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망 투자에만 약 300조…빅테크 협력 없인 6G시대 없다”
[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차세대 네트워크 요구 사항을 충족하려면 ‘망 투자격차(Investment Gap)’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합니다”
존 구스티(사진)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 최고규제책임자(CRO)는 최근 <디지털데일리>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 자체 추산에 따르면 유럽 대륙에서 필요한 네트워크 인프라 투자비용은 2000억유로(한화 약 294조원)”라며 이 같이 밝혔다.
◆ 뒤바뀐 디지털 생태계 질서…CP의 성장, ISP 향한 압박
인터넷제공사업자(ISP·통신사)와 콘텐츠제공사업자(CP)는 초기 인터넷 시장에서 가입자 확보를 위해 손잡았다. 당시 ISP는 데이터를 다량 유발하는 실시간영상·게임 등 CP의 콘텐츠를 내세워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이 높은 가입자를 대거 유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CP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빅테크 기업이 발생시키는 트래픽 규모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ISP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GSMA가 대변하는 글로벌 이동통신업계는 빅테크 또한 네트워크 투자 비용을 공동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샌드바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구글·메타·넷플릭스 등 주요 빅테크 6곳이 유발한 트래픽 비중은 전체의 64%이며, 이들을 중심으로 지난해 트래픽 양은 23% 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협상력도 이미 CP 우위로 돌아선 상황이다. 최근 일단락됐지만 국내에서도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가 이른바 '망사용료 소송'을 2020년 4월부터 장기간 갈등을 이어왔다.
구스티 CRO는 디지털 생태계가 변화한 만큼 인터넷 생태계 유지를 위해선 ISP와 빅테크기업 공통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빅테크기업은 네트워크에 의존해 돈을 벌고 있지만 ISP만이 (네트워크에 대해) 더 많이, 더 빨리 투자하도록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다”며 “네트워크 구축에 대한 투자 자본의 굳건하고 지속적인 흐름을 보장하는 것이 ISP 뿐 아니라 빅테크기업을 비롯한 디지털 생태계 내 모든 사업자에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오늘날 ISP에 대해 과도한 규제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면서, 빅테크와의 투자격차를 장기간 방치할 경우 차세대 네트워크 출시 등 각국의 디지털 정책 목표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구스티 CRO는 “빅테크 기업들은 세계 최대 기술 기업들로, 전 세계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한국 시장과 한국 소비자들로부터 강력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며 “많은 국가와 지역에서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네트워크) 투자 능력은 낡은 규제와 과도한 부문별 과세, 수익 창출보단 시장 성장에 더 중점을 둔 주파수 스펙트럼 정책 등으로 인해 심각하게 저해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진행된 세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2024’에서도 빅테크 기업과의 망 투자비용 분담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재확인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당시 GSMA 이사회 산하 정책 그룹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의 네트워크 투자 공정 분담 방안을 아젠다로 제시했다. 특히 회의에선 유럽 통신사인 보다폰과 텔레포니카 등이 적극적인 추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구스티 CRO는 ”바르셀로나에서 우리는 디지털 생태계의 가장 큰 수혜자인 빅테크기업이 네트워크 투자금 조달에서 수행해야 하는 역할에 대한 건전한 논쟁이 있었다”라며 “우리(GSMA)는 앞으로 몇 달 동안 회원국가들과 함께 계속해서 이 토론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변곡점 맞은 망 투자 논의 …"새로운 시장 규칙 만들어져야"
구스티 CRO에 따르면 망 투자와 관련된 논의는 최근 변곡점을 맞았다. 5G(5세대이동통신)가 성숙기에 돌입함에 따라 각국 정부가 네트워크 인프라에서 빅테크의 역할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엔 라틴아메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도 이용자의 이익을 위해 네트워크 투자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그는 밝혔다.
이 중에서도 그는 유럽사례에 주목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지난 2월 네트워크 질서 전반을 재정의하는 이른바 ‘DNA(디지털네트워크법·Digital Network Act)’ 관련 백서를 발간하고, 오는 6월30일까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티에리 브르통 EC 집행위원이 주도한 이 백서는 디지털네트워크법 추진에 앞서 검토해야 될 내용들이 담겼다. 망사용료 지급방식과 관련해 정책적 논의가 새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다수의 빅테크 기업이 포진해있는 CP와 ISP 간 트래픽 처리 방식이 변화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구스티 CRO는 망 투자와 관련해 정책 방향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 백서에 주목했다. 구체적으로 백서에는 ▲차세대 네트워크의 보다 빠른 출시를 위해 새로운 자금 조달 메커니즘을 개발하고, ▲ISP가 빅테크 기업에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공정한 조건에서 협상할 수 있도록 공평한 경쟁의 장을 구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바뀐 시장의 경쟁 역학을 반영해 통신 규제를 업데이트하는 등 새로운 시장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도 적혔다.
구스티 CRO는 백서에 대해 “많은 정부가 유사한 투자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백서의 내용은) 전 세계 시장과 관련이 있다”라며 “다음 유럽연합(EU) 정책 입안자 집단은 유럽의 산업과 중소기업이 전 세계적으로 경쟁하고 디지털 인프라의 혜택을 얻을 수 있도록 통신 규제 프레임워크를 정비하는 기회를 맞이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우리(GSMA)는 다음 입법 주기에서도 차세대 네트워크를 위한 투자 환경 구축이 우선순위로 남을 수 있도록 EC 및 기타 EU 정책 입안자 및 이해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美 USTR, '망 무임승차방지법' 반대?…"문제 해결 위한 정부 개입 필요"
국내에서도 일찍이 빅테크들의 망 무임승차를 막기 위한 법제화에 나섰다. 이른바 ‘망무임승차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국내 전기통신망을 이용할 경우 망이용계약 체결 또는 망이용대가 지급을 의무화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해당 법안은 현재 국회에 다수 발의돼 있지만, 장기간 계류돼 있는 상태다. 혹여나 법안이 통상마찰 논란으로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에도 미국 정부기구인 무역대표부(USTR)은 한국 국회에 계류 중인 이 법안과 관련해 "반 경쟁적"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구스티 CRO는 한국의 망 무임승차 방지법은 빅테크 기업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큰 이익을 얻는 대신 짊어져야 할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6G 등 차세대 통신을 위해선 관련 법 추진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도 그는 거듭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연말까지 망사용료와 관련한 정부의 생각을 정리해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감감무소식인 상황이다.
구스티 CRO는 '망 무임승차방지법'이 계류돼 있는 것에 대해 “네트워크 투자를 통해 뒷받침되는 디지털 경제의 최대 수혜자가 투자에 참여해야 한다는 원칙과 규제가 현대 디지털 생태계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은 우리(GSMA)가 보기엔 공정한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이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차세대 네트워크 출시와 통신 기반 혁신의 진행 속도가 느려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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