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DD 인사이트] 디지털시대 ‘부국강병’, 패자(霸者)의 조건

박기록
[디지털데일리 박기록 논설실장] 중국 서북지역에 위치했던 진(秦)나라는 당초 오랑캐 취급을 받던 변방의 약소국이었다. 그런 진 나라가 기원전 221년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다.

500여년간 이어진 춘추전국시대를 뚫고 진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로, 우리는 시황제(始皇帝)라는 걸출한 리더의 존재를 꼽는다.

하지만 이는 영웅주의적 해석이다. 진짜 영웅은 따로있다. 시황제 즉위전부터 진나라는 이미 전국 7웅 중에서 가장 강했고, 중원 통일은 사실 시간문제 였다. 유명한 합종연횡(合從連橫)이란 말은 나머지 6개국이 진나라에 어떻게 대응해야 생존할 수 있을지 고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기원전 361년, 진 효공(孝公)이 즉위했다. 진 나라가 통일하기 140년 전이다. 통일 대업은 이때부터 설계된다. 효공은 상앙(商鞅)을 재상으로 발탁해 강력한 개혁정책을 펼친다. 상앙은 개혁성향이 강한 법가(法家)를 추종한다.

상앙은 2차례에 걸친 변법(變法)을 통해 지금의 연좌제와 같은 사회통제 체계 구축, 귀족 특권의 폐지, 조세제도의 개혁, 도량형의 통일 등 강력한 법치주의와 경제개혁을 완성했다.

비록 상앙은 효공이 죽은뒤 귀족들의 반격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뒤이어 혜문왕, 소양왕 등 뛰어난 군주들이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국력을 키워나갔다.

특히 혜문왕때 재상 장의(張儀)는 연횡(連橫)설로 60년간 견고하게 유지돼왔던 동방 6국의 연합 전략인 합종(合從)책을 와해시킴으로써 향후 통일 과업 과정에서 예상되는 큰 걸림돌을 해소했다. 이후 소양왕때 범수(范睢)는 위나라 출신임에도 재상으로 특채돼 원교근공의 외교전략을 확립함으로써 대외적 안정을 굳건히 했다.

이처럼 진은 1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안으로는 강력한 법치주의와 경제개혁, 밖으로는 뛰어난 외교전략을 통해 차근차근 부국강병을 완성해왔던 것이다. 결국 시황제때에 이르러 진나라가 6개국을 정복하는데는 불과 9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진이 부국강병에 쏟아부은 시간은 100년이 훨씬 넘는다. 특출난 영웅의 개인기가 아니라 시스템화된 통치 구조의 완성이 결국 부국강병으로 가는 요체다.

미래 지향적 국가적 아젠다의 정립, 그것에 부합하는 일관된 통치철학, 치우침 없는 인재등용, 경제의 개혁과 실용 외교의 조화, 시공을 초월해 21세기에도 부국강병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 막오른 20대 대선 레이스, 대선 주자들 한 목소리로 '부국 강병'

이제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 선거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지난 5일,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로 윤석열 전 총장을 선출함으로써 앞서 선출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함께 여야 주자들의 면면이 확정됐다.

출마 선언을 한 대선 후보들은 너나없이 ‘부국강병’을 얘기하고 있다. 물론 대선 후보자들이 각자 생각하는 ‘강한 나라’의 의미는 진영의 위치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누구는 법치주의 강화를, 누구는 시장경제 활성화를, 누구는 청년 세대의 활기를, 누구는 보다 안전한 사회로의 진보를 의미할 것이다.

다만 후보자들 모두가 디지털시대가 요구하는 덕목과 가치에 부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수평적 소통 문화, 소프트웨어적인 혁신적 사고, 다양한 가치의 인정, 미래지향적 사고, 폭넓은 문화 중시 등이 디지털시대에는 새로운 부국강병의 핵심 요체다. 물론 아직 해결하지 못한 시대적 개혁 요구들도 산적해 있다.

앞으로 4개월여 남은 제20대 대통령 선거, 누가 최종 승자가 되더라도 역사는 단절이 아니며 시대적 오류를 치유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필연의 시퀀스(sequence)임을 인식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박기록
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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