를 불가침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걸까? 또 일론 머스크의 지적대로 아이폰의 보안은 정말 이전보다 못하게 된 걸까? 이와 관련해 주요 AI 기업에 몸담고 있는 기술 전문가 2인으로부터 흥미로운 견해를 받아볼 수 있었다.
애플, AI 기술력 부족으로 '쇄국정책' 풀었다?
이들은 애플의 AI 기술력이 약하거나, 그로 인해 폐쇄적인 생태계 전략을 풀었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애플이 조금 더 큰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먼저 고위 기술직 임원인 A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 애플이 폐쇄적 기조를 버렸다고 단정하긴 이르다. 그들은 특히 스티브 잡스 시절부터 프라이버시 보호에 광적인 회사였다. 따라서 거대언어모델(LLM)처럼 대규모 데이터센터 기반의 클라우드 시스템을 연동해야 하는 AI를 기기에 탑재할 경우, 사용자 정보가 외부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민했을 것이다. 이전에 아이클라우드(iCloud)가 있었지만 그건 애플 생태계 내부에서만 사용자가 선택적으로 사용하던 일종의 저장소와 같았기 때문에 조금 다른 문제다.
또 단순히 애플의 AI 기술력이 부족해서라고 보기도 어렵다. 클라우드를 활용하지 않고 기기 자체에서만 구동되는 '온디바이스 AI' 측면에서만 보면 애플의 'CoreML(머신러닝 프레임워크)'나 이에 최적화된 자체 CPU(중앙처리장치)만 봐도 애플은 상당한 강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플은 계속해서 온디바이스 AI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한편, 사용자 편의를 보완하는 측면에서 오픈AI를 끌어들였다고도 볼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GPT-4o가 작동하는 기능은 내부적으로 통합한 게 아니라 사용자의 승인을 받아 작동하도록 구성된 것이다. 이는 자신들이 언제든 준비만 되면 언제든 오픈AI를 배제해 버릴 수 있다는 의지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아가 애플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론 온디바이스 AI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낫다. 다양한 멀티미디어 AI 기능을 실시간으로 쾌적하게 처리하려면 온디바이스 AI가 더 유리하며, 전기 사용량 등 환경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클라우드 LLM의 한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유명 AI 개발자 B씨의 견해다.
"애플은 최근에야 스위스 비밀 연구소를 통해 'MM1' 같은 고성능 AI 모델을 개발한 사실이 알려졌을 만큼 여전히 폐쇄적이고 비밀이 많은 회사다. 이 점만 봐도 폐쇄적 정책을 포기했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여전히 공개되지 않은 한방을 물밑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한발 더 나아가면 이번 오픈AI 기술 연동은 애플이 자체 모델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먼저 서비스 측면의 사용자 반응을 파악하기 위한 임시조치로도 보인다. 자신들이 생각한 시나리오대로 잘 이뤄지는지 오픈AI를 통해 비용을 최소화하며 테스트하고, 내부적으로 최적화하는 전략일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애플의 체급을 생각할 때 생각보다 그들에게 명망 높은 AI 개발자가 적은 점은 앞으로의 영향을 지켜볼 만하다. 이는 현재 생성형 AI 개발자 대부분이 오픈소스 사용이나 논문 쓰기를 선호하는데 폐쇄적인 애플에서는 이게 제한되는 점이 매력적이지 않은 까닭으로 보인다."
애플의 보안 철옹성, 이전만 못 하게 됐다?
애플은 앞서 애플 인텔리전스를 발표하며 사용자 개인정보는 자사 프라이빗 클라우드 서버 등을 통해 안전하게 보호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반면 일론 머스크는 애플이 오픈AI와 협력을 발표하자 자신의 SNS에 "애플이 자체 AI도 못 만들면서 어떻게 사용자 개인정보를 보호하나, 그들은 당신을 배신하고 팔아넘길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일각에선 이를 오픈AI와 사이가 나쁜 머스크의 '몽니'로 보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일론 머스크의 주장이 꼭 틀렸다고 말하긴 어렵다고 봤다. 시스템이 아닌 애플의 양심과 의지의 문제란 얘기다. 이 점에 대한 A씨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클라우드를 통한 외부 AI 서비스를 사용할 때 사용자 정보는 당연히 유출될 수 있다. 가령 블록체인 기술 자체는 보안에 문제가 없지만, 그걸 운영하는 가상자산 거래소는 여전히 보안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애플의 아이클라우드마저 그 자체를 뚫긴 어려워도 사용자 취약점을 이용해 접근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또한 기술적 공격의 측면보다, 서로 합의를 통해 정보를 공유한다면 그건 누구도 모를 일이다. 데이터를 블라인드 처리해서 비식별화하고 전달하는 수준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즉, 애플과 오픈AI 경영진 의지의 문제지 보안 기술에 대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는 B씨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오픈AI가 이번 계약을 그냥 맺었을까? 그들은 여전히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 처지이고, 그런 측면에서 수억명이 쓰는 아이폰에 자기 기술이 탑재되는 건 꽤 매력적인 선택지다. 확실한 건 이 가운데 애플과 오픈AI가 구체적으로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따라서 협업 내용 중에 어떤 형태로든 데이터 제공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건 이를 약관으로 사용자에게 명확히 고지하고 동의를 받는지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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