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미디어거버넌스]② 진전 없는 방송법 개정…탈출구 없나

권하영

최근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의 급성장으로 레거시 미디어의 생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디어 정책을 놓고 각 부처 간 업무와 권한이 중복되면서 갈등도 초래됐다. 때문에 규제 적용의 일관성도 부재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지만 기존의 낡은 방송법으로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차기 정부에선 이처럼 산재된 미디어 이슈를 통합 대응할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디지털데일리>는 총 3회에 걸쳐 최근 미디어업계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점을 짚어보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방송법은 헌법보다 더 개정이 어려운 법률”

미디어업계에서 우스갯소리로 들리는 얘기다. 실제 현행 방송법은 약 20년 전인 2000년 당시 체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 개정 횟수가 헌법보다 적다. 넷플릭스로 대변되는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 국내 미디어 산업이 성장하려면 낡은 규제를 이제라도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 ‘진흥보다 규제’ 낡은 방송법 그대로

방송법 개정이 어려웠던 이유는 ‘미디어의 정치화’에서 찾을 수 있다. 미디어의 영역을 언론으로 국한시킨 ‘미디어=언론’이라는 공식 탓에 논의의 진전이 어려웠다는 분석이다. 실제 방송법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지상파3사의 언론적 성격에 매몰돼왔고, 방송법을 개정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정치권의 반응도 민감했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올초 국민의힘 방송통신정책 토론회에서 이 점을 지목하며 “가장 큰 문제는 미디어를 언론으로 등치시켜 ‘규제’ 대상으로만 볼 뿐 ‘진흥’ 대상으로는 보지 않은 것”이라며 “현 정부 역시 가짜뉴스 규제 정도 외에는 주요 미디어 현안에 대한 정책 개선이 지체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분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점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방송법 규제를 받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경우, 공영방송인 KBS·EBS 외에 사실상 민영방송인 SBS와 MBC까지도 공적 방송의 책무를 강하게 요구받고 있다. 심지어 방송법 외 IPTV법 규제를 받는 IPTV사들마저 정부의 인허가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공공·민영 분리하고 규제 개선해야

가장 큰 문제는 국내외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단 점이다. 넷플릭스가 전세계 OTT 시대를 열면서 디즈니플러스와 HBO맥스 등 거대 플랫폼들의 경쟁이 치열해진 반면, 국내 방송 산업은 별다른 대응을 못하고 있다. 지상파들은 2년 연속 2000억원대 적자를 내는 형편에, 케이블TV는 가입자 감소의 연속, IPTV마저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선 글로벌 시장 환경에 맞춰 규제보다 진흥에 초점을 둘 것을 건의하고 있다. 예컨대 ‘자산 총액 10조원이 넘는 대기업은 지상파 방송 지분 10%를 초과해 소유할 없다’거나 ‘지상파와 지상파, 지상파와 유료방송간 겸영’을 금지한 규제를 완화하고, 광고·협찬 규제와 채널 운영 및 편성 규제도 개선해야 한단 지적이다.

핵심 전제는 공공·민영의 분리다. 공공영역은 공영미디어 별도 법체계를 마련하고, 사전적·구조적 규제로 공공성을 지키도록 한다. 민간영역은 동일서비스 동일규제 원칙 아래 사후적·행위적 규제로 혁신 경쟁을 강화한다. 다만 세금, 규제, 망사용료 회피 등의 글로벌 사업자 대비 국내 사업자의 역차별 문제도 필수 해소 과제로 꼽힌다.

김정현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현행 방송법의 가장 큰 문제는 ‘공영방송’에 대한 정의조차 없다는 것”이라며 “소유구조는 물론 재원 조달과 행태까지 반영해 공영방송을 정의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영방송에는 공공성 책무를 주되 경영을 보장해주고, 나머지 민영방송에는 과감한 규제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방송법 개정 발의 속속…차기 정부는?

현재 국회에는 지상파 방송에 대한 대기업 지분 소유 제한을 완화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양정숙 의원(무소속) 대표로 발의돼 있다. 또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유료방송 사업에 대한 소유 및 겸영 규제를 현행보다 완화한 정부안을 입안했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역시 같은 맥락에서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대선후보들 또한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미디어 거버넌스 구상을 속속 발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0일 미디어·ICT 정책 공청회를 열고 ▲미디어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의 명확한 구분 ▲방송법·IPTV법 통합 ▲미디어 관련 기능 한 부처로 통합 ▲공영방송 사회적 책무 수행 평가 강화 등의 공약 청사진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오는 8일께 미디어 정책 공약을 발표할 예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기존 방통위의 통신 정책 영역을 과기정통부로 이관 ▲방통위는 방송 (재)허가 또는 (재)승인 사업자를 묶어 관장하는 ‘공공방송영상위원회’(가칭)으로 개편 ▲‘미디어부’ 신설을 통한 통합 미디어법 마련 등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혜선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방송법이 ‘방송’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서비스들이 나타나면 리스트 형식으로 계속 추가만 하다보니 다른 법에 비해 누더기가 된 상황”이라며 “법률 자체가 오래된 만큼 전면 개정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어떤 서비스를 포섭할 것인지 정책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하영
kwonhy@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