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공식도 정답도 없는 배터리 주가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요즘 주식시장에서 2차전지(배터리) 관련주 동향이 심상치 않다.
불과 수개월 사이 코스닥 시가총액 1~3위를 모두 배터리 관련 기업이 차지하는가 하면, 증권사의 적정주가 제시가 무의미하게 주가가 폭주한 기업도 있다. 고기 불판을 팔다 뜬금없이 배터리 사업에 뛰어든 회사 주가마저 폭등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이는 누가 봐도 평범한 상황은 아니다. 또한 평범이 사라졌기에 주가 흐름에도 공식과 이성이 작동하길 기대하는 것 또한 무리다. 배터리 주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일이 점차 무의미해 보이는 이유다.
그래도 잠시 이 주식 시장의 생리부터 생각해보자. 이곳에는 아주 다양한 이해관계가 공존한다. 그중 일부지만 우선 기업가치를 산정하고 적정 주가를 제시하는 증권가가 있다. 실제 시세를 형성하는 기관과 외국인, 개인 투자자 있고, 그날그날 매겨진 주가에 울고 웃는 기업도 있다.
증권가의 분석은 대개 합리적이다. 명확한 수치와 예견된 시황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애널리스트들도 일개 직장인으로 ‘어른의 사정’을 지닌 이들이다. 때론 자의지와 관계없이 편향된 분석이 담긴 리포트를 낸다.
‘개미’로 상징되는 개인 투자자들은 대개 감정적이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기에 높은 수익을 거두는 것. 이를 비난할 순 없다. 하지만 그동안 만난 기업 IR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할 때 일반 투자자 대응이 어려운 이유는 그들 상당수가 시류에 편승한 ‘묻지마 투자’ 후, 주가가 떨어질 때만 분노에 찬 전화를 걸어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업은 대개 계산적으로 보인다. 그들이 주가 관리에 특별히 신경 쓰는 건 그에 부합한 사정이 있을 때다. 대표이사의 성과를 추켜세워야 하는데 주가가 뒷받침되지 않을 때, 혹은 투자 유치가 필요할 때 기업가치를 뻥튀기하기 위해서다. 그럴 때 주주용 선심성 정책을 내놓거나 적극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한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주가가 오르는(세력의 개입 혹은 업종 내 투자 과열) 경우엔 손 놓고 ‘모르쇠’를 시전한다.
조건부 합리, 전문성이 결여된 감정, 계산적 주가 관리와 같은 이질적 요소가 혼합된 주식시장에서 애초에 적정한 기업 가치와 주가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나 배터리는 반도체에 이어 한국 기업들이 모처럼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산업이다. 그런데 관련 시장마저 폭발적으로 성장하다 보니 ‘투자 안 하면 나만 바보될 것 같은 불안감’, 즉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현상도 그 어느 때보다 측정하기 어려운 무형의 영향력을 배터리 기업 주가에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혼란 속에서도 이상을 꿈꿀 순 있다. 애널리스트는 보다 소신껏 시장에 나침반을 제시하는 것, 개미는 조금 더 자신만의 매수·매도 근거를 갖는 것이다. 기업도 부정확한 리포트나 기사, 세력 등이 주가에 비합리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적극적인 바로잡기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상이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여전히 편향된 증권 리포트와 일희일비하는 개미와 주가 관리에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는 기업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이해관계 안에서 자신의 이익 극대화만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어디든 균형이 깨져버리고, 그 부작용에 신음하길 반복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다.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누가 누군가를 탓하지 않길 바란다. 각자의 입장과 판단대로 행동한 결과가 오늘은 내게 이익이 되었다가 내일은 손해가 될 수 있다. 이익도 손해도 동등한 마음으로 질 각오 없이 뛰어든다면 결국 남는 건 가치 0원의 ‘탓을 위한 분노’ 정도다.
아마 배터리 관련 주가도 당분간 더 널뛰기할 수 있다. 다만 여러 불확실 가운데 한가지 분명한 건 적어도 배터리엔 실체와 시장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은 버려도 좋다.
지난 몇 년간 여러 기술 트렌드가 사회를 휩쓸었고 지금의 배터리 같은 주가 롤러코스터가 그려진 일들이 있다. 블록체인과 메타버스, 챗GPT가 대표적이다.
가깝게는 올해 초 챗GPT 광풍 때 챗GPT가 ‘스쳤다’는 표현이 적절한 AI 기업들조차 주가가 급등한 일이 빈번했다. 메타버스도 그랬다. 문제는 그 바람이 오래가지 않고 꺾였단 건데, 실용적인 서비스와 수요 시장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기대감만이 팽배했던 까닭이었다.
배터리는 이 점에서 다르다. 이미 수십년 전부터 성숙된 기술과 제품이 있고 이를 필요로 하는 광대한 시장이 준비돼 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자마자 사그라든 비대면 메타버스 열풍과 달리, 전세계 국가가 친환경 전환 트렌드는 전세계 국가가 지속가능 사회 과제로 추진 중이다. 이 가운데 배터리 수요가 어느 날 거품처럼 사라질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를 토대로 이 생태계의 누구든 조금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투자 전략을 세우고, 기업을 홍보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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