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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장 TF] ① ‘日 경제보복’…韓 약한고리 소부장 흔들다

김문기 기자

전세계적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제조분야의 산업적 가치가 중요해졌고, 그에 따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산업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미중 패권경쟁에 따른 아시아 지역의 변화와 유럽연합(EU)의 적극적인 공세로 인해 우리나라는 제품만 생산해내는 위탁국가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해외 정세에도 흔들림 없는 K제조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밑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소부장 강소기업 육성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부장 미래포럼>은 <소부장 TF>를 통해 이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총체적 시각을 통해 우리나라 소부장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숙제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김문기 기자] “한일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됐다.”

2019년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홈페이지를 통해 ‘대한민국 수출 관리 운용을 재검토한다’라며 이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멀지 않은 7월 4일 실제로 일본은 한국에 대해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시행에 돌입했다. 일본이 가리킨 ‘신뢰 손상’에 수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2018년 대법원의 일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역사에서 비롯된 문제를 경제로 연관시킨 말 그대로 ‘경제보복’이라고 단언했다.

일본이 제외하기로 한 3개 품목은 ▲불화폴이이미드(FPI) ▲포토레지스트(PR) ▲불화수소(HF)다. FPI는 불소 처리를 한 폴리이미드(PI) 필름으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판을 제작할 때 쓰는데, 일본 스미토모에서 90% 이상을 수입한다. PR은 반도체 노광 공정에서 필름 역할을 하는 소재로 일본 ▲스미토모 ▲신계츠 ▲JSR ▲TOK 등이 90% 이상 공급한다. HF는 반도체 식각 공정과 세척에 이용하며, 일본 ▲스텔라 ▲모리타 등이 세계 출고량 9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즉, 없으면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지만 대일의존도가 높은 품목이다.

공정 중간에 쓸 수 있는 화학물질이 없다는 것은 공정 자체를 돌릴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장 일차적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 피해가 예상됐다. 특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공급량을 보유하고 있는 품목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물론 당장 그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앞서 재고 품목을 쌓아놓고 있기도 하지만 수출 중단이 아니라 심사가 보다 강화되는 수준이기에 그에 따른 대응책 마련에 골몰했다.

2019년 당시 일본 정부의 백색국가 배제 등 수출규제 및 보복조치 관련 정부합동 브리핑 현장 [사진= 산업통상자원부]
2019년 당시 일본 정부의 백색국가 배제 등 수출규제 및 보복조치 관련 정부합동 브리핑 현장 [사진= 산업통상자원부]

우리 정부는 강력하게 대응해나가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7월 14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는 자국 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한 통상적인 보호무역 조치와는 방법도, 목적도 다르다”라며 “우리는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가 한국 경제의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제한으로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높은 성장을 도모하는 시기에 우리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하면서, “오히려 일본과의 제조업 분업체계에 대한 신뢰를 깨뜨려 우리 기업들은 일본의 소재, 부품, 장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수입처를 다변화하거나 국산화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수출규제와 함께 논의됐다. ‘백색국가 제외’ 안건이 통과된 것. 일본은 8월 2일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에 입각해 한국을 최종적으로 백색국가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백색국가는 안전보장 우호국을 일컬으며, 이에 배제됐다는 것은 수출 허가신청 면제에서 심사를 받아야만 개별 수출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조사한 백색국가 배제 조치에 관련된 전략 물자의 수는 1194개. 민감품목에 해당돼 건별 허가가 적용되고 있는 품목과 국내 미사용하거나 일본 내 미생산 등으로 관련이 적은 품목, 소량 사용하거나 대체수입 등으로 배제 영향이 크지 않은 특정품목을 제외하면 총 159개 품목이 영향을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당부분 품목은 그 영향이 제한적이나 대일의존도가 높은 일부 품목은 공급차질 등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이번에는 경제계도 나섰다. 정부와 마찬가지로 일본이 외교적 문제를 경제로 보복했다는 입장에 동의했다. 한국무역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5개 경제단체는 일본 경제 보복에 대한 공동 성명을 내며, “일본의 이번 결정을 외교적 사안을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보복한 것이다. 한일 경제와 교역 전반에 매울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촉구했다.

정부는 일본 경제보복 조치로 큰 피해가 예상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에 대한 지원을 늘렸다. 예산 편성은 물론 대통령 직속 소부장 경쟁력위원회를 가동했다.

이같은 일본의 수출규제는 자연스럽게 국내 산업계에서 특정 공급망 의존도가 높을수록 상당한 리스크를 안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한일 주요 산업 경쟁력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를 살펴보면 일본 수입의존도가 90% 이상인 품목이 48개로, 전기 전자산업은 대일 경쟁력이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48개 품목의 총 수입액은 무려 27억8000만달러(3조2929억원) 수준으로 조사됐다. 특히 화학과 기계 분야 등은 한국이 ‘절대열위’를 보였는데, 이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에 사용되는 소재 및 장비의 일본 의존도가 높다는 의미였다.

또한 당시 국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20% 수준, 수입(80%) 장비 중 일본은 32%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TEL는 포토레지스트 베이커, 식각기 등 분야에서 영향력이 컸다. OLED 패던 형성과 건식각기는 일본 수입 비중이 100%였다. 이같은 분석은 메모리 분야에서 국내 반도체 경쟁력이 높지만 전체적인 반도체 분야를 놓고 보면 절대열위에 놓여 있다는 반성을 끌어냈다.

결과적으로 수출과 수입품목 다변화뿐만 아니라 내실을 기해야 했다. 국내 소부장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전략이 시급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가 우리나라 소재와 부품, 장비 경쟁력을 강화하고 약점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김문기 기자
moo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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