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내몰린 확률형 아이템, 게임업계 ‘제2막’ 열릴까
[디지털데일리 문대찬 기자] 국내 게임업계 성장을 견인해 온 확률형 아이템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이용자 피로감이 높아진 상황에다, 국내외 고강도 규제 움직임까지 포착되면서 국내 게임사로선 새 수익모델(BM) 발굴이 불가피해졌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연초부터 불공정 거래 해소에 초점을 맞춘 규제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 비대칭이 문제로 지적된 게임업계 확률형 아이템도 그 대상이다.
정부는 지난 2일 열린 제1회 국무회의를 통해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를 의무화하는 게임산업법 개정안 시행령을 최종 의결했다. 법안 시행일은 오는 3월22일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사가 정한 확률에 따라 무작위로 장비 등을 제공하는 유료 상품이다. 확률 공개 의무가 없던 이전에는 게임사가 확률을 몰래 낮추거나 변경해도 소비자가 이를 알 수 없어 거래 구조가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지난 2021년 일부 게임사가 아이템 확률을 몰래 손 본 정황이 드러난 뒤부터는 관련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본격 힘이 실렸다.
법이 시행되면 3년 연평균 매출액 1억원을 초과하는 게임사는 확률을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이를 홈페이지 등에 구체적으로 표시해야 한다. 확률형 아이템 도입 자체를 제한하는 고강도 규제는 아니지만, 확률 공개 의무를 어기거나 기재한 내용이 허위로 밝혀지면 시정 명령에서 나아가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만큼 게임사에 적잖은 부담을 안길 법안으로 평가된다.
이에 더해 업계는 3일 넥슨에 내려진 공정거래위원회발 수백억원대 과징금 징계를 통해 정부가 확률형 아이템 규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확률형 아이템 환불과 관련한 모바일 게임 표준 약관 기준 개정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투윈(돈을 쓸수록 강해지는 방식)’에 친화적이지 않은 해외 시장 상황도 확률형 아이템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특히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게임 시장을 보유한 중국이 최근 확률형 아이템을 겨냥한 고강도 규제안을 발표하면서 그 입지가 더욱 위태로워졌다.
이에 따라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국내 게임사 BM에도 대대적 변화가 예상된다. 대안으로는 게임 진척도에 따라 보상을 지급하는 ‘배틀패스’와 캐릭터 능력치에 영향을 주지 않는 치장품 등이 꼽힌다. 앞서 업계에선 엔씨소프트가 신작 ‘쓰론앤리버티’에서 확률 요소를 전면 배제하는 등 변화 움직임이 감지돼왔는데, 이러한 행보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란 관측이다.
업계 일각에선 확률형 아이템의 입지 축소가 업계 전반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국내 게임사는 캐릭터를 타인보다 강하게 성장시키고 싶은 이용자 심리를 이용, 높은 능력치의 장비는 획득 확률을 낮게 설정하는 방식으로 고수익을 올려왔다.
이는 업계의 가파른 성장을 이끌었지만, 이용자 경쟁을 부추기기 쉬운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등으로 장르 편중이 심화되면서 게임사가 내수 시장에만 집중하는 그림자도 낳았다. 급기야 이름만 바꾼 유사 작품들이 시장에 범람하면서 산업 생태계의 몰개성화로까지 이어졌다.
확률형 아이템의 비중이 약화하면 게임사의 장르‧플랫폼 다변화 행보에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곧 국산 게임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실제 올해 넥슨 등 일부 게임사는 MMORPG와 모바일을 탈피한 신작으로 서구권 시장에서 전례 없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확률형 아이템이 그간 국내 게임 산업 생태계에 미친 영향이 막대했던 만큼, 수익모델이 변화하면 향후 업계 풍경도 달라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게임사가 새로운 BM을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 같다”며 “배틀패스 등 BM은 수익성이 부족하다. 이를 보완하려면 이용자 수 중심의 박리다매 전략이 불가피한데, 이를 위해 결국은 차별화 된 게임성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확률형 아이템의 수익성이 높은 만큼 아예 거리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 중소과금 수익모델, 패키지 게임 판매 등 투트랙 접근이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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