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쇳물부터 까만 양극재까지…포스코 그룹의 ‘新대동맥’ 탐방기 [소부장 현장속으로]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노란 통제선 바깥으로 물러나세요!” 한때 지하철 승강장에서 듣던 외침을 한여름보다 뜨거운 열기 한복판에서 들은 순간, 내 몸도 본능적으로 열기의 근원에서 멀어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문을 열고 고작 몇걸음 뗐을 뿐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용광로의 열기가 빠르게 피부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시작으로, 포스코퓨처엠 광양 양극재 공장 중심으로 포스코필바라리튬솔루션, 포스코HY클린메탈이 연결된 광양 ‘2차전지 콤플렉스(복합단지)’를 둘러보고 왔다. 최근 2차전지 중심으로 미래 먹거리를 재설계 중인 포스코 그룹의 새로운 대동맥이 형성되고 있는 현장이었다.
이날 포스코가 기자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준 건 광양제철소의 1고로(용광로)다. 2차전지와 직접 관계는 없지만 오늘날 포스코가 2차전지 광물 추출부터 가공, 생산, 리사이클링(재활용)에 이르는 대단위 벨류체인을 완성할 수 있었던 노하우와 근간은 철강에서 시작됐다는 설명이었다.
1고로는 높이만 약 50m 이상, 1500도의 뜨거운 쇳물이 쏟아지고 있는 최하층부의 넓이와 열기는 압도적이었다. 방열복, 안전화, 안전헬멧과 보안경을 꼼꼼히 착용하고 들어갔음에도 몸을 옥죄는 열기가 느껴졌다. 심지어 바닥의 갈라진 틈 밑으로도 흐르는 쇳물의 모습에 긴장이 배가됐다. 이곳에서만 연 5100만톤의 쇳물이 생산된다고 한다.
생산된 쇳물은 특수 운반차를 타고 철강을 만드는 제강공정으로 이동 후 반제품, 얇게 만드는 압연 공정 등을 거쳐 최종적으론 지름 2m, 펼치면 길이 1km나 되는 20톤 규모의 강철 코일로 만들어져 팔린다. 이 과정이 담긴 열연 공장은 가열로 설비부터 코일 제작 설비까지 길이만 약 500m에 달했다. 이 같은 대규모 공장을 현장 작업자 거의 없이 자동화 공정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노하우가 오늘날 2차전지 소재 제조 공장으로도 이어졌음이 느껴진 대목이다.
◆ 포스코퓨처엠 양극재 생산공장
이어 방문한 포스코퓨처엠의 광양 양극재 공장은 단일 기준 세계 최대 규모(연산 9만톤)의 양극재를 생산하는 기지다. 60kWh 배터리 탑재 전기차 기준 100만대에 공급 가능한 수준이다. 포스코퓨처엠은 빠르게 성장하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이달 2030년 양극재 생산능력 목표를 연 61만톤에서 100만톤으로 대폭 상향 제시한 바 있다.
특히 광양 공장은 포스코퓨처엠이 생산하는 고성능 전기차용 하이니켈 NCM·NCA·NCMA 양극재와 더불어 올해 4월 국내 최초로 단결정 양극재를 양산해 고객사에 공급 중인 곳이다.
단결정 양극재는 기존에 쓰이던 다결정 양극재보다 개별 입자 크기를 키운 차세대 양극재다. 다결정 양극재보다 생산에 더 높은 고열, 리튬 성장기법, 고도의 분쇄설비가 필요하고 산소와 접촉 시 바로 불량이 발생하므로 제조와 생산이 까다롭다.
하지만 다결정 대비 배터리 충·방전 효율과 높은 에너지밀도, 수명 등을 기대할 수 있어 최근 글로벌 차세대 양극재 경쟁 구도는 단결정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른 양산과 더불어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 가능한 대형 고객사를 확보해 포스코퓨처엠이 유리한 입지를 점하고 있다.
긴 소성로가 쉴 새 없이 가동되는 양극재 생산라인도 ‘시원하다’곤 할 수 없지만 제철소보단 훨씬 쾌적했다. 쇳물이 비치는 제철소와 달리 생산된 양극재가 이동하는 과정에는 모두 덮개가 씌워진 덕분이다. 이는 앞서 언급된 것처럼 산소와 접촉 시 변질되는 리튬의 특성을 감안한 공정 설계라고 한다. 또한 비교적 이후 지어진 양극재 2공장은 공조설비가 추가돼 내부가 훨씬 시원했다.
소성설비 중간중간 설치된 투명판을 통해 생산된 양극재가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만 특별한 느낌이라곤 볼 수 없는 게, 완성된 제품의 색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까만 분말과 같았다. 주요 소재인 리튬은 ‘하얀석유’라 불릴 만큼 하얗지만 함께 섞는 주요 재료인 전구체가 까만 탓이다. 같은 이유로 단결정 양극재와 다결정 양극재도 육안으론 구분할 수 없었다.
광양 양극재 공장에는 각 라인마다 약 3개의 55m 길이 소성로, 총 21개가 있는데 전 생산공정을 관리하는 CCTV만 공장 내에 2000여개가 있고, 이를 관제하는 공간이 별도로 존재했다. 사람과 더불어 인공지능(AI)이 각종 설비 이상징후를 탐지를 돕고 있다.
워낙 많은 양극재가 생산되다 보니 납품 전까지 이를 보관할 공간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생산공장 한편에 초대형 자동화 창고도 존재했다. 1포대당 500kg에 달하는 재료와 제품이 아파트 수층 높이로 쌓여 있고 필요에 따라 기계가 이를 자동으로 실어 나르는 구조다. 최대 1만2000톤 보관이 가능한데 최대 보관기간은 3일 이내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1만톤이 넘는 재료와 제품이 3일 이내에 계속 사용되고 있다는 의미다.
또한 최근 2차전지 생산공장의 추세는 지속적인 ‘스마트팩토리화’다.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작업 능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2공장에서 눈에 띈 건 하나의 로봇팔 장비였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양극재를 담는 그릇(사가)은 리튬의 화학반응 작용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깨지는 만큼 약 60일에 한번 교체해야 한다. 이전에는 이를 일일이 사람이 투입돼 바꿔야 했다. 또한 2000개 이상의 그릇을 바꾸는데 기존에는 인력을 투입해 꼬박 하루가 걸렸다면, 로봇을 투입한 뒤에는 로봇이 카메라로 불량 여부 파악 후 자동으로 교체하거나 정해진 시간마다 스스로 교체하면서 이 같은 과정이 훨씬 효율화됐다고 한다.
◆ 포스코필바라리튬솔루션
포스코퓨처엠 광양 양극재 공장 옆에는 포스코가 호주 리튬광산 보유 기업 필바라 미네랄스와 합작법인으로 설립한 ‘포스코필바라리튬솔루션’ 공장이 있다. 이곳은 현재 수산화리튬 생산공장이 건설 중인 공간으로 직접 현장을 둘러볼 순 없었다. 하지만 향후 포스코 그룹의 리튬 자체 공급 역량을 책임질 주요 자회사로 성장할 전망이다.
2차전지 양극재 소재에서 현재 ‘리튬’의 비중은 압도적인데 지금까지 리튬은 대부분 해외에서 추출돼 중국을 통해 가공된 형태로 국내에 들어왔다. 특히 고성능 전지에는 저가용 탄산리튬보다 추가 정제과정이 필요한 ‘수산화리튬’이 필요한데, 이곳 공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리튬 광석을 수산화리튬으로 제련하는 기술을 보유했다.
자연계 리튬 광석에 함유된 리튬의 비중은 고작 2.8%에 불과하다. 이를 가공해 리튬을 완전히 분리해 수산화리튬으로 가공하고 사용된 황산은 재사용하는 과정에는 고도화된 기술이 요구된다.
공장 부지는 약 6만평에 달한다. 호주에서 채굴된 리튬 광석과 포스코 그룹이 확보한 아르헨티나 염호를 통해 확보한 염수리튬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연간 4만3000톤의 수산화리튬을 생산할 예정이다.
◆ 포스코HY클린메탈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이 이뤄지는 포스코HY클린메탈이다. 포스코퓨처엠 양극재 공장-포스코필바라리튬솔루션 공장-포스코HY클린메탈 공장이 서로 맞대고 이어져 하나의 대단위 2차전지 단지를 형성했다. 양극재 생산부터 수산화리튬가공, 리사이클링을 통한 양극재 원재료 재수급까지 이뤄지며 포스코 그룹의 전체 벨류체인이 완성됐다. 이 규모가 향후 고도화될수록 중국 등 해외 공급망 의존도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
포스코HY클린메탈에선 침출 공정과 추출 공정의 일부를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었다. 리사이클링의 핵심은 블랙파우더(폐배터리를 가공하기 쉽도록 가루로 만든 것)에서 최대한 많은 유가금속을 확보하는 것이다. 침출 공정은 유가금속을 황산으로 용액화하는 과정이다.
이후 추출 공정에 이르면 별도의 습식제련 설비를 통해 구리-망간-코발트-니켈 순서로 유가금속을 분리해낸 뒤 마지막으로 남은 리튬용액은 탄산리튬 공정으로 이동해 제품화한다. 사실상 버리는 것 없이 거의 모든 유가금속을 추출해내는 수준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연간 1만2000톤의 블랙파우더에서 니켈 2500톤, 코발트 800톤, 탄산리튬 2500톤 등이 추출되며, 고온·고압의 산소가압침출 공정을 적용해 원료 회수율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한다. 또 이곳 역시 공정 자동화가 이뤄져 경쟁 공장들의 동일 규모 대비 필요한 인력도 절반에 불과하다. 2030년까지 니켈 3만톤과 코발트, 망간 등을 합쳐 총 7만톤의 유가금속을 추출하는 것이 목표다. 유럽과 북미 거점 확대를 위한 부지조사도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빠르게 성장 중인 2차전지 소재 생산망을 중심으로 포스코 그룹의 체질 전환도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철강 경쟁력을 이어가되 신성장 동력과 미래 먹거리로 적극 양산하겠단 포부다. 관련해 지난 11일 그룹이 주최한 ‘2차전지소재 사업 밸류데이’에서는 앞으로 3년간 그룹의 전체 투자 규모 중 절반을 2차전지 소재사업에 집중하고, 2030년 매출 62조원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밸류데이에서 제시한 41조원보다 1.5배나 증가한 수치다.
특히 변화의 중심에는 포스코퓨처엠이 있다. 지난 1년간 다수의 고객사로부터 양극재와 음극재 수주량만 무려 107조2699억원에 달한다. 포스코퓨처엠은 향후 시장과 고객의 다양한 수요를 파악하고 이에 맞춘 저가용 LFP(리튬인산철), 코발트 프리 소재까지 생산 제품군을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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