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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성지는 어떻게 탄생했나]① 단통법이 낳은 ‘성지’

권하영
흔히 ‘단통법’으로 알려진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 후 통신사들의 마케팅 출혈 경쟁은 확연히 줄었다. 문제는 이른바 ‘성지’라고 불리는 법의 사각지대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성지에선 판매자에게 주어져야 할 판매장려금을 고객에게 불법보조금으로 지급한다. 이들은 온라인을 통해 비밀스럽게 홍보하며, 현장에선 말 없이 계산기로 가격을 흥정한다. 정부는 매번 성지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잠잠해지는 것은 잠시뿐이다. 디지털데일리는 현 시점에서 온라인 성지가 탄생한 배경과 그 단면을 살펴보기로 한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2014년,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이 시행됐다. 통신사가 고객에게 지급하는 공시지원금 외에 판매점에서 주는 추가지원금을 제한한 것이 골자였다. 추가지원금이 공시지원금의 15%로 한정되면서, 통신사들은 가입자 유치를 위해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을 필요가 없게 됐다. 통신사 마케팅 정책에 따라 들쑥날쑥하던 지원금 문제가 완화됐고, 이른바 ‘호갱’(호구+고객)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단통법은 동시에 법의 사각지대를 낳았다. 바로 ‘성지’다. 성지란 휴대폰을 판매하면서 정해진 지원금 이상을 지급하는 곳을 일컫는 통신업계 은어로, 단통법에 의하면 모두 불법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추가 지원금에 제한이 걸리면서 가입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자, 휴대폰 집단상가나 일부 온라인 채널에서 음성화된 성지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성지의 탄생은 곧 단통법과 맞닿아 있다.

◆ 판매장려금을 불법보조금으로 둔갑시킨 성지

통상적으로 통신사 유통망의 수수료 지급 구조를 보면, 통신사는 유통망에 고객 몫의 공시지원금과 함께 판매자 몫의 판매장려금 및 가입자관리 수수료를 준다. 이 가운데 성지의 핵심 재원은 바로 판매장려금이다. 판매장려금은 건별장려금과 실적장려금으로 다시 나뉘는데, 성지에선 이 판매장려금 대부분을 고객에게 불법지원금으로 얹어준다. 이를 통해 가입자를 대규모로 끌어모은 뒤, 가입자관리 수수료를 대거 수취하는 구조다.

이때 통신사가 판매장려금을 주는 행위가 그 자체로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판매장려금을 많이 지급할수록 불법보조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방통위는 통신사로 하여금 ‘장려금 투명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했다. 기준 이상의 판매장려금 지급이 적발된 통신사는 벌점을 받게 되는데, 다만 이 벌점은 기간마다 초기화되는 구조여서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방통위는 주로 무작위 단속을 벌인다. 단속에 잘 걸리는 성지들은 통신사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성지들도 촉각을 세워야 한다. 이들은 점점 네이버 ‘밴드’와 같은 폐쇄형 SNS로 숨어들고, 단속을 피하려 갖은 편법을 동원한다. 구매자의 신분 확인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 구매 현장에선 증거가 될 만한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방통위가 단속을 벌일수록 성지는 더욱 음지화되는 것이다.

◆ 법개정으로도 역부족…단통법 근본적 문제제기

방통위는 단통법 개정을 통해 이 같은 성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그마저 녹록지 않다. 현재 방통위는 유통망 추가지원금의 상한을 기존 ‘공시지원금의 15%’에서 ‘공시지원금의 30%’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은 단통법 개정안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 제출했으나 계류된 상태다. 일부 의원들이 이처럼 상향된 추가지원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는 중소 유통판매점의 어려움을 지적하면서다.

실제 유통업계에서도 이 같은 성지는 골칫거리다. 성지들로부터 가입자를 빼앗기니 당연한 일이다. 휴대폰 판매점주들이 모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단통법 시행 8년 동안 음지 영업만 성행했다”며 지난 4월 방통위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단통법 시행 이후 이용자 차별은 심해지고, 통신사는 요금경쟁을 회피하고, 제조사는 출고가를 지속 인상하는 등 가계통신비 인하에 역행했다”고 비판했다.

추가지원금 상향과 같은 단통법 개정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어쨌든 추가지원금 상한을 정해두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비싼 스마트폰을 더욱 저렴하게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가 당연하다. ‘호갱’을 막는다며 탄생한 단통법이 거꾸로 모든 소비자들을 ‘호갱’으로 만들었다는 쓴소리가 적지 않다. 단통법을 뜯어고치기보다는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지난 2020년 단말기유통구조개선협의회 의장을 지낸 홍대식 서강대 교수는 “성지는 결국 거래의 필요에 의해 생긴 것이고, 이 거래의 욕구를 법으로 억누르면 더 많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며 “(성지가 발생하게 되는) 상황을 인정해주고 법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래는 시장 자율에 맡기고, 방통위는 정말 시장을 혼탁하게 하는 행위만 제재하는 사후규제로 가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권하영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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